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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메이 Jun 16. 2022

한글을 모르는 아이

만성이 이야기 1

3월 첫날 만성이가 전학 왔다.  약간은 낯설고 주눅 든 느낌으로 교실로 들어왔다. 자기소개를 시키니 한참을 멀뚱히 서 있다가 인사만 꾸벅한다.


자리를 정해주고 수업을 시작했다. 만성이가 3학년이지만 아직 한글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숙제라고 꼴랑 하나 있는 일기 일주일에 2번 쓰기를 한 번도 해오지 않았지만 나는 짐작으로 아직 한글을 몰라서 쓰기가 어려운가 보다 생각하고 야단치지 않았다.


진단평가를 치자 수학과 국어에서 미달이 나왔다.  책 읽기를 시키니 아직 받침이 있는 글자는 자신 있게 읽지 못하고 마치 한글을 처음 배우는 학생처럼 더듬더듬 글을 읽어 나갔다.


나는 속으로 ' 범생이가 전학이 오면 좋았을 텐데 꼴통이 전학 왔구나.' 싶었다.


수업시간이면 멍하니 턱을 괴고 비스듬히 앉아 멍을 때리고 있고,  과제는 속도가 느렸으며, 숙제는 한 번도 해 오지 않았지만 그래서 나는 속으로 만성이가 나를 힘들게 할 폭탄이면 어떡하지 걱정했지만 만성이에게는 신기하게도 아이다운 순수함이, 예쁨이 담뿍 있었다.


나는 만성이가 한글을 모르면 어떻냐, 그동안 내 속을 뒤집어 놓는 상상초월 문제아들을 만난 기억을 떠올리며 착하면 된 거지 싶어 만성이의 순수함을, 그 아이다움을 이뻐하기 시작했다.


만성이는 매일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어제 자기가 한 일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했다. 만성이를 담임하던 해 나는 다섯 살 아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마치 5살 내 아들이 말하는 수준으로 어떨 때는 앞뒤 맥락을 자세히 말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한참을 들어야 했고, 또 어떤 때는 조리 있게 말하지 않아 백 프로 만성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나는 그저 전학 와서 어색하고 낯설 텐데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자기의 일상을 늘어놓는 만성이가 귀여워 맞장구를 쳐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원격 수업으로 전환되는 날이면 만성이는 모니터에 무엇을 켜 놓고 보는지 내가 가르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며 화면에 머리카락만 보이게, 어떤 날은 벽만 보이게 해 놓고는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만성이는 각종 기초학력 미달 나머지 공부에 대상자가 되어 나는 만성이와 일 년 동안 매일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다. 받아쓰기와 곱셈 공부를 했는데 어제 공부한 것을 오늘 홀라당 까먹어도 나는 만성이가 밉지 않았다. 결혼 전 나라면 오늘 가리킨 것을 홀라당 까먹어버리는 녀석을 타박하고 안달복달 반복에 반복을 하며 질질 질 씨름 했을 텐데 지금의 나는 지금 모르는 것은 시간이 알려준다는 약간의 내려놓음의 마음으로 만성이를 바라보았다. 더불어 세속적으로 집에 가서 육아를 또 해야 하는 워킹맘으로서 학교에서 그렇게 진을 빼며 열성적으로 가르칠 열정도 식었었다.  


혼자 하는 나머지 공부임에도 도망가지 않고 나와 함께  남아 공부를 하고 있는 만성이가 귀여워서 나는 마치 다섯 살 우리 아들에게 하듯 그저 " 옳지, 잘한다. 잘한다."만 했다.


" 만성이, 어제는 1개밖에 안 맞았는데 오늘은 3개 맞았네!"

" 만성아, 오늘 이러다 10개 다 맞는 거 아니야? 아이고 3개 맞았네. 오늘은 얼마나 맞나 볼까? 아이고, 3개 맞았네. 잘했다. 어제도 3개 맞았는데."

" 만성아, 3개에서 4개 맞았어. 늘었다, 늘었어!  늘면 실력이 자라고 있는 거야."


나는 이런 말을 연신 퍼부어 댔다.  사실은 만성이와 깊이 씨름하기 싫은 내 마음의 이기심이었고, 그저 나를 보고 공부와 관계없는  잡다한 자기의 관심 대한 말을 늘어놓는  만성이를 보며 한글을 몰라도 이렇게 교사에게 마음을 열고 자기 이야기를 해주는 만성이가 아이다워 예뻐보였을 뿐이다.



일 년을 받아쓰기 공부를 했음에도 나는 만성이가 나아지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여전히 한글을 잘 쓸 줄 못했고, 그에 따라 학력은 저하되었다.  겨울 방학 때 나는 만성이에게만 비밀 숙제를 내주었다. 다른 방학 숙제는 아무것도 해 오지 않아도 되는데 받아쓰기 어휘 공부만은 문제집을 하나 주면서 하루에 두 장씩 꼬박꼬박 해오기로 약속했다.


약속을 하면서도 나는 만성이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여름 방학 때도 역시 아무 숙제도 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 년 간 만성이가 숙제해 오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는 겨울 방학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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