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밑줄을 긋다가

by 건너별


연필로 밑줄을 긋다가

툭 부러져버린 심에


바로 연필깎이를 찾지 않고는

지그시, 뉘여 쉼을 건네주었지


혹여 다른 펜들이

나를 써주면 되잖아,

외쳐도 왠지 그날따라 넘어가지 않았지.



부러진 그 곳이

심이 날아가버린 그 곳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아


그러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현미경으로 초점을 잡듯

그 까만 속을 확인해 봤어.


하지만 가득 차있었지?

그저 주변을 깎아내면

다시 구색을 갖추는 걸.



그런 믿음이

다시 살아났을 때



비로소

주변의 아름다운 소음이 들리고

멋진 만년필을 꺼내 들어

누워 쉬던 연필을

잠시 눈을 붙이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어



언젠가 네가

플라스틱 뚜껑으로도 쓰기 힘들 만큼

몽당한 모습을 보일 테니



온몸을 자연스런 경사에 흐르도록

기분좋은 뒤척임으로

안락한 골짜기에 다시금 몸을 맡기어

따뜻한 책을 덮고 자렴



겹겹이 쌓인 층층한 이불들이

너의 둥글고 기다란 모습을

빈틈없이 감싸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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