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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음.

by 단어

이틀에 걸쳐 쓰던 글을 엎었다. 아무래도 내보일 자신이 없는 글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마음이 가난해야 하는데 며칠간 마음이 넉넉하다 못해 꽉 차서 도무지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마음이 가난하기에는 내 상황이 너무 다복해 쓰기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글은 행복한 사람보다는 슬픈 사람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슬픈 나를 위로하기 위해 시작한 글인데 이미 충분히 위로받은 나이기에 이제 슬픔보다는 기쁨에 가까운 나이기에 글을 쓰기에 더더욱 꺼려졌다. 감히 내가 글을 써도 되는 것인지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지 자꾸만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글을 발행하고, 심지어 그 글이 납작하지 않고 입체적인 슬아작가님의 글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작가님의 글은 담담하지만 따듯하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사랑을 말한다. 사랑을 쓰지 않고도 사랑을 말하는 것. 내가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이자 가장 쓰고 싶은 글이다. 읽는 사람은 미소를 짓게 되고 쓰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글을 어쩜 이리도 잘 써내시는지.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죄다 슬아 작가님의 글을 읽어봤다면 아마 더 이상 내 글을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혹 슬아 작가님을 알면서도 내 글을 읽어준다면 당신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가난한 마음, 사랑, 글에 대해 생각하다가 우리 엄마가 떠올랐다. 가난한 마음으로 하는 사랑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사랑을 듬뿍 쏟아부으나 지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자랑하지 않는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엄마는 매일매일 아빠에게 갔는데 그 거리가 꽤 멀었다. 우리 집에서 해운대에 있는 병원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운전도 할 줄 모르는 엄마는 버스, 지하철을 타고서 한 시간을 갔다가, 한 시간을 되돌아와야 했다. 안 그래도 체력이 약한 엄마는 일주일 넘는 시간 동안 아주 피곤했을 것이다. 무심결에 엄마 많이 피곤하겠다~라고 말을 했는데 엄마도 아무렇지 않게 아빠 보러 가는 건데 뭐가 피곤하니~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냥 양말을 신으면서. 가방을 챙기면서. 그러고는 새로 산 양말을 자랑하며 뿌듯하다는 듯이 집을 나선다. 새로 산 양말 일곱 켤레는 백화점 세일 때 한 묶음에 만 원 주고 산 건데, 양말 한 켤레마다 요일이 적혀있다. Monday, Tuesday, Wednesday, Thursday, Friday, Saturday, Sunday......엄마는 요즘 월요일에는 Monday양말을, 화요일에는 Tuesday양말을 신는다. 신은 뒤에는 꼭 사진을 찍어 가족 톡방에 올린다. 깜찍한 문구와 함께.


가난한 마음이란 기쁠 때 마음껏 기뻐하고 슬플 때는 힘을 다해 슬퍼하는 것. 주는 사랑을 아까워하지 않고 받는 사랑 또한 그 사랑의 깊이만큼 기뻐하는 것 아닐까. 가난한 마음은 작은 사랑도 깊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가난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우리 엄마는 자주 웃고 자주 운다. 세상 모든 사랑에 반응한다. 한입을 먹어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먹고, 아빠의 개그에 가장 크게 웃으며 뉴스의 사연을 보고 눈물짓는다.

나는 언제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가난한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글은 나에게만 향해 있던 시선을 조금씩 당신에게로 옮기는 작업이라는데. 나의 범위가 점차 확장되는 작업이라는데. 언제쯤 '나는'이 아닌 다른 주어를 사용하는 날이 올까. 마음은 가난하고 두 손은 비어있으며 다리는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든 당신에게 손 뻗을 수 있도록. 당신에게 달려가 닿을 수 있도록. 나는 나의 기쁨으로, 슬픔으로, 행복으로, 아픔으로 당신을 위로하고 싶다. 내 글을 읽는 당신들이 항상 살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쓴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글을 쓰고 싶다. 가난한 마음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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