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예진이 이야기 2
예나 예진이는 여전히 수업 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반응을 기다렸으며, 목소리는 정말 모기만 해서 도무지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첫 만남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서 있는 모습이 의아해서 어머님께 전화 상담을 드렸더니 그런 모습이 1-2학년 때도 있어서 어머님도 여러 가지 지능 검사와 상담 센터에서 검사해 봐도 다른 발달은 다 정상이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 예나 예진이 어머님은 아이들의 성장에 관심이 많으셨고 나보다 더 아이들을 관찰하며 잘 자라기를 바라고 계시는 마음이 느껴졌기에 나는 아마도 새 학년에 적응하고 새 선생님에게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나 보다 여기고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상담을 마쳤다.
첫 만남 이후로 나는 예나 예진이를 수시로 남겨 당부를 했다.
" 선생님은 예나 예진이가 잘 배우고 즐겁게 학교 생활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러니 무엇이든 어려움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말해달라. 더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하기 위해서 선생님과 약속 하나만 하자. 예나 예진이가 어떤 기분인지 선생님에게 와서 크게 표현하기. 크게 말하기."
그때마다 예나 예진이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만 끄덕였다. 여전히 말을 하지 않은 채로.
한 이 주일쯤 생각날 때마다 그 당부를 했을 뿐인데 일기장에 선생님이 좋다는 글을 써 왔다. 마음이 조금 열리나 싶어 나는 다시금 불러 말했다.
" 선생님 말에 대답하기. 예나 예진이가 어떤 기분인지 말하기. 큰 소리로~! "
어느 날, 예나와 예진이를 불러 또 말하고 있었다.
" 선생님 말에 큰 소리로 대답하기. "
예진이가 말했다. 내 귀에 들리는 또렷한 소리로.
" 알겠어요. "
나는 처음으로 예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예진이의 목소리는 커져 갔다. 수업 시간에 이해를 못 해서인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인지 멈춘 채 나를 빤히 보고 있는 경우는 많았지만 예진이는 점점 책을 소리 내어 읽기도 했고, 짝과 함께 하는 활동에서 친구에게 대답을 하기도 했고, 내가 묻는 말에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대답 플러스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나는 예진이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뻐하며 큰 소리로 대답하기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그랬다.
쌍둥이라 그런지 어떤 날은 둘이 함께 각자 나에게 편지를 써왔다. 말로는 표현을 안하는데 글로는 표현을 하는게 기뻐서 나는 또 열심히 답장을 하며 힘 닿는데까지 도울테니 자기 생각을 크게 표현해보라고 편지로 격려했다.
여름 방학을 지나고 2학기가 되니 예진이는 수다쟁이로 변해 있었다.
아직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친구들에게는 자기표현을 크게 하지 않지만 나에게 와서는 자기의 일상을 드문드문 들려주고, 때로는 수업 시간에도 불쑥 앞으로 나와 자기가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을 가리키며
" 선생님, 모르겠어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예나는 여전히 관찰하는 사람처럼 조용히 지냈지만 예진이보다 이해력은 더 깊은 듯했고 내가 다가가 물으면 간단히 의사 표시를 했다.
예나 예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잘하고 좋아했다.
말로는 몸으로는 자기표현을 적게 하지만 그림을 곧잘 그리고 열심히 했을 때 멋진 결과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림을 매개로 삼아 또다시 대화를 시도했고 그럴 때면 예나도 그림 설명을 해 주곤 했다.
2학기 내도록 예진이는 교사 책상 앞으로 걸어 나왔다. 수업 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자기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게 있으면, 도움이 필요하면 정말로 나와 약속했듯이 그 시간이 언제든지 가리지 않고 벌떡벌떡 나와서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주 큰 소리로 말이다.
" 이거 지금 하라고요?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요?"
나중에는 너무 자주 나와서 수업을 위해 예진이를 다시 자기 자리로 돌려보내야 했지만,
왜 이리 눈치도 없이 자주 수업 한 중간에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 때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망부석처럼 서서 눈만 끔뻑거리던 예진이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그것보다 백배 낫다 여겼다.
2학기가 어느덧 지나고 마지막 국어 시간의 연극 시간.
학생들이 긴 인형극의 부분 부분을 나누어 역할을 정하고 대사를 외워 동작과 함께 연극으로 꾸미는 시간이다.
예나와 예진이는 모둠의 한 일원으로 열심히 연극을 연습했다.
나에게 말문이 터진 예진이는 나와 몇 번을 연습하고 했는데도
" 선생님, 떨려요. 까먹으면 어떡하죠? 선생님. 이 많은 걸 외울 수 있을까요?" 하면서 연극에 대해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을 내 비쳤다.
나는 예진이가 대사를 집에 까지 가지고 가서 열심히 외워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몇 번 상대 역을 해 주며 잘할 수 있다고 해 주었다.
2월 마지막 연극 시간.
예나와 예진이는 연극을 했다!!!!
예진이는 대사를 까먹지 않고 꽤 긴 대사를 서서 들리게 다 말했으며,
예나는 자기 차례를 조금 놓치긴 했지만 친구들이 신호를 주니 오물거리는 입으로 대사를 말했다. 카메라를 찍고 있는 나에게 들릴 정도로.
나는 아이들의 연극을 카메라로 촬영하며 카메라 속 연극하는 예나와 예진이를 보는 것이 사뭇 대견했다.
그리고 새 학년으로 올라가는 마지막 날,
예나와 예진이는 예쁜 그림이 한가득 있는 정성스러운 편지를 나에게 써 왔다.
일 년간 고마웠다는 말이 가득 쓰인 편지 말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나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요청해왔다.
나는 말문을 열어준 예나와 예진이가 고마웠다. 조각상처럼 멀뚱히 서 있던 아이들이 마법처럼 살아나 움직이고 반응하고 한껏 배우고 이 교실을 떠나가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들이 자라감이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