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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김연수 「문학동네」

by 바람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늙은 엄마로 보이지 않으려고 빨간 짧은 치마를 입고 남편의 구박에도 혼자 환하게 웃던 엄마는 그때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단다.


동네 언니가 불어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그 언니가 꼭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사람 같았다고 말하던 엄마를 큰 누나는 회상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말하고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가 말하지 못하고, 또 더 말하려다가 다시 말하지 못하고, 그러다가 결국에는 몇 음절 내뱉지도 못한 채 대시보드에 머리를 대고는 아이처럼 엉엉 울어 버렸다.

그날 큰누나가 끝내 들려주지 못한 엄마의 말.




인생을 한 번만 더 살 수 있다면 자기도 그 언니처럼 마치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사람처럼,

불어 노래도 부르고 대학교 공부도 하고

여러 번 연애도 하고

멀리 외국도 마음껏 여행하고 싶다는 말.




여기까지 읽고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부엌에서 책을 읽고 있던 산하가 엄마 또 우냐며 쯧쯧 하는데도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마구 올라온다.

내 엄마도 이런 마음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서 어쩔 줄 모르겠는데 엄마와 함께 있으면 난 왜 그렇게 못되게 구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엄마를 볼 수 없게 될 때 얼마나 마음이 미어질지 생각하면서 혼자 또 꺼이꺼이 운다.


길가의 박주가리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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