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이 이야기 2
2월, 새 학년으로 올라가고 한 해가 마무리되는 마지막 날,
나는 만성이에게 편지를 받았다. 다른 학생들의 편지도 받았지만 만성이의 편지를 보고는 나는 뭉클해서 눈물이 났다.
만성이는 일 년간 한 번도 일기를 적어온 적이 없었는데, 일 년간 한 번도 제대로 된 국어 작문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스스로 나에게 편지를 써 왔다. 저렇게나 예쁘게, 그림도 그려가며 색칠까지 해서..
그리고 '저는 한글이 너무 어려웠어요.'에서 만성이의 어려움이 느껴져 마음이 찡했다.
더불어 나는 사실 만성이의 아이다움이 좋아 만성이의 큰 발전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헛말처럼 "잘한다. 잘하고 있다. 많이 늘었다."라는 말만 했는데 그 말을 진짜로 만들어 버린 만성이가 신기하고 대견했다.
부모님께 물어 적은 것인지 몰라도 이렇게 어엿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만성이의 편지를 받고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성이가 한글을 잘 몰라 맥없이 앉아있었던 그 시간은 사실은 만성이에게 정말로 큰 어려움의 시간이라는 것, 그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사실은 더 쫀쫀하고 더 악착같은 가르침이 필요했을 텐데 그것 대신 내가 준 기대 없는 칭찬이 사실은 무척 가벼운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그것을 진짜로 받아먹고 자란다는 것. 결국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 아이와 '좋은 관계'여야 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 등이다.
만성이는 내가 내 준 숙제 중에 마지막 겨울방학 숙제를 해 왔다.
내가 내 준 숙제 중에 온전히 해 온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에 나는 만성이를 많이 칭찬했고, 처음 보는 녀석의 성실함을 많이 기뻐했다. 저도 처음으로 나와한 약속을 지켜 뿌듯했는지 개학 첫날 당당하게 숙제 문제집을 내밀었고 나는 한 장 한 장 정말로 성실히 삐뚤빼뚤 써간 만성이의 한글을 체크하며 만성이 한글 실력이 늘었다며 예쁘다, 예쁘다 해주었다.
내가 신규일 때, 4학년 여학생에게 '평행'의 개념을 가르치다가 학생 앞에서 소리를 친 적이 있다. 그림을 그리고 끈을 가지고 눈으로 직접 보여줘도, 똑같은 말을 열 번을 하며 평행의 개념을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 하는 학생을 보고 나도 모르게 열이 나 "방금 설명했잖아!!!!"라고 면전에서 고함을 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겁에 질린 눈물 가득 머금은 학생의 눈.
그 눈을 보고 나는 그 후로 열심히 가르치지 않는 교사가 되었다.
그날 눈물 바람을 하고 간 그 아이는 얼마나 아팠을까, 내가 얼마나 싫었을까, 그날 내 기분은 또 얼마나 안 좋았나를 떠올리며 나는 더 이상 열혈 교사가 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줄 거야. 지금 네가 여기서 모든 걸 다 알 필요는 없어. 그저 배우겠다는 시늉만 해 준다면 나는 너에게 칭찬을 해 줄 거야라는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했다.
열정은 줄고, 요령은 늘고, 이게 맞나? 했다가 그러련다. 하며 말이다.
그런데 만성이를 보며 나는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을 혼자 확신의 재판봉으로 땅땅땅 내려쳤다.
나는 계속 열혈 교사를 버리고 그저 가벼운 칭찬이나 하는 교사가 되겠다고 말이다.
십 년쯤 후에 길에서 만성이를 마주쳤을 때 아마 만성이는 한글을 잘 알고 있겠지.
그리고 나를 보고 한 번 웃을 수 있으면 된 거지.
만성이는 예쁜 아이로 기억되어 있다.
아마 나도 만성이에게는 괜찮았던 교사로 기억되어 있을 것 같다.
그 평가를 받기에 나는 꽤 미안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