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창비」
작가에게 많이 미안하다. 책을 사서 읽어야 하는데 서점에서 세 시간 동안 읽어 버렸다.
작가가 이 글을 쓰기 위해 보냈을 수많은 시간들과 포기한 많은 편안함, 즐거움을 생각하고 희생자들의 애꿎은 죽음, 그 가족들의 괴로웠을 순간들에 쌓인 한을 느끼고는 그렇게 금방 읽어 버린 게 미안했다.
대학시절, 광주의 버스터미널에 벽지로 붙어있던 끔찍한 사진들. 마치 이어 붙인 것처럼 진짜가 아닌 느낌이었다.
오월의 노래, 화려한 휴가, 26년.. 이런 영화들과 당시 증언들을 보고 들으면서도 인간이 인간에게, 한 나라의 군인들이 자국의 국민들에게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을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이 어떻게 아직도 높은 자리에서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까,
희생자 가족들은 그들을 왜 가만히 두는 것일까, 용서와 망각의 늪에 빠져 있는 건가,
만일 나라면 어떻게 복수할까,
세계 최고의 킬러를 고용해서라도 그들을 죽일수는 없을까...
오만 가지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가끔 억울하거나 손해 보는 일을 당해도 후환이 두렵거나 더 이상의 감정소모로 마음이 피폐해지고 싶지 않아 그저 덮어버리려는 마음도 있는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소설에서 소년의 두 형은 더 큰 희생을 하지 않기 위해, 가족들이 먹고살 수조차 없을까 봐 꾹꾹 한을 누르고 속으로 꺽꺽거린다.
그들뿐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큰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시민들이다.
더 핍박받지 않기만 바라는 힘없는 사람들.
나 또한 그들보다 한 발자국 더 나가지 못하는 무력한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다수의 사람들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리고 역사적 사실을 밝히기 위해 애써 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소설을 써줘서(실화보다 더 약할지 몰라도) 우리들에게 소리 내어 외치고 메아리로 울려 퍼지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도 깊은 감사를 느낀다.
그때 허무하게, 하지만 용감하게 죽어 간 그들의 넋이 여기보다 평안한 곳에서 쉬고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글을 쓰고 책을 사서 산수에게 선물했다.
미황사와 달마산(달마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