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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Jul 26. 2024

66. 하나님의 보트

-에쿠니 가오리 「소담」




뼈마디가 녹아버릴 것 같은 사랑


꼭 돌아온다는 약속에 16년을 기다리며 딸과 함께 떠도는 요코는 그와 나눈 사랑을 그렇게 기억한다.  

소설이니까.  이럴 수 있다고 상상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기다리는 걸 가장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요코의 이런 마음이 너무나 힘들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면 그냥 한 곳에서 기다리면 될 것이지 굳이 현재의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서 항상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건..  더구나 혼자면 몰라도 딸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고 옮겨 다니게 하는 건 이기적이다.   


읽기 전에 내용을 언뜻 알았을 때는

그 남자가 안 돌아올까 두려워 계속 옮겨 사는 거라고 짐작했다.  

책을 다 읽은 후엔 그를 계속 기억하려고,

지금 생활에 익숙해지면

그를 희미하게 기억할까 봐, 그리고 잊을까 봐

그게 두려워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딸에게도 그렇게 말했다.  

익숙해지면 안 되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보트에 탄 거니까 계속 옮겨 다녀야 한다고.  

읽는 내내 부모와 연락도 안 하고

딸에게 친구도 못 사귀게 계속 전학을 시키는 주인공이 얄미웠는데 끝부분에서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딸은 독립을 원하고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가버린다.  

결국 도쿄로 돌아온 요코는 부모님과 재회하고 피아노를 가르치고 음식점에서 일하는 예전과 같은 일상들을 가지며 살지만 매일 이런 생각을 한다.  


아침에 왜 일어나는지 모르겠고 왜 밥을 먹는지

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죽어도 좋겠다고.  


그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불안과 포기가 그녀의 진을 다 빠지게 하고 사는 의미를 잃어버리게 한 느낌이 내 마음에 확 스며들었다.  

꼭 내가 요코인 것처럼 큰 상실감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지 않으면 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사랑하기만 하면 된다고 마음이 큰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건 관념적인 말일뿐이다.  

사랑을 받기도 해야 한다.  그게 얼마나 삶을 기운차게 하는지 넘어져도 일어날 힘을 주는지 세상과 타인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지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  

이대로 끝나 버리면 오랫동안 명치가 아플 것 같았는데 그가 나타났다.




‘믿을 수 없어’

‘나도 믿을 수 없어’  


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손을 잡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역시 소설이다.  그래도 다행이고 고맙다.  

요코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아서.  

뼈마디가 녹아버릴 것 같은 사랑을 한 그가 다시 돌아와 줘서.             


고창 삼태마을의 벽오동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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