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변명
간헐적으로 비상식적으로 많은 양의 음식을 자제력없이 먹어대고 마는 질병을 폭식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폭식증은 대체로 다이어트를 극단적으로 하는데서 발생한다고 한다.
음식물 섭취를 또는 탄수화물 섭취를 0 으로 만들겠다는 극단적인 다이어트 계획..
이러한 계획은 균형을 찾아가려는 우리 몸의 신진대사의 특성상 십중팔구 실패로 돌아가고
머리 속의 뇌는 영양을 보충시키려는 반작용을 일으켜 폭식을 하게 만든다.
이는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폭식증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탄과 끝모를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악순환은 애초에 목표를 완전 무결한 수준으로 과도하게 높게 잡기 때문에 생겨난다.
폭식증이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자기 변명을 위한 밑밥이다.
콩이와 같이 발달에 문제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누구나 경험했으리라 생각한다.
보통은 어떤 분야건 예외가 있기 마련이나
이 부분에서는 아마 '누구나'라는 표현이 예외없이 맞을 것이다.
아이가 부모의 성에 차지 않는 행동을 한다.
두세살, 서나살 어린 아이나 할까 말까한 행동이다.
부모는 화가 난다.
그동안 스스로 훈련해 온 방식으로 참아보고 참아보지만 항상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점에선가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엉덩이라도 때리며 화를 내고 만다.
화를 내는 것은 잠시지만 죄책감은 길다.
아빠가 이해를 못해주면 이 아이를 누가 이해를 하고 참고 일상을 살아가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머리로는 알지만 행동으로 실천하기는 어렵다.
다시는 화를 안내리라 다짐한다.
탄수화물 섭취를 0 으로 하겠다는 목표와 같다.
참고 참지만 한계점은 찾아오고 빵이나 과자같은 오히려 다이어트에 더 안 좋은 탄수화물을 마구 섭취하는 것으로 목표는 어그러진다.
다시는 화를 내지 않겠다고 하지만
참고 참은 화는 오히려 모아서 터져나오는 양 별것도 아닌 것에서 더 쉽게 더 크게 분출된다.
인간이 화를 안내고 살 수는 없다.
자기 몸에 독소로 쌓일 뿐이다.
둘도 없는 소중한 딸이 자폐스펙트럼을 겪고 있어서 이상행동을 한다고 충분히 이해하는 아빠라도
아이에게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살수는 없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면 혹시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간혹 더 없이 훌륭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그냥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하자.
너무 작위적인 변명인가.
어쩔수 없다.
화를 적당히 참고 적당히 분출해야 엄마도 살고 아빠도 산다.
엄마 아빠가 살아야 아이도 산다.
음식물 섭취 자체를 피하기 보다는 건강하게 섭취하려고 해야 폭식증과 죄책감을 피할 수 있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려고만 하기 보다는 이를 건강하게 풀어내려 해야
아이에 대한 감정의 오르내림을 조절할 수 있고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미연에 막을 수 있다.
아빠도 살아야 겠다.
어리석은 방법으로 화를 낸건 미안하지만
화를 낸 것 보다 더 큰 그림자로 죄책감이 솟아오르지만
그 또한 가족이 서로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변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