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메이 May 27. 2020

화가 나는 아이

착각의 시작.  

첫 만남.  

 올해는 5학년 담임이다.  새 학기 개학을 한 지 일주일쯤 지나 전년도 학습 내용을 진단하는 진단 고사를 치던 날, 3교시 사회 시간.  처음으로 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새 학기의 낯 섬과 시험이라는 무거움이 더해져 적막감까지 도는 교실.


이제 막 시험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는데 어디선가 적막을 깨는 크고 또렷한 외침.

" 나 사회 잘 못하는데..."

그리곤 이어진 신경질적인 읊조림.

" 아.. 목이야.."


내 앞 두 번째 줄에서 목이 아픈 듯 한쪽으로 머리를 기울이고 울상을 짓고 있는 아이.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자세히 OO 이를 보았다.   마른 체격에 또래 보통 정도의 키, 그리고 아픈 정도에 비해 무척 과장 되어 보이는 제스처.


나는 OO 이에게 다가가 오른쪽, 왼쪽으로 머리를 돌려보라고 그랬다.  머리는 자연스럽게 돌아갔고 2교시까지는 별 이상이 없었기에 할 수 있는 편안한 자세로 시험 문제를 푼 후에 쉬는 시간에 보건실에 가보자고 그랬다.


하지만 OO 이는 시험 시간 내도록 신음 소리를 내며 목이 아픈 것을 어필했고 시험지를 하나도 풀지 않았다.

모르겠다. 그 시간 OO이가 얼마나 아팠는지, 그리고 정말 아팠는지.

그런데 나는 그 아픔이 과장된 것이라 여겼고, OO이가 내는 신음소리와 일그러진 얼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이 '이상해'보였다.


결국 OO 이는 시험지를 백지로 냈고 나와 함께 쉬는 시간에 보건실에 다녀왔다. 보건 선생님도 따뜻한 찜질팩을 하나 주는 것 말고는 특별한 처방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 오는 길, OO 이는 갑자기 괜찮은 표정을 지어 보이고 이후 목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진단 고사 후 일주일 뒤.


  과학실에 다녀오던 우리 반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와 OO이가 과학 시간에 소리를 지르며 책상을 내려치고 과학책을 선생님 앞에서 찢어 던져버렸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나는 OO이가 돌아온 후에도 모른 척 수업을 한 후 아이들이 하교하고 과학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자초지종을 물었다.


과학 선생님 말인즉슨, OO이가 과학 시간에 이상한 소리를 내며 책상을 계속 두드렸단다.  책상 두드리기를 멈추라고 말하였으나 계속 OO 이는 책상을 두드렸단다.  그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OO이가 앉은자리가 모둠장의 자리라 실험 결과 정리한 것을 발표하라고 시켰는데 발표를 하지 못하였단다.  그 상황에 화가 난 OO 이는 갑자기 과학책을 찢어버리고는 과학실 책상을 꽝하고 내려쳤다고 한다.


     그 다음날 쉬는 시간, OO이가 동수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화를 냈다. 동수와 함께 1인 1 역할로 쓰레기통 정리를 하게 되었는데 동수가 시키는 대로 하기 싫기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이라고 했다. OO는 자초지종을 묻고 있는 나를 앞에 두고 '쓰레기 같은 학교'라고 말을 하더니 가방을 싸서 집에 가버리려고 하였고 나는 그런 OO를 수 차례 불렀지만 교실 밖에서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다.  어렵게 다시 불러 OO에게 의사소통 방법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화가 날 수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을 고함을 치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 책상을 내려치는 일 따위로 표현하는 것은 건강한 방법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 일 후 또다시 일주일 후.


  1교시 수학 1단원 평가 시간 있였다.  OO 이는 졸리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서너 개 문제를 함께 풀고 다음 문제도 풀어보라며 격려해 주었다. 하지만 내가 지나가고 난 후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앉아만 있었다.  나는 다시 곁으로 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만큼 시작해 보라고 하였지만 OO 이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백지를 냈다. 나는 OO이의 백지를 확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노력하지 않은 모습이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다음 시간, 도서관으로 이동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OO 이는 책상에 앉아 무척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책상에서 가위를 꺼내 책상에 심하게 내려쳤다. 가위를 들고 책상으로 내려찍기를 여러 번, 나는 나머지 학생을 도서관으로 보내고 OO 이와 단 둘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OO야, 무척 화가 난 것 같아. 왜 화가 났는지 말해줄래?"

"..................."

"집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니?  친구들과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니?"

"..................."

" 네가 무척 화가 나서 가위로 내려친 거 아니니? 왜 화가 났는지 알아야 함께 해결을 할 거 아니니? 말해주면 좋겠다."

"................... 수학 시간에 잠이 오는데 선생님이 계속 문제를 풀어보라고 해서요."


나는 깜짝 놀랐다. 정말로 나 때문에 화가 났으리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OO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다가가서 말을 걸고, 함께 문제를 풀고, 격려를 하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말투는 상냥했고, 나는 진심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OO에게 문제를 풀어보게 하려고 인내하며 다가갔다. 나는 나의 관심이 상대를 화나게 한다는 것에 대해 꽤 당황했다. 마치 OO이가 내려찍었던 가위의 대상이 나라도 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너에게 관심이 가서 그런 것인데 내가 OO이가 무엇을 하든 무관심하게 지내길 바라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나는 또 화가 날 수 있지만 그 방법이 남을 해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꽤 오랫동안 했다. 하지만 듣고 있는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기에 이야기를 하면서도 꽤 답답하고 암담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 날 오후, 우연히 OO이의 4학년 담임 선생님과 통화가 되었다.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 전 담임 선생님이 먼저 OO이의 안부를 물었다. 오전에 한바탕 난리를 겪은 나는 그 날의 이야기를 하며 조언을 구했다.  4학년 때도 교사의 안내와 지시에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성향이었고  자기가 하기 싫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화가 나면 물건을 내려치거나 가위를 들고 내려찍는 일, 심하게 울며 교실 바닥에 누워버리는 일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평가에 예민하여 평가가 있는 날엔 꼭 심상찮은 일을 벌이곤 했단다.



전화를 끊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 아이를 나의 관심과 인품(?)으로 조금은 나은 아이로 성장시킬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전 07화 마치 마법처럼 깨어난 아이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