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중국집에서

연재 소설 (4)

by Chris

그렇게 올라가고 또 올라가 삼척에 이르렀다. 세상은 어느덧 붉은 빛은 사라지고 새파란 빛이 가득했다. 하늘뿐 아니라 바다도 파랬다. 위아래를 뒤집어 바다를 하늘로 삼아도 될 정도였다. 목적지인 장호항보다 위쪽인 삼척에 들른 까닭은 며칠 동안 쉬면서 먹을 것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지금껏 몇 번이나 이곳에 온 까닭에 지도 없이도 수월히 마트를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둘이 온 여행이니만큼 먹을 것을 최소화하자고 했다. 대신 점심은 근처 맛집을 검색하여 괜찮은 중국집으로 갔다. 음식을 먹으면서 그의 기색을 살폈다. 어떠냐고 물어보니 딱히 대답은 없었으나 평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듯했다.

사실 그는 맛있는 음식이라 하더라도 크게 표현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며 평범하다는 표정을 읽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쁘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에게서 음식이 어땠는지를 자세히 알려면 언제나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어느 날 전화로 수다를 떨거나, 만나서 대화하다가 문득 화제가 먹을 것과 관계될 때, 그때가 되어야 그는 맛집에 관한 제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때로는 "넌 언제나 그렇게 맛집도 곧바로 맛있다고 하질 않잖아."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정말 맛있다."라고 말해줄 곳이 어디일까 내심 기대가 되기도 했다. 그와 함께 간 곳 중에 그런 곳이 딱 두 곳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는 시청역의 족발집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향 시내의 갈치조림집이었다. 족발집은 그와 전화 통화 중에 먼저 그곳의 추억을 이야기한 터라 그때 그의 남다른 반응에 기뻐했었다.

그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살필 때면 언제나 내가 밥 한술을 뜰 때를 기다려 바라보시고 어떤 반응을 기대하시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그녀가 그 앞에서 나를 바라보며 긍정적인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어때?"라고 물을 때면, 언제나 나는 괜스레 고집이 생겨서 "먹을 만하네."라고 퉁명스레 말했었다. 마치 실망하는 듯한 반응이 더 재밌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며, 딴에는 칭찬에는 인색한 게 좋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반응 후에는 언제나 밥을 두 그릇 이상을 먹었다. 조금은 실망한듯한 어머니는 늘 그렇듯 밥을 더 달라는 나의 요구에 이내 그 기색을 바꾸어 원치 않을 만큼의 밥을 더 퍼주곤 해맑게 웃으셨다. 대현과 식사를 할 때면 철없던 그 시절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을 아렸다. 그래서 지금은 밥상머리 위에서 솔직해졌고 어머니에게 할 수 있을 만큼의 맛 표현을 했다. 그녀와의 밥상머리 밀당 따위는 할 필요도 없었고 표현에 인색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한때는 이 친구와 같았고, 그의 기색을 살피는 지금은 어머니의 마음과 같았다.

표현에 인색하기보다 조금만 더 표현할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이따금 감정을 숨기고 표현하는 것을 자제하는 것일까? 가벼운 추측을 해본다면, 우선은 숨긴다기보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탓이 더 클 것이다.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라는 책을 보면, 원숭이가 뱀에게 공포를 느끼는 최초의 시점은 부모가 뱀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본 이후라고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부모, 혹은 그런 숨기는 방법만을 경험하고 계속 보아왔기 때문에 우리 또한 표현이 익숙지 않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적 관습일 거라 보는데, 공동체의 특성이 강한 우리 문화권에서 지나친 감정 표현보다는 감정을 숨겨 구설에 오르는 것을 경계하던 것이 몸에 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감정 표현을 삼가는 것이 미덕이라는 문화적 차이를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이야기 두 개가 있다. 아쉽게도 둘 다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아니며, 일본인과 중국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과 우리는 거의 비슷한 문화권이고 또한 우리 문화의 보편적 특성도 이 둘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처럼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본다.

일본인의 이야기는 나쓰메 소세끼에 대한 일화라고 전해지는 것이다. 물론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이것이 그의 이야기라기보다 도시 전설처럼 내려오는 말이라는 이야기도 많은데, 일단 나쓰메 소세끼라는 작가가 번역가로서도 활동하기도 했고 충분히 동양권의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말이라 생각해서, 그가 실제로 했다고 해도 이 말은 크게 이상할 것 없을 것 같다. 이야기는 이렇다.

한 번은 그가 영문과 교수로 있을 때, 한 학생이 "I love you."를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을 했다. 당시에는 ‘love’를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일본에 없었기에 그는 "저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꽤 낭만적인 대답이 아닐 수 없으나, 동시에 현대적 측면에서는 사랑의 감정에 관하여 직접 와 닿는 표현이 아니기에, 듣는 사람에 따라 답답해할 수도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하나는 동명의 소설과 영화로도 유명한 「조이럭 클럽」이다. 책에서는 우리의 문화처럼 정성껏 차린 음식 앞에서 "음식 솜씨가 별로라…."이라는 중국인 어머니의 겸양 섞인 말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서양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우리는 이 말에 대한 답변으로 상대방이 "음식이 대단하신데요!" 혹은 "아니에요. 정말 맛있겠네요."와 같은 말을 의례 기대한다는 것을 알지만, 서양 문화권에 속한 이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두 문화권에 속한 사람이 느끼는 차이를 두 사람의 식사 예절을 통해 보여주는 것인데, 이 또한 서양의 관점에서 볼 때 지나치게 감정 표현을 삼가는 동양 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툰 감정 표현을 연습하게 된 것은 나 역시 오래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까닭은 내 진심을 표현하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유도 있었다. 그러한 이유를 곱씹어 보자면, 아마도 추운 어느 겨울날, 내 나이가 스물다섯쯤에 이르렀을 때였을 것이다. 내게는 5살 터울의 남동생이 하나 있다. 의례 나이 차이가 나는 형제들이 그렇듯, 나이가 먹고 부모님이 일 때문에 자녀 도덕 교육에 크게 신경 쓰지 못할 무렵부터 나 자신이 그것을 담당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많은 경우 엄하게 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그가 사랑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엄한 말 한마디에도 애정이 담겨 있음을 알고 있을 거라고 합리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어느덧 스무 살이라는 나이를 먹고 나서도 여전히 철없이 구는 듯한 모습을 봤을 때 - 어느 때나 다를 바 없이 여전히 사랑했지만 - 어쩔 수 없이 화를 냈다. 그의 반항에 처음으로 물리적 폭력을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는 그를 차에 강제로 싣고 남자 대 남자로 힘겨루기를 하려고 강둑까지 데려갔다. 그의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나로서는 올바른 행동을 하지 않은 것에 다른 변명의 여지는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강둑에 이르러 시동을 끄고 마지막으로 그의 변명을 듣겠노라고 도대체 왜 그러는지 물어보았을 때, 나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첫 구절이 왜 그렇게 시작이 되는지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어떤 괴로움 속에 살고 있는지, 자신의 고민이 무엇인지, 내가 모르고 있던 집안의 여러 사정 이야길 듣게 된 것이다. 그는 멀리서 살다가 어쩌다 한번 고향 집에 들르는 형이 고통받지 않도록 집안의 여러 괴로운 사실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때마침 내가 왔을 때 내 눈에는 무례하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표출이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 말의 끝에 형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내 사랑의 마음이 그에게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엄하게 꾸짖는 행위를 사랑이라고 믿으면서도 실상 나는 제대로 된 사랑이나 마음을 그에게 내비치지 않았다. 동생 또한 내가 모르는 수많은 집안의 괴로움 등으로 인하여 내 사랑을 충분히 받아들일 여건이 되지 못했다. 그런 중에도 나는 동생의 위에서 군림하며 때로는 그에게 내리는 분노와 훈계를 사랑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고 행하고 있었다.

아무리 훈계 속에 사랑을 감추어 놓았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그것을 찾지 못하면 그것은 전달자의 잘못이었다. 사실 훈계 속의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내 화풀이를 방어하기 위한 전략이며 합리화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뒤에 나를 짓누르던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좀 더 유쾌한 사람이 되었다. 동생에게 애교도 피우고 내 감정에 조금은 더 충실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진솔한 표현은 다른 여러 상황에도 적용가능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온몸으로 맛있음을 표현하게 되었고 감사할 때에는 전보다 더 기쁜 눈짓으로 감사를 표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계기로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연습을 계속 해왔다. 아니 연습을 했다기보다 무겁게 짓누르던 갑옷을 벗어버린 느낌으로 타인과 지속적으로 교류했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한 과정 중에서 느낀 점을 좀 더 말하자면, 대체로 가장 쉬운 감정 표현은 분노이며 가장 어려운 감정은 우울이라는 점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분노는 그 자체로 공격하는 행위기에 승리의 감정을 동반하지만, 우울은 그 공격을 받아들일 때 보일 수 있는 패배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겉으로 드러내기를 싫어한다는 말이다. 우울은 현실에서는 드러내기보다 언제나 감추고 싶은 감정이었다. 아! 우울을 이야기하니, 알 수 없는 우울한 감정이 든다.

그 이후로 그동안 무시하고 있던 감정의 색깔들을 파헤치고 같은 색깔 속에서도 마치 여성의 립스틱 색깔처럼 여러 톤의 차이를 구분해보려는 노력을 해보았다. 섬세함이란 결국 감정의 색깔을 조금 더 잘 구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는 또한 예술의 이해와도 맞물려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예술의 수많은 형태가 좋은 까닭은 이따금 그것을 타인에게 어쩔 수 없이 언어라는 수단을 매개로 전달하고자 할 때, 도저히 어떤 단어와도 맞물릴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을 전달하는 좋은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문학에 나온 누군가의 대사로, 또 때로는 예술에서 전달하는 느낌으로 내 감정을 전달하곤 했다. 그 자체는 '나는 슬프다'라는 감정보다도 더 깊이 있는 느낌의 전달이었다.

아! 그것이었던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저 달이 아름답다는 말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러한 고차원적인 언어로서의 말을 하기 위한 전제는 이미 서로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함에 있을 것이다. "저 달이 아름답네요."라는 똑같은 말이라도 그 안에 든 가장 큰 범주인 '사랑'을 상대방이 이해하고 있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 말이 가진 진의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범주를 알지 못하는 서로 관계되지 않는 둘 사이에서는 저 말은 그저 달의 아름다움만을 말하고 있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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