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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메이 May 29. 2020

난리 부르스

너도... 나도...

  OO 이는 평가가 시작되면 아프다.  영어 시간에도, 수학 시간에도..  보기에 멀쩡해 보이다가도 간단한 평가라도 안내하기 시작하면 여지없이 아프다며 보건실을 찾는다.  내가 깨달아버린 것처럼 반 학생들도 알아채버린 건지 OO이가 보건실에 다녀오겠다고 하면 여기저기서 " 또 시작이다~" " 시험 치기 싫어서 아프다~"라는 말이 새어 나오기도 한다.  


보건 선생님도 OO이가 출근도장 찍듯이 보건실을 회피처로 삼아 들락날락 거리는 것을 아는 눈치이다.  수업 종료 20분을 앞두고 수학 형성 평가를 치려했던 어느 날, 평가 안내와 더불어 또 아프다고 하기에 그 날은 보건 선생님이 부재중인 날이라 보건실에 갈 수 없다고 안내했더니 그럼 화장실을 가겠단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서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지나고 다음 시간을 알리는 종이 쳐도 교실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또 OO 이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OO 이는 엄마와 학교 어딘가에서 통화하고 있었다.  교실로 돌아가자고 그랬더니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장승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수업 시간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저를 찾으러 온 나에게 이런저런 설명도 반응도 없이 죽상을 하고 서 있는 OO 이와 또 하루치의 씨름을 시작한다. 결국 나와 말하기 싫어하는 OO 이를 OO어머님이 와서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날도 영문 모르고 KO패 당했다.




  원래도 책상 위 가득 책을 쌓아둔 OO이었지만 가을에 접어든 어느 날부터는 커다랗고 네모나게 각진 자기의 책가방도 자기 책상 위에 올려두기 시작했다.  책가방을 의자에 거는 게 어떻겠냐니 싫단다. 계속 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 두겠단다.  그야말로 자기 앞에 성벽을 쌓아 올렸다. 커다란 산처럼 놓인 그 가방을 보는데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다. '저렇게 내가 보기 싫은가 보다. 저렇게 학교에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가 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학교에 오지?'  다른 학생들과 수업도 해야 했기에 나는 일단 이것에 대해 남아서 얘기해 볼 심산이었다.


"OO이.. 수업 마치고 남아"

"왜요?"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행동이 남는 이유야."

"왜요?"


그러더니 휘파람을 불기 시작한다.  친구들이 눈치를 주며 조용히 하라고 했더니 " 어차피 찍힌 거.."라고 말하며 '쁘쁘쁘쁘' 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한다. 마치 나를 놀리는 것 같다.  '나는 너를 찍은 적 없다. 오히려 네가 나를 보란 듯이 찍고 있다. '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싶었지만 나는 일단 남아서 이야기 하자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OO 이는 이후에도 책에 욕지거리를 쓰며 수업에 참여하지 않다가 남으라는 내 말에 아랑곳없이 혼자 가버렸다.


그렇게 OO 이는 며칠이나  책가방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자기 책가방 뒤에 숨어서 학교 생활을 했고 나는 이것에 대해 OO 이와 이야기 나눌 기회도 잡지 못했다.  





  체육 선생님은 무서운 분이셨다.  목소리도 크시고 엄격하시며 호기롭게 규율을 강조하시는 분이셨다.  학생들은 그런 체육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마음이 여린 여학생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체육 선생님의 지적에 가끔씩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나와 하는 체육 시간에는 자유롭게 열외 하며 학습에 참여하지 않는 OO이었지만 체육 선생님과 함께 하는 체육 시간에는 2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까지 열외 하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OO이가 체육 선생님께 말도 하지 않고 활동에 빠져 있었다. 친구들이 자기에게 공을 주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체육 선생님이 수차례 선생님께 말도 없이 마음대로 활동에 빠져있는 이유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고 다그처 물으시는 체육 선생님께 OO 이는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이유를 말해 버렸다.  화가 난 체육 선생님은 OO 이보다 더 큰 목소리로 어디 선생님에게 이따위로 대답을 하느냐며 심하게 야단을 치셨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고성이 어찌나 컸는지 강당과 같은 층에 있는 교무실에서 그 소리를 듣고 교감 선생님이 두 사람에게 달려와 말리기 시작하셨다. 나는 체육 선생님께 그간 내가 봐온 OO이의 모습을 알려드렸다.  나는 학생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까 봐 미리 OO 이에 대한 언질을 주지 않은 것이었는데 체육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화가 나서 씩씩대며 고함을 쳐대는 OO 이를 보고 무척이나 당황하신 듯했다.  


     체육 선생님은 OO 이를 따로 부르셨다.   나는 순순히 OO이가 체육 선생님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OO이는 체육 선생님께 갔고, 자기의 잘못을 사과했고, 다시는 동일한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나는 OO이의 돌발 행동이 끝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무서운 분위기 속에 아슬아슬 숨겨져 있던 OO이의 모습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당연하게 터져 나올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OO이는 다음 체육 시간부터 정말로 마음대로 활동에서 열외 하지 않았으며 가끔씩 틔는 행동을 하기는 했지만 체육 시간에 '참여'했다.


나는 그런 OO 이를 보면서 더 엄격하고 무서운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학생 노릇을 하는 OO 이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해 보이는 OO이의 모습과 여러가지 학교 상황과 맞물려 OO이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 고함 한 번 치지 못하는 내 모습이 겹쳐져 모든 게 우스워보였다.


 더불어 자책했다. 내가 만약 좀 더 카리스마가 있었다면 나를 이리 대하지는 않았을까? 수업에 끝까지 참여하는 것을 '못하는' 줄 알았는데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었다니..   애초에 맨 처음 문제 행동이 나타났을 때 처음부터 엄격하게 붙잡고 늘어져 야단을 쳤더라면 그게 통했을까? 도대체 어디부터 꼬인 걸까?  따뜻하게 다가가려 했던 내 시작이 틀려서 이 아이가 이리도 엉망으로 학교 생활을 하는 것일까?  결국 그 아이의 문제 행동을 교정한 것은 인내와 기다림이 아니라 압도되는 무서운 개인의 카리스마라니..


학교는 성장하러 오는 곳이다.  나는 그 성장을 돕는 사람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성장 대신 퇴보와 곪아가는 상처만 확인하는 일상은 괴롭기 짝이 없었다.  네 마음도 그랬니?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  그때의 너도.. 그리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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