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Agile Management | 애자일 토양
[BGM] 선우정아, 생애
현실이 어떻게 작동하고, 그 현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현실에 대응하는 정신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 Ray Dalio, 원칙(Principles) 中-
나무, 꽃과 같은 식물을 심을 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토양입니다. 식물학에서 토양은 그 절대적 기준으로서도(산소, 물, 영양원소), 심고자 하는 식물과의 상대적 관계로서도 직간접적으로 반드시 고려해야할 전제조건입니다.[1]
애자일 경영을 일종의 (잘 자라기만한다면 매우 건강하고 유용한 품종의) 나무, 나아가 숲에 비유한다면 이를 도입하고자 하는 조직과 주체가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런 해답이 나옵니다. 바로 ‘토양’, 즉 기업을 둘러싼 경영 철학/문화적 환경입니다. 기업의 토양이 애자일이라는 나무를 심기에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가 우선 점검되어야 합니다. 만약 기업 토양이 애자일 나무를 심기에 적절한 환경이 아니라면, 적정 토양을 개간할 것인지 아니면 과감히 애자일 모종을 포기할 것인지부터 의사결정해야 합니다. 애초 심고자 하는 식물이 자랄 수 없는 토양에 바로 이를 심은 채 열매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농부는 없을 것입니다.
애석하게도 일반 한국 기업 토양은 애자일을 심기에 알맞은 토양 조건을 대체로 갖추지 못했습니다. 거대한 애자일 물결(Wave), 유행 속에서 기업/조직과 주체는 먼저 선택해야 합니다. 토양을 개간할 것인지, 과감히 모종을 포기할 것인지. 어느 쪽이든 담대한 의사결정, 비용이 수반되는 문제입니다. 다만, 필자는 앞선 Chapter에서도 수차례 언급했듯 기업 경영을 둘러싼 사회/문화/경제 환경상의 변화무쌍한 변화와 압박을 고려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양 개간을 준비하는 것이 좀 더 현명한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입니다. 물론 의사결정의 몫은 기업 주체일것입니다.
다만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우선 조직의 토양에 대해 반드시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애자일이 요구하는 토양은 기존 주류 경영이 뿌리를 내린 토양과는 확연히 다른 결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애자일 토양 개간은 애자일 IT영역의 특수한 환경에서나 적용 가능한 개발방법론을 넘어 ‘정상 경영’으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덧붙여 애자일 경영을 표방하는 기업의 진실성(Integrity)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애자일의 문화적 토양이란 정확히 무엇일까요? 에드거 샤인의 조직문화 프레임 워크를 통해 이를 좀 더 명확히 분별해봅시다. 그는 조직문화가 세가지 차원으로 구성된다고 봤습니다. 인공물(Artifacts), 표방하는 믿음과 가치(Espoused Beliefs & Values), 암묵적 기본 가정(Basic Underlying Assumptions)입니다. [2]
인공물 Artifacts는 어떤 문화에 속한 집단이 이를 강화하기 위해 혹은 문화를 반영해 바깥으로 내어놓은 인위적인 산물, 유물을 의미합니다. 보이는(Visible) 조직 구조나 업무 프로세스, 나아가 조직을 상징하는 브랜드 로고, 캐릭터 등과 같은 디자인물, 혹은 공간 등이 이에 속합니다. ‘애자일’에 비추면 스크럼, 칸반, XP, 린스타트업, Dev-Ops 등의 ‘애자일 방법론’이 이에 해당합니다. 관찰 가능한 행동, 결과로 나타나는 인공물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만큼 문화, 애자일을 이해하는 일차적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공물이 갖는 한계는 그 의미를 ‘해석, 판독’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가 웅장하고 멋진 무덤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정작 피라미드가 갖는 의미와 원리를 이해하거나 나아가 이를 재구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애자일 경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크럼이라는 프로세스를 그대로 도입해 흉내 낸다고 ‘애자일’ 문화를 이해하고 구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한 조직의 문화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행동, 결과(인공물)가 ‘왜’ 그렇게 나타났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를 좀 더 파악할 수 있는 매개는 조직이 대외적으로 표방, 표현하는 신념, 가치입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난 표현’ 이라는 측면에서 인공물과 유사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진술, 정의로 이루어졌기에 문화적 맥락을 파악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됩니다. 대표적으로 기업이 공개하는 미션과 비전, 핵심가치가 이에 해당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애자일 도구, 방법론을 고안한 애자일 선구자들이 유타주 Snowbird에서 모여 주창한 ‘애자일 선언문(Agile Manifesto)’, 구글이 공개한 10가지 워크 룰 역시 ‘표방하는 믿음과 가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구글의 10가지 워크 룰[3]
1. 일에 의미를 부여하라. (Give your work meaning)
2. 구성원들을 믿으라 (Trust your people)
3.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채용하라 (Hire people who are better than you)
4. 성과관리와 성장을 혼동하지 말라 (Don’t confuse development with managing performance)
5. 최악의 직원과 최고의 직원(2개의 꼬리)에게 초점을 맞추라.(Focus on the worst and the best(the two tails)
6. 검소하면서 관대해지라 (Be frugal and generous)
7. 급여는 차별적으로 지급하라 (Pay ‘unfairy’)
8. 넛지하라 (Nudge)
9. 기대치가 과해지지 않도록 관리하라 (Manage the rising expectations)
10. 즐기라, 그리고 1번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라 (Enjoy! Then go back to no.1 and
start again)
이론상으로 드러난 가치 Statement는 보이는 인공물이 ‘왜’ 그렇게 표현되는지, 나아가 기업의 조직이 어떤 문화를 갖고자 하는지를 해석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이 역시 ‘문화적 토양’에 대한 충분한 답을 주지 못합니다. Netflix의 문화/가치 기술서(Culture Deck) 서문은 대부분의 기업 실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많은 회사들이 듣기 좋은 기업가치들을 로비에 전시해두고 있다. 사기사건(미국 최대 분식회계 사건)으로 파산에 이른 엔론은, CEO가 감옥에 가게 되고 그들의 로비에 다음과 같은 기업가치들을 전시해두고 있었다.”
- 진실성(Integrity)
- 소통(Communication)
- 존중(Respect)
- 탁월(Excellence)
하지만 이 사건을 봤을 때 이 가치들은 엔론에서 진짜 가치있게 여겨지던 것이 아니었다.
Netflix Culture Deck 『Freedom & Responsibility』[4]
인공물과 표방하는 가치는 외부로 표출된다는 특성 상 상대적으로 우리가 접하기 쉽고 이를 따라하기도 쉽지만 그것이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변화를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문제는 거의 모든 기업은 이 두 가지만 신경 쓴다는 것이지요.
기업들은 실리콘 밸리가 표방하는 미션과 비전과 핵심가치, 다양한 ‘Statement’들을 분석해 그 중 ‘그럴듯한’ 문구를 차용해 응용하고 그들의 공간과 캐릭터 등 눈에 띄는 몇가지 특징만을 복사해 붙여넣기 합니다. 스크럼을 도입하고 직급 호칭을 폐하고 우리 기업이 ‘변하고 있다’는 부분을 외부로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결과는 자명합니다. 넷플릭스의 냉소처럼 기업의 핵심가치는 어김없이 홈페이지 속에 잠든 화석이 되거나 유행에 편승한 ‘마케팅’용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조직 구성원들은 조직의 현실과 외적 ‘표현’ 사이의 괴리, ‘인지 부조화’ 속에서 갈등하거나 체념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 조직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혹은 새로운 문화를 제대로 구축하고자 한다면 보이지 않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애드거 샤인은 암묵적 기본 가정이야말로 조직 문화를 결정하는 진짜 핵심 요인이라고 밝혔습니다. 보이는 행동과 언어, 외연 그 이면에 자리한 조직 리더, 구성원의 ‘실질적인’ 믿음, 가치, 인식과 사고, 감정이 ‘문화’를 결정하는 진짜 요소이자, 곧 ‘문화적 토양’입니다.
암묵적 기본 가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애자일 경영을 준비하는 조직에 가져다 주는 효용은 명확합니다.
첫째, 인공물(애자일 방법론, 도구들)과 표방하는 가치(애자일 경영을 추구하고 또 실행하는 기업이 표현하는 가치, 선언 등)에 담긴 의미와 맥락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넷플릭스가 냉소한 엔론 사례처럼 어떤 기업이 홍보, 마케팅 용으로만 애자일을 이용하는지 그들이 겉으로 표방하는 표현과 실제 행동이 일치하는지(엔론의 핵심가치 Integrity가 갖는 본디 의미다.)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럴듯한 속임수, 포장에 헛돈을 쓰지 않게 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셋째, ‘파리(破離)가 됩니다.’ 애자일을 논하다 보면 자주 인용되는 아이키도 격언 ‘수파리(守破離)’를 빌린 표현입니다. 우선 규칙(태권도 품세와 같은 패턴)을 지키고, 이를 깨트리고 나아가 이를 넘어서는 것이 진정한 무공에 이르는 길이라는 의미입)’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파리(破離)’로 나아가는 길마저 스스로 차단한 느낌입니다. ‘애자일’의 핵심이 VUCA 환경에 필요한 적응/반응 역량을 갖추는 것임을 감안할 때 우리는 수(守)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파리(破離)로 이르는 길을 모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토마스 쿤 Thomas Kuhn은 “패러다임이 변할 때는 세계 자체가 패러다임과 함께 변한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또 그는 그렇기에 이 패러다임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경고했습니다. 패러다임은 기존 집단에 의해 완강히 유지되기 때문에 그들이 세계를 보는 방법, 익숙함이 세계 안의 과학(여기서는 경영)이 실행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방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이, 어떤 이유로 방어되는지를 면밀히 알아야만 합니다. 그 대상은 우리 자신의 관성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애자일 경영을 이야기 함에 앞서 이것이 가진 ‘암묵적 가정’, ‘토양’이 그토록 중요하다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경영혁신에 실패하는 이유]
C회장: “요즘 새로운 거 뭐 없나? 지난번 컨설팅 펌 A사와 진행했던 ‘성과주의 문화’ 이후로 좀 주춤 한 것 같아. 실리콘밸리 회사들을 보라구. 우리는 끊임없는 혁신과 체질 개선이 필요해. 그들을 보고 일하는 방식부터 좀 바꿀 필요가 있어. 보고 형식으로 PPT를 금지한다든지.. 조직 한번 다시 제대로 바꿔볼 때가 됐어. 가장 쎈 곳으로 한번 불러와바.”
H임원: “예 알겠습니다. 마침 글로벌 컨설팅 M社 코리아 대표 P가 새로운 아젠다가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회장님께서 만족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지난번 성과주의 문화 아젠다도 P가 오랫동안 제시한 것이었는데, 용역 비딩 과정에서 A사와 진행한 것입니다.”
(성과주의 문화, 변화를 주도했던) H임원의 주도 아래 C회장과 M사 한국지사 대표가 몇번의 만남을 가졌다. 그로부터 한달여 후 대 임직원 타운홀 미팅이 개최되었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혁신’을 해야 합니다. 실리콘밸리 회사들 못지않게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환경에 맞추어 일하는 방식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수직적인 체계를 벗어나 정말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경쟁이 아닌 협력을 해야 합니다. ‘애자일’조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부서 간의 경계를 허물고 여러분이 섞여 일할 수 있는 소규모 팀제로 개편을 추진할 것입니다. 애자일 문화 전환을 위한 전담 조직을 만들 것입니다. 저 역시 올해 안으로 회사 임직원을 100회 이상 직접 만나 여러분의 의견을 들을 것입니다. 임원들의 호칭도 없애고, 공간도 게방형으로 단계적으로 전면 리노베이션할 것입니다.”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말한다. “애자일은 또 뭐냐..”, “성과주의 도입한다고 조직이랑 제도를 계속
바꾸면서 경쟁을 강조하더니 갑자기 협력? 뭥미.”, “진짜 우리 회장님은 새로운 거 좋아하시네..” “혁신, 일하는 방식, 체질개선.. 근데 단어는 10년전부터 매년 들어온 거 같어. 저걸 포장하는 단어만 바뀌는 거지.. 이번에도 뭐 얼마 안가겠지...”
아는 사람은 아는, 회사에서 경영 컨설팅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보여주는 익숙한 풍경입니다. 기업 신년사처럼 기업은 매번 관리에 대한 변화와 혁신을 외치지만 결국은 ‘홍보’로 그치고 맙니다. ‘혁신’, ‘일하는 방식’, ‘변화’, ‘문화’에 대한 메시지는 5년전에도 10년전에도 반복되는 클리셰로 전락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비즈니스 혁신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유통/운영의 혁신, 상품의 혁신, 경영 전략의 혁신, 관리 혁신 등.. 각각의 혁신은 기업의 성공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혁신을 그 영향력을 준거로 계층화해 본다면 조금 더 의미 있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개리해멀 런던 비즈니스 스쿨 교수는 비즈니스 혁신을 그림과 같이 운영 혁신 – 제품혁신 – 전략혁신 – 관리의 혁신 순으로 계층화했습니다. 상위 계층으로 갈수록 좀 더 높은 수준의 가치 창출과 경쟁에서의 방어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6]
그런데 주목할 점은, 모두가 ‘혁신’을 외치고 기업 리더들에게 ‘혁신의 챔피언’을 강조하다 못해 ‘강요’하기까지 하는 현재 까지도. 정작 가장 높은 수준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관리 혁신’ 은 다른 종류의 ‘혁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더디게 진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리혁신이 경쟁자를 뛰어넘는 성과를 가져온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음에도, 끊임없는 관리혁신 프로세스를 갖고 있는 기업들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매우 이상할 따름이다… 지난 70년이 넘도록 ‘기술혁신’과 관련된 논문은 5만 2천건 이상, ‘제품 혁신’은 3천건 이상, 상대적으로 최신이론인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포함한 ‘전략 혁신’은 600건 이상이다.. 이에반해 ‘관리’혁신, ‘조직’혁신 등과 관련된 논문은 300건 이하로 검색될 뿐이고 그마저도 새로운 경영에 대한 창조나 발명보다는, 베스트 프랙티스의 전파와 보급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개리해멀_Gary Hamel, 경영의 미래_the future of management 中
개리해멀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단합니다.
첫째, 대부분의 관리자들은 스스로를 발명가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나 마케터, 전략가들과달리 관리자들의 역할 중심에는 혁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아서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관리자들은 선발과 동시에 교육을 받고 같은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능력에 대해 보상을 받는다. 따지고 보면 아무도 관리자가 혁신가가 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남들의 훌륭한 아이디어를 성장과 수익으로 연결해주는 역할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둘째, 많은 경영진들은 대담한 관리혁신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연구개발 종사자와 제품 개발 전문가들은 빅 히트작이 곧 생겨나리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과는 상반된 인식이다.. 이상하게도 관리자들은 기술의 약진에도 놀라지 않으며 심지어 관리의 실패에도 담담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러한 모순에 직면했을 때, 많은 경영진들은 인사이동과 구조조정 등 실현 가능한 것을 선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이제껏 그래왔듯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거나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도가 늘어나거나 직원을 믿을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나거나 직원 스스로 일에 대해 의미를 찾고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한계가 실체가 있는 것이든 상상에 의한 것이든 경영진들이 이런 한계를 처음부터 전제하기 때문에 관리자들의 상상력은 부족해지고 그 결과 관리혁신에도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개리해멀_Gary Hamel, 경영의 미래_the future of management 中
이러한 이유로 ‘관리’에 대한 ‘시장’은 누군가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시장이 됩니다. 매년 기업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선정, 선언되지만 막상 기술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를 내놓지 않아도, 혹은 조직 운영의 결을 역행해 질을 떨어뜨려도 응당 사실은 누구도 (경영자도, 하물며 구성원도)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매번 ‘프레임’만 잘 짠다면 언제든 반복해서 진입할 수 있는 화수분 같은 먹거리 시장이 형성됩니다.
‘애자일 경영’을 두고도 위와 같은 정치 역학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은 주의해야합니다. ‘애자일’이 이렇게까지 기업 경영의 강력한 화두로 등장하고 유행하는 것은 ‘애자일 방법’이 가진, ‘대안’으로서의 순수한 힘도 있겠지만, 이것이 애자일 현상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얼마전 한국사회를 크게 휩쓸었던 블록체인, 암호화폐 현상을 떠올려 봅시다. 전문가들은 블록체인 기술, 암호화폐가 가진 분명하고 유익한 장점과 잠재력이 크지만, 우리사회에 강력히 불었던 암호화폐 투자(혹은 투기) 바람은 이와 별개로 어떤 정치적, 집단적 움직임에 의한 기 현상이라고 평합니다. 실제 암호화폐 거래시장 열기는 급격히 사그라들었습니다.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서 애자일을 적극 수용, 강력히 프레이밍(Framing)하고 기업에 제시하고 있는 힘있는 주체는 글로벌 선도 경영 컨설팅(인사/조직 전문 펌 포함) 회사들입니다. 경영, 조직에 최적화된 전략, 운영 방법론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이를 소개하는 것은 시장을 선도하는 전문가 집단으로서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일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1~2년 전 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사회, 기업, 정부에 테일러리즘 기반의 ‘성과주의(Meritocracy) 문화 – 구성원 간의 경쟁 및 보상 차등 강화를 통해 기업 효율을 강조하는 정형화된 조직/인사 컨설팅 방법론 중 하나 -’를 심기위해 심지어 공공부문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자 했던 동일주체가 ‘전통적 성과주의 문화 방법론’이 가진 특성과는 결이 매우 다른 ‘애자일’ 대 전환을 외치고 주도하는 것은 썩 매끄럽지 않은 태세전환입니다. 때문에 과연 애자일의 본질과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그저 컨설팅 시장의 ‘새로운 먹거리’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됩니다.
[애자일 경영을 대하는 우리들의 태도]
스크럼에 대해서, 칸 반에 대해서, DevOps에 대해서 혹은 ‘애자일 방법’의 역사에 대해서 접하기는 쉬울 것입니다. 관련 정보를 취하고 심지어 남에게 전달, 교육하기도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애자일 경영이 곧 ‘문화’이며 ‘문화’는 조직의 정신부터 전략 프로세스까지 경영의 총체를 아우르는 ‘패러다임’과 맞닿아 있으며 때문에 ‘리더십’ 파이프라인 전체가 이를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좀처럼 성공하기 힘들다는 사실에 ‘직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에 직면하더라도 남은 과제는 또 있습니다. 과연 우리 회사가 추구해야 하는 ‘애자일 경영’이, 그에 비롯해 정의 내려야 하는 ‘성공’과 ‘문화’는 대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원초적이고도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애자일 경영’의 본질은 ‘새로운 답이 있다.’가 아니라 ‘지속 가능하게 새로운 답을 구할 수 있는 체질’을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리더가 하물며 구성원 역시 이러한 ‘애자일 토양-애자일이 내포한 속성과 맥락’을 이해하고 제대로 고민하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까지나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 속 스크럼, 혹은 필자가 경험한 애자일을 두고 실제 벌어졌던 촌극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특히 그 일에서 실패라는 것이 너무 쉽고 흔하다면?
-아툴 가완디, 어떻게 일할 것인가 中-
References
[1] 식물이 제대로 자라기 위한 필수적인 8가지 조건은 1) 종자 2) 빛 3) 온도 4) 토양수분 5) 토양구조 6) 토양공기 7) 토양 비옥도 그리고 8) 토양유해성분 부재이다. 이 중 처음 3가지는 토양의 ‘위치’적 측면에서 간접적 관계가 있고, 나머지 5개는 토양 관리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2] Edgar H. Schein, Organizational Culture and Leadership, 3rd Edition, John Wiley & Sons
[3] 라즐로 북 Laszlo Bock, 이경식 옮김,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Work Rules!), RHK
[4] Netflix Culture Deck, 『Freedom & Responsibility
[5] Edgar H. Schein, Organizational Culture and Leadership, 3rd Edition, John Wiley & Sons
[6] Gary Hamel, Bill Breen 권영설 옮김, 경영의 미래 The Future of Management, 세종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