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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메이 May 28. 2020

동지가 생기다.

착각의 인지.

  OO 이는 친구가 없었다.  완전 바보는 아닌데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니 학습결과는 좋지 않고 모든 게 어눌고 어설펐다. 자존심은 세어서 틀린 것, 모른다는 것, 서툴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회피와 분노를 선택했다.  나는 OO이의 친구가 되어주려고 노력했다. 소풍을 갈 때도 함께 짝이 되어 버스에 타서 OO이의 관심사에 대해 관찰하고 질문했다.  모든 활동에서 OO 이에게 피드백과 관심을 주려고 노력했다.


OO 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려고 노력했다. 말을 건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OO이에게 가장 많은 나의 관심과 시간, 에너지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OO이가 유일하게 참여하는 학급 활동은 도덕 시간과 국어 시간, 그리고 과학 시간의 발표였다. 발표 내용도 논리적이지 않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정리가 되지 않는 말들이었지만 그것이라도 붙잡고 나는 그 아이가 학교 생활 속에서 의미를 찾기를 간절히 바라며 칭찬하고 격려했다. 매일 OO이의 표정을 살폈고, OO이의 안정을 기도했다.


 하지만 OO 이는 여전히 갑자기 화내고 갑자기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교실을 나가버리고 나는 수업 시간에 사라진 OO 이를 찾으러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다. OO 이는 화가 날 때면 여전히 가위나 주먹으로 자기의 책상을, 우리 반 교실 문을, 학교의 비상구 철문을 있는 힘을 다해 내리쳐댔다. 그렇게 봄날이 가고 여름방학을 맞았다.

  

 2학기 첫날, 전학생이 왔다. 큰 덩치에 첫인사에부터 불량끼를 폴폴 풍기는 명호. 명호는 전학 온 지 이틀 만에 OO 이와 똑같은 이유로 과학실에서 교실로 쫓겨왔다. 친구가 지우개 가루를 치우지 않는다고 더럽다고 한 말에 화가 난 명호는 과학 책을 구겨서 던져버렸다. 교실로 쫓겨온 명호에게 나는 또다시 건강하게 화내는 방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명호와 OO 이는 순식간에 단짝이 되었다.  단짝이 되는 속도도 놀라웠을뿐더러 같은 성향과 모습을 지닌 둘이가 찰떡같이 서로를 좋아하는 것이 나는 참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단짝이라 여길만한 친구가 없던 OO에게 단짝이 생겨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비슷한 모습의 둘이 함께 붙어 있다 거대한 폭탄이 되어 터지는 건 아닌지 내심 초조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외로웠을 OO이가 쉬는 시간마다 찾을 친구가 있다는 것이, 둘이 깊이 나눌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것에 다행이다 싶었다.


 둘은 너무나 붙어 있었다. 쉬는 시간에만 붙어있던 둘은 점점 종이 쳐도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게임 이야기를 하느라 교실에 늦게 들어왔다. 평소 수업 시간에 자기 자리에도 잘 앉아 있지 않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OO는 아예 수업 시간에도 명호 자리 옆에 서성이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또 어렵게 어렵게 떼어놓아야 했다.


  그즈음 나는 OO를 대할 때 '의도적 무시하기'를 하고 있었다. OO이가 하는 너무나 많은 행동이 학교의 일반적인 규칙과 상황에서 벗어나기에 그것을 하나하나 다 지적하고 대처하다가는 교실 전체의 흐름이 너무나 자주 끊어지고 나도 너무나 힘들었다. 게다가 그것을 지적하였을 때마다 번번이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OO이의 증폭된 분노와 무시, 돌발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는 문제 행동의 대부분을 무시하고 장려되는 행동을 했을 때만 그 아이에게 관심을 주려 노력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붙들고 있었는데 명호가 전학 온 뒤 더 이상 OO는 나를 괘념치 않는 듯 보였다.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말했다.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어 나를 쏘는 제스처,  이상한 소리를 내서 내가 쳐다보기라도 하면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해대는 욕지거리, OO 이에게 몇 마디라도 할라치면 무시하면서 사라지는 태도..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아이가 너무나 벅차 힘겹고 무서웠다. 매일매일 학교 가기 전 오늘은 사건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OO이의 분노에 차 있는 눈빛을 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 분노의 눈빛이 나를 향하는 것이 억울했다. 나의 선의를 이리도 몰라주고 자신의 부족함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OO이의 뻔뻔함에 나는 더 이상 OO 이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나는 내가 OO이의 행동을 교정하는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을 잃었다.  나의 노력으로 OO이가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성장하리라는 것은 여실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래, 모든 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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