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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너별 Jul 04. 2021

외로움은 혼자 달래는 게 나아

 언젠가부터 외로움을 혼자 달래는 데에 익숙해졌다. 외로워도 정말 힘들지 않으면 굳이 티 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진짜 티가 안 나는지는 모르겠다. 가끔, 진짜 가끔, 내가 누군가의 징징거림을 받아 줄 수 있을 정도의 빈도로, 가까운 주변 사람이 알아줬으면 하는 때에 슬그머니 흘리는 신호. 이외에는 스스로 방 안에서 느끼고 있는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기에 안고 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고, 나의 심연에의 유영은 바쁘고 자극이 난무하는 일상에서 마음속에 울리는 소곤거림으로 인도해주는 아파도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충분히 이기적이다. 다른 이들의 고민이 그리 궁금하지 않다. 그게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물론 고민 상담 자체를 듣기 싫어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대방의 고민이 부담으로 다가와 있을 때, 나는 도망가고픈 강렬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욕을 먹는다고 해도, 상처를 준다고 해도, 나보다 중요한 건 없다.

 비슷한 예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도움도 안 되고 재미도 없는 시답잖은 얘기가 오간다고 생각이 들면 오늘이 마지막 만남이 되겠구나 하고 직감하며 이후에는 관계의 끈을 가능한 느슨하게 부여잡게 된다. 어찌 보면 매정하기 짝이 없다.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관계를 굳이 이끌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관계들이 점차 순수함을 잃고 소위 비즈니스 관계로 변모해 간다. 이래서 나이가 들수록 진심 어린 관계를 만들어 내기가 힘들다고들 얘기하나 보다. 어른이 되어 가나 보다. 아니 그냥 나의 이기심을 합리화 중인 것인가.



 술을 웬만하면 마시지 않기 시작했다. 나의 건강을 위해. 주변에 술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먼저 보자고 하지 않는다. 다들 술 좋아하는 거 뻔히 아는데 내가 저녁에 보자고 해놓고 술 한잔 안 마시면 그것도 웃기다. 가끔 만나서 나는 안 먹고 앉아있기는 하지만, 뭐 그것도 한두 번이다.

 얼마 전에 소주를 오랜만에 한 잔 먹을 일이 있었는데 입 속에 넣는 순간 정말 이걸 왜 그동안 마시며 즐겼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소주를 입에 처음 댔을 때로 돌아가버린 느낌.

 

 

그러다 보니 주변에 친구들과의 관계도 조금은 전보다 멀어진 감이 있기도 하다. 내가 이전만큼 그들을 찾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느낄 테니까.  20대 중후반에 접어들며 각자의 관심사가 모두 달라졌기 때문에 자연스럽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는 거고 막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친구들과의 더 두터운 우정을 위해 나와 취향이 다소 달라도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낼 것인지, 아니면 외롭더라도 내 길을 가며 다른 관심사가 통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에 속할 것인지는 본인의 선택이다. 난 나의 인생을 위해 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다. 물론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라, 그들과의 관계가 망쳐지는 게 두려운 나의 무의식 중 행동 강령일지도 몰라.



하지만 수많은 인간 속의 나,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가. 외로운 건 기본적으로 환영하기가 힘든 감정인 것은 자명하다. 내가 사람들을 찾지 않는 만큼, 사람들도 나를 찾지 않는다. 혼자 외로움을 달래는 게 가장 편하지만, 순수함이 남아 있던 시절 오가는 수많은 언어와 타이밍 속에서, 아주 가끔 혼자만의 고독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위로와 마음을 건네받았던, 많지 않지만 놀라운 기억들은 나를 문득 슬프게 한다. 결국은 사회적인 동물인 내가 부딪히기 싫어 하나하나 개인적인 공간을 늘리고 "나도 침범 안 할 테니까 너도 침범하지 마"하는 마음을 점차 가지게 된 건 함께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 간다는 의미도 되는 것 같아서. 나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외롭지 않게 함께 할 수 있는 거리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찾아 헤매는, 터무니없는 이상주의에 빠져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함께하고 싶다. 진심이다. 허나 양보와 배려에는 항상 여유가 필요하며 에너지가 쓰인다는 건 다들 알고 있다. 나 하나 챙기기도 어려운 세상에 남들에게 진심을 다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하며 삶의 고통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되지만, 그러다가도 손 내민 적 없는 나를 자책하며 도움을 청하기를 두려워하고, 스스로 끙끙 앓으며 괴로워하고,  그러다가도 오랜만에 오는 반가운 사람의 연락에 뛰쳐나간다. 생각지도 못하게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생기고 진심어린 마음을 다하고 행복을 느낀다. 사무치는 감정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싶다가도 어떻게든 살아지는 게 나에게 있어 그저 삶인 것 같다.



이렇게 오늘도 외로움을 텍스트로 흘려보낸다. 그건 연기처럼 퍼져 나가지만, 내 옆에 계속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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