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
누가 한 말일까?
국회의원? 의사? 법조인? 경제인?
답은 조선시대 실학의 대명사인 다산 정약용이다.
그는 유배지에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서울에서 10리안에서만 살라고 당부했다. 혹여나 서울 안에서 살 돈이 모자라면 근교에서 과일농사를 지어 돈을 벌어서라도 서울 안에 들어가 사는 것을 강권하고 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이 있다.
과거에는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아 매일 하늘이 푸르렀다.
과거에는 모두 없이 살아 빈부격차 없이 행복하게 어울렸다.
과거에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말을 잘들어 예의가 발랐다 등등
하지만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공장 매연에 공기질이 지금보다도 안좋았고
그때에도 빈부격차는 있어 없이 사는 아이들은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거기에 '요즘 애들 싸가지 없다.'라는 말은 수메르 점토판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착각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 서울집중이다.
물론 현재 서울에 인프라가 집중된 상황이 좋은 것도,
지방 소멸의 위기가 가시화된 것을 반기는 생각도 아니다.
다만 서울로의 집중은 이미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지금의 언 발에 오줌싸는 대책으로는 지방소멸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흔히 지방분권이 잘 이루어진 우수사례로 꼽는 것이 유럽, 그 중에서도 독일이다. 독일은 실제로 각 지방별로 유수의 대기업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역사에 기인한다.
독일이 실질적으로 하나의 국가로써 행정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최초로 통일된 해는 1871년이다. 이때 우리나라는 고종이 즉위한 지 8년 째 되던 해이고 신미양요가 일어났던 해다.
그 전까지 독일은 중세부터 19세기 초까지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이름 아래, 작은 제후국 수백개가 구성했던 나라이고 신성로마 제국 해체 이후에도 프로이센, 작센, 바이에른 등 수많은 국가가 이합집산하던 국가였다.
각자가 중심이었던 수백개의 나라가 하나로 합쳐지고 그 인프라가 중세부터 천년에 가깝게 쌓여왔던 문화이니 자연스레 지방분권이 발달할 수 밖에 없었다. 각 지역의 사람은 자신들의 고향에 자부심을 가졌고 이는 창업 후 본사의 위치로도 이어진다. 이외에도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는 애초에 지방분권으로 시작된 연방제 국가라는 점에서 오는 것이다. 이는 같은 연방제 국가인 미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졌던 나라이다. 멀리보면 고려 현종 이후로 지방분권은 사라졌고 가까이 봐도 조선 이후로는 완벽한 중앙집권이 이루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당장 한국사에 등장한 마지막 지방군벌이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다.
드라마같은 매체에서는 만석꾼 같은 지방토호들이 엄청난 힘을 지닌 것처럼 나오지만 이들은 중앙에서 '직접' 파견한 수령들의 말 한마디에 벌벌 기었다. 드라마에서 이른바 '군약신강君弱臣强'으로 표현되는 조선 세도정치 시기도 마찬가지이다. 세도정치 시기에서도 존재감이 없던 헌종의 일화가 있다. 하루는 자신의 외숙부이자 권신인 조병구가 자신의 앞에서 애체(안경)을 쓰고 있자 헌종이 이를 보고 '외숙의 목에는 칼이 들어가지 않는가?' 라고 말하자 조병구가 쩔쩔 매다 근심하다 죽었다는 이야기가 야사로 전해지기도 한다. 단순히 야사가 아닌 정사에서도 조선의 왕권은 당시 절대왕정을 구가하던 유럽 제국주의보다 강했고 이는 삼천리 조선땅의 모든 권력이 임금과 그가 있던 한성에 집중되었음을 반증한다.
조선의 창건에서부터 시작을 해도 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중앙집권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더군다나 수도도 그대로 600년이 넘도록 서울 한 곳이었다. 자연스레 온 나라의 인프라가 서울에 몰릴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로 보내라.'는 속담은 거저 생긴 것이 아니다. 서두에 소개한 다산의 편지도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수도 서울'의 아성을 인위적으로 깨트릴 순간이 현대사에서 두 번 정도 있었는데 모두 정치적인 이슈로 인해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중 두번째 순간이 좌절되며 지방소멸은 사실상 확정이 되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하곤 한다.
혹자는 통일이 되며 평양을 중심으로 지방분권이 가속화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아마 그때도 평양은 현재의 부산 정도의 위상만 차지할 뿐, 서울만큼의 위상을 보유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 생각이 든다. 오히려 서울 및 경기북부의 도시화가 개성일대까지 이어지는 것은 기대할 수 있겠지만.
멀리 돌아 말했지만 수도권의 집중은 중앙집권화가 시작된 국가라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 밖에 없다. 이는 유럽에서 비교적 빠른 시기 중앙집권화가 이루어진 프랑스가 파리를 중심으로 한 일드 프랑스에 모든 인프라와 인구가 대다수 집중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지방이 소멸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은 역시 일할 기업과 일할 사람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일할 사람이 없다는 지방에 혁신도시를 깔아놔도 살려내질 못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생각보다 해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