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는 길,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아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동생 친구의 어머니이자 같은 아파트 같은 동의 주민이자 엄마의 동네 친구이기도 하다.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언제나 같은 높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신다.
"어머~ 예진아 잘 지내나? 요즘 뭐 하고 지내?"
저는 요즘 아르바이트하고, 글 쓰고, 책 읽고, 간간이 종이접기도 하고 엄마 밥 먹으면서 지냅니다. 하하하~ 하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러지 못했다.
"어…. 알바도 하고…. 하하..."
"우리 아들도 휴학하고 알바하는데 뭐 자기 알아서 한다고 잔소리도 못 하게 한다~ 요즘 애들이 그렇지 뭐~"
라는 말에 저는 댁의 아드님과 다르게 나름의 꿈도 있고 열정도 있는 요즘 애들이랍니다.라고도 말하지 못했다. 거기 아드님이 아주머니의 말과 다르게 꿈과 목표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내 열정이 글이라고 하면 더더욱 한심하게 생각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글을 쓴다. 당장 먹고사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을 쓴다. 왜 언제나 나를 살게 하는 일은 내가 먹고사는 일과는 거리가 먼 것인가. 토익 공부나 컴퓨터 활용 공부가 내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주 신나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공부했을 텐데 말이다. 요즘은 나를 살게 하는 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데, 그것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어떤 일이든 먹고사는 문제가 되어버리면 그냥 갑자기 하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며칠 전 오랜 목표였던 브런치의 작가가 덜컥하고 되어 버렸다. 브런치는 작가 승인을 받아야지만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인데, 처음에는 겁 없이 나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무런 준비 없이 지원했다가 대차게 거절당했다. 그때는 내 글에 어느 정도 자부심이 있었던 터라 은근한 기대 하고 있었고, 그만큼 거절에 대한 실망도 컸다. 그 이후로 알아보니 인터넷 여기저기에 '브런치 작가 되는 법! 합격 꿀팁!'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는 걸 보니 나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듯했다. 이번에 지원할 때는 정말 그냥 넣어나 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다. 그것도 알바하다가 손님이 없어 심심하던 차에 내 앞에는 매장용 노트북이 있었고, 핸드폰은 이제 막 지겨워진 참이었기에 노트북 마우스만 이리저리 굴리다가 내린 결정이다. 당연히 처음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는 너무 기쁘고 감격스러워서 옆에 있는 알바생에게도 자랑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드디어 내 글이 인정받는구나. 1년 넘게 써온 내 시간이 조금씩 빛을 보는구나.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글은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걸 막 깨달은 참이었기 때문이다. 글은 결국 나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디까지가 진짜 나인가. 나는 글 속의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 무엇보다 대체 무엇을 써야 할까. 사람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글을 연재하겠노라! 내 맘대로 공표하고, 이제는 브런치 작가까지 되어버렸으니 나는 진짜 글쟁이가 되어버렸다. 물론 다 내가 좋아서 한 짓이다. 누군가 휴학한 이유를 물어보면 아주 자랑스럽게 아 저는 글을 씁니다. 글 쓰는 게 좋아서 한번 질리게 써보려고 휴학했습니다.라고 말하던 내 입을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살고 싶어서 썼고, 좀 지나서는 재밌어서 썼고, 나 말고도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서 썼고, 나처럼 행복과 슬픔을 반복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 썼다. 나도 살아있는데 여러분도 살자! 다 같이 울고 웃으며 살자! 하는 마음으로 썼다. 지금은 그냥 쓴다.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는 글은 재미가 없고, 재미만 있는 글은 알맹이가 없고, 아니 사실 재밌는 글을 쓰는 법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쓴다. 계속 쓰다 보면 재미도 있고 알맹이도 있으며 나도 존재하고 그렇다고 나를 다 드러내지는 않는, 그런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글은 쓰면 쓸수록 계속 어려울 것이다. 사랑을 하면 할수록 사랑에 대해 더 모르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나 글이랑 연애하나 보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게 사랑 말고도 또 있다니. 기쁘고도 아득한 일이다.
누군가는 글을 쓸 때마다 새롭게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난 것일까. 아니 몇 번이나 다시 태어나게 될까. 다시 태어날 때마다 글을 쓰고 싶다. 지금과 똑같이 당신들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되고, 똑같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고 해도 다시 태어나 글을 쓸 것이다. 그때는 나를 살게도 하고, 먹고살게도 하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