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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효이재 Sep 09. 2019

애자일은 문화다.

On Agile Management | I. 경영으로서의 애자일

[BGM] 김동률, 여름의 끝자락


애자일의 불안한 미래


“합시다, 스크럼”


오전 아홉시.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스크럼 시간이다.

스크럼이란 이천년대 초반부터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애자일 방법론의 필수 요소로, 우리 회사 같은 소규모 스타트업에서 널리 쓰이는 프로젝트 관리 기법이다. 데일리스크럼의 대원칙은 이렇다. 매일, 약속된 시간에 선 채로, 짧게, 어제는 무슨 일을 했는지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을 할 것인지 각자 이야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지막에 스크럼 마스터가 전체적인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것. 서로의 작업 상황을 최소단위로 공유하면서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우리 대표는 스크럼을 아침조회처럼 생각하고 있으니 심히 문제였다..

.. 제니퍼는 한국사람이다. 씰리콘밸리가 아니라 판교 테크노밸리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영어 이름을 쓰는 이유는 대표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빠른 의사결정이 중요한 스타트업의 특성을 고려하여 대표부터 직원까지 모두 영어 이름만을 쓰면서 동등하게 소통하는 수평한 업무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했다…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대표나 이사와 이야기 할때는 “저번에 데이빗께서 요청하신…”, 혹은 “앤드류께서 말씀하신…” 이러고 앉아 있었다. 이럴거면 영어 이름을 왜쓰나? 문제는 대표인 데이빗이 그것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어이름 사용의 폐해는 또 있었다. 이름만 부르고 존칭은 생략하기 때문에 연장자가 말을 놓기 더 쉽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나는 본명이 ‘김안나’여서 영어 이름도 그냥 ‘Anna’로 하고 입사했더니 여기저기서 안나, 안나거리면서 은근슬쩍 말을 놓는통에 불릴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표 위주의 일방적 지시, 훈계 후) 사십오분만에 스크럼이 끝났다. 우리는 마침내 각자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등 뒤에서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장류진,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中, 제21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1]


 

 2018년 발표된 창작소설(제 21회 창비신인문학상) ‘일의 기쁨과 슬픔’의 첫 장면입니다. 소설은 발표 이후 배경인 판교 IT밸리를 기점으로 한동안 크게 화제가 됐습니다. 사실 창작소설이 기업 실무자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소설의 문학성과는 별개로 작가가 묘사한 기업 풍경이 현실의 한 단면을 여실히 드러내 유관 직장인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전달한 정보는, 조금 부지런한 독자라면 책과 인터넷에 떠도는 자료들로 충분히 스스로 알 수 있는 내용일지 모릅니다. 논의가 여기에서 그친다면, 이를 토대로 '애자일'을 접목하고자 하는 기업의 단기적 미래는 위 소설의 풍경, 혹은 기업 실무자들끼리 이 소설을 공유하며 ‘새로운 경영’을 냉소하는 판교와 강남 일대 IT밸리 구성원이 당면한 지금 현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애자일이 한국 경영 씬(Scene)에 제대로 소개되고 시도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애자일은 이미 죽었다’는 자극적 프로파간다가 나오는 이유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애자일’은 과연 새로운가? 협의의 관점에서 애자일을 바라보면, 사실 애자일은 그렇게 새롭지 않습니다.  1990년대부터 시작돼 2000년대 초반 ‘애자일 선언’ 및 통합조직(Agile Alliance) 설립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개발자, 유관 조직 사이에서 알음알음 자발적으로 소개, 적용, 확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애자일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볼 정도로 급격히 확산,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년 사이의 일입니다. 현재의 유행과 확산 바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해의 초점을 ‘애자일 방법’ 자체 보다는 오히려 애자일이 가진 메타포(Metaphor), 맥락(Context)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패러다임 전환: 경영혁명 메타포로서의 애자일


 토마스 쿤(Thomas S. kuhn)의 기념비적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에 따르면 정상 과학에서 진보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는 사실과 이론의 축적에 따른 연속적이고 점진적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혁명, 즉 단절적 파열 과정에서 경쟁하는 이론(그에 수반되는 믿음, 가치, 인식의 총체를 포함) 중 하나가 집단에 적극적으로 수용,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면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2]  쿤의 사상이 비단 좁은 의미의 ‘과학’에 머물지 않고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인류학, 심지어 문화 예술에 까지도 광범위하게 적용, 인용되고 있음을 볼 때 ‘과학적 진보’는 충분히 좀 더 보편적인 의미의 ‘진보’로 확장해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조직경영차원에서 애자일이 새롭고, 또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애자일은 정확히 경영 패러다임 전환흐름과 궤를 같이 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적 의미의 ‘기업’과 이를 관리하는 ‘경영’이라는 영역, 학문이 생성된 이래로 지금까지 매우 다양한 경영 방법론, 기법이 소개, 활용된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 이들 대부분은 모두 단 하나의 패러다임, ‘테일러리즘 Taylorism’에 기인한 것입니다.[표] 과학적 관리법(Scientific management), 합리주의(Rationalism) 경영이라고도 불리는 테일러리즘 경영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고 이를 위한 강력한 통제와 명령, 규율, 경쟁을 강조하며 ‘정상 경영(Normal Management)'으로 군림해 왔습니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이하고 근 20년도 더 지난 지금, 테일러리즘의 수명은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기업인들이 근 한세기 이상을 지배한 패러다임이 더 이상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다주지 않고 조직 구성원을 제대로 움직이게 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패러다임 변화가 동반되지 않은 부분적 개선이나 단순 애드온 Add on 성격의 방법론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수월히 풀 수 있도록 돕기보다 오히려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경영패러다임과 Management 방법론[3]

 

 한 시대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더 이상 현실세계를 온전히 설명하거나 반영하지 못할 때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강력한 요구와 이에 따른 기회는 찾아옵니다. 지금의 ‘애자일 현상’은 바로 그 과정에서 촉발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패러다임의 본래 정의 – ‘시대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는 인식의 체계, 총체’ –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애자일 방법론’이 명명된 역사적 맥락을 들춰보아도 ‘애자일’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실체라기 보다는 테일러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경영 철학, 사고, 개념과 도구의 연결을 상징하는 포스트 테일러리즘 메타포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두가지 시선:
협의의 애자일 ‘방법론’ VS 광의의 애자일 ‘경영’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으로서의 ‘애자일’(협의)과 경영 패러다임으로서의 ‘애자일’(광의)은 얼마나 다를까? 사실 컨텐츠를 모두 쏟아내고 보면 대부분이 유사한 내용일 것입니다. 다만, 이를 현실에서 적용하고 실체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이 둘을 의도적으로 세심히 분리해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애자일을 ‘협의’ 관점을 기반으로 접근하는가, ‘광의’의 관점을 기반으로 접근하는가에 따라 ‘이를 어떻게 적용해 확산시킬 것인가?’에 대한 강조점, 접근 프로세스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협의의 애자일 Scale Up 초점: 애자일 코치와 실험가능 조직


 현재 국내에서 애자일을 도입하고, 이를 조직에 확산시키고자 하는 대부분의 기업 혹은 애자일전도사들은 아직까지는 ‘협의’의 애자일 프레임 안에 머무는 듯합니다. 이런 유형의 조직이 애자일을 도입하고, 확산시키고자 할 때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루틴은 A/B Test를 통한 시범 도입, 적용, 자연스러운 확산입니다.


 그 일반적인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애자일 도입에 적합한 환경을 가진 조직을 찾는다. 주로 독립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가 가능한 소 조직이 해당된다.


2) 이 조직에 애자일 코치를 투입한다. 애자일 코치는 애자일 방법론을 충분히 익히고 실행할 수 있는 애자일 전문가로서 선정된 소조직에 직접 소속되어 권한이 배부되기 보다는 일종의 자문역, 멘토 역할을 수행한다.


3) 애자일 코치는 소 조직 구성원들에게 애자일 방법론에 대해 충분히 이해시키고 이를 실제 업무에 반영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코칭, 관리한다. 우선적으로 Doing Agile, 즉 구성원들에게 맞는 애자일 Skill(이를테면 스크럼, 칸 반, XP 등)을 찾고 이의 구체적 이행 방법을 조직 구성원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한다.


4) Being Agile, 조직 구성원이 구체적인 애자일 방법/스킬을 익히는 것과 병행해서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는 데 필요한 소프트 스킬, 문화, 가치 등을 전달한다.


5) 3~4를 반복하며 실제 업무를 수행해 조직만의 애자일 노하우를 구축한다.조직의 성과를 공유, 알림으로써 유사 조직에게 애자일을 전파한다.


[그림] 소조직 주도 확산


 협의의 애자일 관점에서 애자일의 성패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애자일 코치’입니다. 애자일 방법론을 ‘Doing, 그리고 Being Agile’ 관점* 에서 소조직에 제대로 이식시켜 줄 수 있는 코치가 있어야 합니다. 위와 같은 접근 방식의 장점은 명확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 관점에서 도입이 수월한 유사 조직이 있고, 반면에 조직에 ‘애자일’의 개념과 환경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경우 위와 같은 접근방식은 빠른 효과성 검증이 가능하고 대체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Doing, Being Agile : 애자일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에서는 제대로 된 애자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Doing Agile과 Being Agile이 제대로 조화를 이뤄야 함을 강조한다. Doing Agile은 Kanban, XP, Scrum과 같은 다양한 Practice를 활용해 개발을 수행하는 것(Doing)을 의미한다. 반면 Being Agile은 애자일 선언의 가치, 원칙을 내재화해 애자일 프랙티스가 제대로 구동될 수 있는 문화, 환경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출처: The agile Mindset. Zen Ex Machina. 2017)


  하지만 이런 방식은 ‘스케일업 Scale Up’ 한계 역시 매우 명확합니다. 소프트웨어를 벗어난 조직에 대해서는 바로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다룬다 할지라도 독립적으로 제품을 만들어 고객반응을 검증하는 구조가 아니라 조직이 주도적으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직접 클라이언트가 존재해 이들을 주도로 타임라인(Time-Line)과 최적화 시스템 통합(System Integration, SI) 등이 요구, 정의될 경우 ‘순수한 애자일 방법론’을조직에 바로 적용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아닌 영업 조직, 마케팅 조직, 인사/재무 조직은 그럼 애자일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SW개발자로부터 출발한 애자일 코치’의 존재는 이런 질문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실제 애자일을 위와 같은 형태로 도입한 기업이 가진 난제는 기업 내 ‘애자일 조직’이 고성과를 내는 본받아야 하는 조직으로 인식되기 보다는 ‘우리와 결이 다른, 특별 대우를 받는 소수 조직’과 같이 조직의 섬으로 치부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애자일 코치’는 소 조직내 소기의 성과를 바탕으로 자연스러운 스케일업, 확산을 꿈꾸지만 현실에서 애자일팀의 성공과 확산은 별개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 SDS


삼성SDS가 애자일을 처음 도입한 것은 2007년부터다. 교육부의 신 NEIS 시스템 구축사업에 개발자들이 주도적으로 스크럼 프로세스를 적용했고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09년부터 여러 분야에서 애자일이 시도됐습니다.


하지만 삼성SDS는 SI(System integration) 비즈니스를 메인으로 하는 기업으로 적극적인 확산에 한계를 보였다. SI 사업은 최종 고객이 정해져 있고, 고객이 원하는 수준의 품질이 있으며, 납기와 제품 유지 및 보수가 중요한 비즈니스입니다. 즉, 혁신도 중요하지만 고객의 요구를 적기에 잘 맞추는 것과 정해진 예산 안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사업을 수주해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애자일 방법론이 바로 적용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2015년까지 애자일은 개별 프로젝트에서만 시도됐을 뿐 전사적인 차원의 전환은 시도되지 않았습니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2015년부터 입니다. 애자일방법론을 적용한 프로젝트의 성공사례가 지속 도출되면서 경영진도 애자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후 삼성SDS의 개발조직 내에 조직의 애자일 전환을 전담하는 조직이 생깁니다. ACT(Agile core Team) 그룹입니다. 초창기 약 20여명의 애자일 개발 경험이 있는 개발자들로 시작한 ACT는 2019년 초 120명 규모의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삼성 SDS는 이들 ACT의 도움을 받아 소조직 주도도 개발집단 내 애자일 확산을 꾀하고 있습니다. 해당 사례는 대기업의 애자일 적용에 있어 하나의 참고점이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그 적용 범위가 협의의 ‘애자일’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개발 조직 일부에 한한다는 점)은 한계라 할 수 있겠지요.


| 광의의 애자일 Scale Up 초점: 조직문화, 리더십


 패러다임의 정의를 빌리자면 경영 패러다임이란 기업이 내포한 철학, 리더십, 전략, 구조, 프로세스, 기업 내 집단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이론, 방법론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애자일이 개발 방법론, 혹은 IT기업의 개발 조직 전환(Transformation)을 위한 부분적인 차원을 넘어 변화무쌍한 시대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 대안으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동의하고 이런 차원에서 ‘애자일’ 도입을 고민하는 기업, 리더 혹은 독자가 있다면 협의의 애자일 루틴보다 좀 더 포괄적인 고민을 해야 합니다. (광의의 애자일을 앞으로 ‘애자일 경영’이라고 부르겠다.) 경영 패러다임을 조직 운영에 좀 더 친화적인 용어로 치환한다면 ‘조직문화’가 될 것입니다. 미국 조직심리학자 애드거 샤인(Edgar Schein)에 따르면 조직문화는 외부 환경에 대한 적응과 조직의 내적 통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풀기위해 조직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기본 가정, 신념, 가치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나타내는 행동, 패턴을 의미합니다.[4]

  

그림_조직문화와 경영 요소 간의 관계(출처: ICAgile)[5]


 때문에 ‘애자일’은 곧 ‘문화’ 입니다. ‘애자일 전환’은 곧 문화를 바꾸는 것입니다. ‘애자일 경영’은 ‘조직문화’ 관점에서 ‘애자일’이 어떤 행동, 결과로 이어질지를 규명하고, 새로이 조직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조직을 변화 관리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애자일 경영’의 성패는 ‘조직문화’ 구축 및 변화관리에 있다해도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애자일 경영에 대한 정의가 여기까지 미친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초점은 더 이상 ‘애자일 코치’와 ‘실험가능조직’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접근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애자일을 실천하는 세부 방법 중 하나)와 차원을 달리한 기업 경영 차원의 총체적 사고와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차원 높은 고민이란 어떤 것일까요.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변신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사티아 나델라(Satya Nadella) CEO가 3대 CEO로 부임한 이후 애자일이라는 용어, ‘애자일 코치’와 ‘개발 방법론으로서의 애자일’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사실상 애자일 경영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엔 리더십이 있습니다. 사티아 나델라는 취임 당시 자신의 첫번째 사명을 ‘문화를 바꾸는 것으로 내걸고 조직, 그리고 구성원이 추구해야 할 ‘문화’, 그리고 ‘성공’을 재정의 했습니다. 그가 정의한 회사의 성공은 ‘성장하는 사고/태도Growth Mindset’ 이었습니다, 애자일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성공은 손익 계산과 관련된 것만으로 이뤄져서는 안됩니다. 성공은 개인의 질적 성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역할과 삶에서 성장한다면 하나의 조직으로서 우리도 성장합니다. 우리는 스프레드 시트를 뛰어 넘어야 합니다."[6]

 

 이처럼 애자일 경영을 위해서 가장 우선시되는 초점은 리더십입니다. 다시 말해 리더십 파이프라인전체가 일종의 ‘애자일 코치’가 되어야 합니다. Being Agile의 관점에서 조직에 필요한 문화, 성공, 가치, 행동을 스스로 재정의 하고 이를 실천, 유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Doing Agile의 관점에서 스크럼, 칸반, XP, Dev-Ops, Biz-Ops를 떠나 자신의 조직에 맞는 애자일 실천 방법론이 무엇인지 실험, 규명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어야 합니다.


 ‘애자일 경영’을 도입하고자 하는 대기업 담당자로부터 왜 애자일 경영을 도입하려 하는지 들은적이 있습니다. 첫 출발은 이랬습니다. “요즘 새로운 거 뭐 없나? 지난번 컨설팅 펌 A사와 진행했던 ‘성과주의 문화’ 이후로 좀 주춤 한 것 같아. 실리콘밸리 회사들을 보라구. 우리는 끊임없는 혁신과 체질 개선이 필요해. 그들을 보고 일하는 방식부터 좀 바꿀 필요가 있어. 보고 형식으로 PPT를 금지한다든지.. 조직 한번 다시 제대로 바꿔볼 때가 됐어. 가장 쎈 곳으로 한번 불러와바.”


 사실 매우 익숙한 풍경입니다. 현재 진행되는 대부분의 ‘애자일 경영’ 도입이 이뤄지는 현실의 단면이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애자일 경영을 제대로 도입할 수 없습니다. 도입하기도 전에 실패는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리더십의 피상적 선언, ‘담당자’로의 역할/책임 전가는 근본적인 변화를 일굴 수 없습니다.


애자일 전환(평면)
애자일 전환(단면), 점진적이더라도 리더십, 전략, 구조, 프로세스, 사람 총체적 상호작용을 통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라이엇 게임즈 (Riot Games)에 애자일 문화, 조직을 성공적으로 안착 시켰다고 평가받는 개발관리조직 대표 아메드 시드키(Ahmed Sidky) 역시 말합니다. 진정한 애자일 경영으로의 전환(Transformation)은 ‘문화’주도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고.[7] 그는 애자일 경영은 하나의 프로세스, 하나의 조직 변화로 일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리더십과 조직 구성원의 연계(공감), 그로인한 전략, 구조, 프로세스가 총체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기업은 이 다이나믹스를 관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점진적으로 이동시킴으로써 바라는 ‘애자일’ 문화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애자일 Scale-Up을 위한 방법 비교


| 애자일 문화의 지향점


  애자일이 곧 문화라면, 나아가 문화는 조직 구성원과 리더십, 전략과 구조, 프로세스의 총체적 상호작용 결과라면, 이것이 향하는 방향은 ‘어디를’ 향해야 할까? 애자일에 적합한 ‘문화’ 유형이 있는 것일까요? 애자일에 적합한 ‘문화’ 유형이 있는 것일까요? 애자일 방법론 전문가들은 애자일 개발 조직의 현실과, 애자일 선언이 추구하는 가치에 조직심리학자 윌리엄 슈나이더 William E. Schneider가 제시한 조직문화 모델에 투영함으로써 ‘애자일’에 적합한 문화 유형, 패턴이 무엇인지를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Schneider의 조직문화 모델


 윌리엄 슈나이더 William E. Schneider는『The Reengineering Alternative: A plan for making your current culture work』에서 기업 문화는 그들이 중요시하는 가치와 철학에 따라 네 가지의 유형으로 발현된다고 봤습니다.[8]

 

첫째, 통제 중심 문화입니다. 조직은 구성원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dominance을 행사함으로써 목표를 달성하고자 합니다. 리더십은 권위 주의적이고, 명령과 통제에 능합니다. 이러한 조직 안에서 구성원은 표준화, 규격화되어 다뤄집니다.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가정합니다.


 둘째, 능력 중심 문화입니다. 조직은 탁월한 결과를 창출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리더십은 가능한 탁월한 구성원을 찾아 이들에게 명확한 목표를 부여하고, 이를 달성하도록 채찍질하고 도전을 부여하는 것이 강조됩니다. 전문가주의 Professionalism가 강조되며 조직은 상대적으로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셋째, 협력 문화입니다. 해당 문화 내의 조직은 개개인의 탁월함 이전에 협력, 이를 통한 시너지를 강조합니다. 조직의 통합을 견인하고, 구성원을 코치함으로써 조직에 기여하도록 자연스럽게 이끌며, 조직 내 신뢰를 주도적으로 구축하는 리더십이 강조됩니다. 이런 조직에서는 개개인성, 다양성이 중요시됩니다.


넷째, 배양 문화입니다. 배양 문화에서는 조직이 가진 가치 Value와 목적 Purpose을 기반으로 한 조직, 개인의 학습 Learning과 성장 Growth이 강조됩니다. 배양 문화 속 기업은 조직 구성원이 내적 동기부여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성장을 이룰 때 조직의 성공도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개개인의 잠재력을 끌어내고자 합니다. 따라서 결과이전에 성장하고자 하는 진정성 있는 태도, 과정이 강조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슈나이더 W. Schneider에 따르면 하나의 조직은 살아있는 사회 구조로서 통상적으로 이러한 네가지 유형 중 하나의 지배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평축은 조직이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리는지를 말해주고, 수직 축은 그 조직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에 따르면 통제, 능력 중심 문화에서는 의사결정에 있어 인간성을 개입시키는 것을 지양합니다. 대조적으로 협력과 배양 문화는 비공식적이지만 참여적인 방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자연스럽고, 사람과 맥락을 중시합니다.


William E. Schneider, Organizational Culture Model.


애자일 문화 : 협력 Collaboration과 배양 Cultivation


영향력 있는 애자일 코치 마이클 스페이드 Michael Spayd는 2010년 애자일 개발 방법론(Scrum, XP, Lean-Kanban)을 이행하는 조직을 대상으로 애자일 문화 서베이(culture survey of Agilistas)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애자일 방법론을 수행하는 조직 구성원들은 ‘협력’과 ‘배양’이라는 문화적 유형으로 뚜렷하게 수렴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9]

 

Agile Culture Survey 결과(출처: culture survey of Agilistas, Michael Spayd)


애자일 코치이자, 애자일 문화와 리더십 분야 전문가 마이클 사호타 Michael Sahota는 나아가 애자일 선언문(Agile Menifesto)과 12개의 원칙 중 조직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표현(Statements)을 슈나이더 모델에 비추어 봤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이 협력과 배양 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이클 스페이드 (Michael Spayd)가 이행한 조사와 유사한 결론입니다.


애자일 선언을 슈나이더 모델에 Mapping

사호타 Sahota는 일련의 근거를 통해 조직 문화가 상호 협조적이거나 개인의 성장을 중요시하는 분위기일 때 비로소 ‘애자일’은 제대로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일련의 해석은 ‘협의’의 애자일 조차도 ‘가치 중립적인’ 프랙티스(Practice)가 아니라 ‘가치 중심적인’ 철학(Philosophy)에 가깝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를 확장, 포괄하는 ‘광의’로서의 애자일은 더욱 그런 속성을 갖습니다. (다음 연재분부터 이어질 애자일 토양 부분을 참조부탁드립니다) 문제는 애자일이 지향하는 문화가 일반 기업이 그간 지향해온 바와 거의 모든 면이 다르다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을 비롯한 대다수의 기업은 관료-권위주의에 뿌리를 두고 ‘통제’에 익숙한 문화가 지배적이며 그 가운데에서 ‘성과주의(능력중심 주의)’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던 실정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애자일 문화’로의 전환을 꾀한다면 그것은 곧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직 구성원의 일하는 방식, 리더십, 전략과 구조, 프로세스 모든 것이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상(斷想)


 짐깨나 지는 정신은 이처럼 더 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마다하지 않고 짊어진다.  그러고는 마치 짐을 가득 지고 사막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낙타처럼 그 자신을 사막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그러나 외롭기 짝이 없는 저 사막에서 두 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낙타는 사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사자가 된 낙타는 이제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새로운 가치의 창조, 그러나 사자라도 아직은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 다만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적어도 사자의 힘은 그것을 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말해보라, 형제들이여. 사자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어린아이는 해낼 수 있는가? 왜 강탈을 일삼는 사자는 이제 어린아이가 되어야만 하는가?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그렇다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원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References

[1] 장류진,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中, 제 21회 창비신인소설상 당선작,
http://magazine.changbi.com/q_posts/%EC%9D%BC%EC%9D%98-%EA%B8%B0%EC%81%A8%EA%B3%BC-%EC%8A%AC%ED%94%94/?board_id=2659

[2] Thomas S. kuhn, 홍성욱 옮김,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까치글방

[3] 위르헌아펄로(Jurgen Appelo), Management 3.0: LEADING AGILE DEVELOPERS, DEVELOPING AGILE LEADERS, 1st Edition, Pearson Education

[4] Edgar Schein, Organization Culture and Leadership (4th Edition)

[5] Ahmed Sidky, ICAgiel, https://icagile.com/

[6] Satya Nadella, 최윤희 옮김, 히트리프레시 Hit Refresh: The Quest to Rediscover Microsoft's Soul and Imagine a Better Future for Everyone, 흐름출판

[7] Ahmed Sidky, Mindset & Culture: At the Heart of a Winning Agile Transformation 애자일코리아 컨퍼런스 2018 기조연설, https://youtu.be/kHgq_HNzhgo 

[8] William e. Schneider, The Reengineering Alternative: A plan for making your current culture work, Mc Graw Hill

[9] Michael Sahota, An Agile Adoption and Transformation Survival Guide: Working with Organizational Culture, 2012 내 Culture survey of Agilistas Culture Survey of Agile 부분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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