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 이야기 3
신혜의 친구 햄스터를 내가 버려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나는 매일매일 신혜의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점심시간엔 신혜 자리 옆에 급식판을 들고 가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며 함께 밥을 먹었고 쉬는 시간에 신혜가 내 옆에서 무슨 뜻인지 맥락에 맞지 않는 말을 늘어놓아도 정성껏 듣고 그 말에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가장 문제는 5년간 따돌림을 받아온 학교의 분위기였는데 끊임없이 친구 사이의 예의와 인간에 대한 배려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은 내가 보고 있는 앞에서 신혜에게도 다른 친구들처럼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한 학생은 신혜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또 신혜의 부족한 부분을 나서서 챙겨주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학생들을 믿었고 안심했다. 그리고 신혜를 챙겨주는 학생이 참 기특하다 생각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엔가 동학년끼리 회의를 마치고 교실로 오니 신혜가 온몸이 쫄딱 젖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자초지종을 다그쳐 물었더니 남학생들이 신혜를 화장실 한 칸에 밀어 넣고 화장실 칸막이 위로 양동이에 물을 받아 뿌려버렸다고 했다. 여자들은 몰려나와서 우르르 그 광경을 지켜보았단다.
나는 그런 행동을 했다는 학생들을 보며 말문이 막히고 화가 나서 그날 처음으로 학생들을 마주하며 대성통곡했다. 내가 무슨 긴 말을 했는지는 지금에 와서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생들을 보며 너무 속상하고 배신감이 들어 계속 고함을 치며 외쳤던 말은 " 사람이 어떻게 그래!? 너희들 어떻게 그럴 수 있어?"였다.
몇 개월을 가르치고 내 딴에 해 온 노력들이 물거품처럼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 눈앞에서 신혜의 이름을 불러주고 신혜에게 물건을 가져다주고 신혜와 함께 짝이 되어 모둠활동을 했던 순간들이 학생들의 연극같이 느껴졌다. 나는 그날 하루종일 눈물을 뿌리며 우리 반 모두를 타박했고 또 신혜에게 친구로 다가가지 못했던 나 자신을 타박했다.
비슷한 분위기로 일 년을 마쳤다. 화장실 사건 이후 학생들이 대놓고 신혜를 괴롭히거나 신혜에게 못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혜를 반겨주거나 무리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소풍을 가거나 학습활동을 할 때면 신혜는 언제나 내 짝이었고 나는 학생들이 신혜를 노골적으로 괴롭히지 않는 것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 신혜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신혜는 나에게 와서 여전히 무슨 말인지도 모를 말들을 늘어놓았고 가끔은 일기장에 내가 좋다고 써 놓았다. 어떤 날은 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나는 신혜의 그 말도 안 되는 일기장의 내용들이 슬펐다.
일 년 동안 나는 신혜를 감싸면서 한 해를 보냈다. 신규고 경험이 부족한 탓에 신혜 이외에 여러 가지 문제도 많았지만 그래도 내 에너지의 많은 부분을 신혜를 껴안는데 보냈다. 신혜는 특수 중학교에 입학했다.
졸업하던 날 신혜 할머니가 오셨다.
나에게 와서 연신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시더니 나에게 검은 봉지 하나를 내밀었다.
정신없는 졸업식이 지나고 썰물처럼 학생들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교실 정리를 하다 신혜 할머님이 전해주신 검은 봉지 속을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메모지와 노란 거북이가 매달린 팔찌 하나가 들어있었다. 나는 그 거북이를 보며 내가 첫날 버려버렸던 신혜의 햄스터가 떠올랐다.
내가 신혜의 햄스터 역할을 어느 정도 했는지 .... 나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