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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Mar 24. 2020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

나는 내가 인연의 가치를 제법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때로는 몰랐으면 좋았을 법한 사람들이 있다. 밥을 먹다가, 세수를 하다가, 책을 읽다가 순간 문득 떠오르는 얼굴. 머리를 헤집고 하나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절대 떨쳐 버리지 못하듯 그렇게 점점 더 선명해지는 사람. 그 선명함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안함도 커지는 사람. 차라리 몰랐으면 이런 고심 따위는 없었을 것을 이미 알아버렸기에 내 맘의 흔적으로 남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까, 나로 말미암아 힘들어하진 않았을까, 내가 혹시 그 사람의 능력을 무가치한 것으로 깎아내렸던 것은 아닐까?

일상의 사소함들 속에서 했던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돌아보게 되고 그 옆에 있는 나를 다시 본다. 모든 것들이 재조립되고 과거의 잘못이 현재의 심판대 위에서 심판을 받는다. 재판관은 나, 죄인의 위치에 서 있는 것도 나이다. 그곳에 서서 나는 모든 심문을 감내하며 그와 함께했던 경험을 모조리 헤집는다.  

“그곳에 물건이 없었더라면 물건을 훔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변명하는 어리석은 도둑처럼 나는 ‘그 사람이 없었더라면’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저항을 한다.

끊임없이 나를 해체하는 심판대 위에서 그토록 저항을 하지만, 끝내 그 저항은 실패하고 심판자는 기한을 알 수 없는 그리움이라는 형벌을 내게 부여한다.

지금의 인연이 소중하면서도 또한 두려운 까닭은 인연이 주는 달콤함 뒤에, 어쩌면 반드시 언젠가는 오게 될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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