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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메이 May 27. 2020

열 번 부른 너의 이름

착각의 늪.

국어 시간에도, 수학 시간에도, 사회 시간에도, 과학 시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활동 방법을 일러주기도 하고 친구의 활동 내용을 들고 와 샘플로 보여주고 비슷하게 해 보자고 해도 그런 나의 행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대놓고 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제출해야 할 모든 것을 아무것도 제출하지 않는다. 4주째 미술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았다. 나는 수채 용구를 다른 친구들에게 빌려서 차려주고는 또 활동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 날 미술작품도 제출하지 않았다.  하교 전 알림장에 '미술 작품 완성하고 가기'라고 썼다.  일부러 OO이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나는 그게 배려였다. OO이가 그 알림장을 보고 남아서 미술 작품을 완성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보고 화가 날 줄도 몰랐다.


아이들이 하교하고 나는 OO 이를 불렀다. 준비물을 조금 더 챙겨 오면 좋겠다고 함께 노력해 보자고 말할 참이었다. 하지만 OO 이는 나의 물음에 못 들은 체하며 의자를 감싸듯 껴안고 앉아 있었다. 나는 10번쯤 OO이의 이름을 불렀던 것 같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불렀다.


"OO야, 이리로 와봐~"


하지만 나중에는 화가 나고 오기가 솟아 못 들은 체하고 눈도 마두 치지 않는 OO에게 10번을 일부러 채우려 떨리는 목소리를 누르고 부드럽게 OO 이를 불렀다. 역시나 의자에 눕듯이 감싸 앉은 채 머리를 처박고 있다. 나는 OO에게 다가가 내가 열 번이나 불렀는데 쳐다도 보지 않는 것이 무시당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나눌 말이 있어서 부른 것인데 네가 내 관심에 반응하지 않으니 앞으로 너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 자리로 돌아가 내 일을 했다. 그랬더니 OO 이는 가방을 싸서 교실을 휙 하고 나가버렸다.


고작 이름을 부른 것이었는데...  고작 이름을 부르고 일반적으로 뒤따라오는 반응을 기대한 게 다였는데.. 그 간단한 시작조차도 허락하지 않는 OO에게 화가 났다.  보란 듯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OO이의 태도가 내게 상처로 돌아왔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OO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나는 사실 어떻게 이 아이에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다. 아무런 지도 없이 정글을 누비는 사람처럼 본능대로 이리저리 이 아이를 탐구할 뿐이었다. 나의 호의를 거절하는,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OO에게 나도 화가 났다.  먼저 다가가 인사하던 것을 멈추었다. OO이가 수업시간에 내는 이상한 소리에도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틀이 지난 후 OO가 먼저 나에게 찾아와 자신이 잘못했다며 사과했다. 나는 그 사과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함께 해 나갈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OO 이와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약속을 지켜보겠노라 단단히 다짐도 받았다. 나는 이렇게  OO 이와의 첫 단추가 겨우 끼워지나 했다.


OO 이는 매일 사건을 일으켰다. 화가 나면 말도 없이 갑자기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했고, 친구들에게 책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고함을 치기도 했고, 교실 문을 쾅하고 내려치기도 했다. 수업이 시작해도 교실에 들어오지 않기도 했고 혼자 교실에서 크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자기가 관심 없는 분야 (예컨대, 쓰기, 모둠활동, 수학 활동, 미술 활동, 연주 활동 등)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교감 선생님과 선배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분조 조절과 아이 상담에 관한 연수를 들으며 OO 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OO이의 엄마를 학교로 부르셨다. 그리고 나는 한 달 반 동안 내가 본 OO이의 모습을 OO어머님께 담담히 말씀해 드렸다.


어머니는 우아한 모습이셨다. 내 말을 잠잠히 듣고 계시던 어머니는 내게 이해를 구했다. 위로 누나가 인 데다가 너무 잘난 누나들이라 막내인 OO이가 누나 등살에 많이 치여서 그런 것이라고.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조금 일찍 온 것 같으니 작은 것이라도 긍정의 눈으로 봐달라고. 나에게 무한한 칭찬과 지지의 역할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작년에 병원에 갔더니 약물치료 권유받았었다는 말씀을 하시며 약간 눈물을 보이셨다. 그 어머니의 눈물에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어머니가 아이의 상태를 알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내가 겪은 일을 다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아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시는 그 태평함이 의아함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시 한번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을 총동원하여 OO 이를 칭찬하고 지지하겠다고 말씀드렸다.  함께 긴밀히 협력하여 정말로 OO이가 나아지기를, 성장하기를 기대했다. 어머님께도 말씀드렸으니 나는 이제 가정과 학교에서 함께 노력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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