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왠지 격한 발라드가 끌리는 거 있지. 그래서 하루 종일 발라드만 들었어.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에도, 가서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모두 발라드와 함께했어. 발라드 속 사랑 이야기는 다들 왜 그리 애절한지. 예전에는 발라드를 들으면서 이해를 못 했다? 아니 저렇게 아파하고 슬퍼할 거면서 왜 헤어진 거야? 그냥 다시 만나면 되지. 헤어졌으면 깔끔하게 딱! 서로 갈 길 가고!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사랑이란 게 맺고 끊음이 정확한 게 아니더라고. 애초에 그럴 수가 없는 거더라고. 엄청 구질구질하고 미련하고 꼴사납고. 하나도 안 쿨하고 하나도 안 멋있어. 사랑이라는 거.
발라드를 들으면서 지난 인연들을 떠올렸어. 보통 발라드는 이별 노래가 많으니까. 자연스레 이별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는 거야. 오래된 인연들을 끌어오는 거지. 참 웃긴 게, 그때는 이 사람 없으면 안 될 것 같고, 진짜 죽을 것 같았거든. 그런데 이것 봐. 없어도 잘만 살고 있잖아. 그때의 나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했지. 아주 많이 사랑했어.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엄청 힘들었고. 가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했던 내가 이상하게 느껴져. 분명 나는 그때도 진심이었는데. 어느새 그 진심은 흐려지고, 지나가고, 잊히고. 나는 지금 너를 사랑하지. 그것도 아주 많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마음을 넘어서서. 너를 사랑하지.
그냥 겨울이 되고 날씨가 추워지니 발라드가 듣고 싶었어. 자꾸만 슬픈 영화가 생각이 나고 이별 노래가 떠오르고 막 그랬어. 나는 슬픈 영화를 보고 이별 노래를 듣고 너에게 전화를 걸어. 너는 언제나처럼 거기에 있어. 내가 과거로 갔다가, 저기 멀리 있는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엿보았다가, 이별에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오는 동안 너는 거기에 있어. 나는 그게 참 좋아. 내가 슬프지 않아도 슬픈 영화를 보고 이별하지 않았지만 이별 노래를 듣는 이유는 네가 있어서일지도 몰라. 언제나 따듯하게 나를 맞아주는 네가 있어서. 전화를 걸고, 신호음이 울린 지 몇 초도 안 되어서 너는 전화를 받아. 그러곤 아주 익숙한 목소리로 한결같은 목소리로 말해.
응, 예진아.
네가 부르는 내 이름이 좋아. 예진아-라고 부르는 네 목소리가 좋고,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그 어투가 좋고, 내 대답을 기다리는 너의 침묵이 좋아. 내 이름이 예진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물론 우리의 전화가 언제나 다정하지는 않지. 자주 투닥거리고 자주 섭섭해하고 그러다가 또 토라지고. 울고. 보이지 않는 사랑을 만지려 애쓰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나는 또 생각하지. 사랑이 뭔데. 사랑 하나도 안 멋있어. 완전 치사하고 쪼잔해. 사랑이라는 거.
치사하고 쪼잔한 사랑을 나는 너와 해. 너와 사랑을 해. 나는 책을 좋아하고 긴 글을 쓰고 인디음악을 들어. 너는 운동을 좋아하고 축구를 하고 가요를 들어.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맞는 게 하나도 없어. 하지만 우리는 같이 서점을 가고, 같이 축구를 보고, 너는 내가 쓴 글을 읽어. 너는 나에게 축구선수의 이름을 알려주고 나는 너에게 작가들의 이름을 알려줘. 우리는 함께 인디음악을 들었다가 발라드를 들었다가 해. 인디음악을 들으며 서로를 오래 바라보고 발라드를 들으며 가사를 흥얼거려.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하고, 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그냥 거기 있어. 그냥 함께 있어. 그리고 사랑을 해. 나와 너무나 다른 너를 사랑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랑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사랑해.
내가 사랑하는 게 너라서 참 다행이야. 하나도 안 멋있고 안 쿨하고 쪼잔하기만 한 사랑을 너와 할 수 있어서 기뻐. 슬픈 영화를 보고 이별 노래를 들으며 내 옆에 있는 너를 생각해. 다시 돌아갈 너를 생각해. 떠올릴 수 있는 네가 있어서 행복한 겨울이야. 우리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 적당한 겨울이야. 아무래도 나는 사랑이 좋아. 아무래도 나는 네가 좋고. 네가 내 글을 이해하지 못한대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날씨는 춥고. 겨울이고. 모든 게 적당하다. 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