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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pr 09. 2020

어떤 다짐.

어느 날, 운동을 하다가 귀가 부었다. 일주일 정도를 내버려 두다가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은 귀를 째서 응고되려다 만 고름을 밖으로 빼내 주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운동을 재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귀가 부었다. 이번에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말랑말랑했던 그 고름은 딱딱하게 굳어져 귀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사랑받고 싶어서 죽을 것 같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사랑해 달라고 말도 하지 못했고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오랫동안 사랑을 하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러고 나자 외로움이 마음 한쪽에서 삐져나왔고 빼내지 않은 고름처럼 부어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흘러 굳어져 나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외로움은 더는 아프지도 않았다. 가끔 그렇게 굳지 않은 외로움이 또다시 흘러나왔지만, 이 또한 굳어버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버텼다.

그러나 굳어져 버린 귀를 만질 때처럼 이 굳어버린 것들을 더듬어 볼 때면, 나는 왜 이렇게 되도록 끝내 방치해 두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귀의 고름이 굳기 전에 해결 방법을 찾으러 병원에 갔던 것처럼, 이 또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는데 그저 시간이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나는 이토록 멍청하고 우유부단했다.

귀가 부은 직접적인 까닭이 운동 때문이었듯, 외로움이 표면으로 흘러나온 직접적인 문제는 분명 사랑 때문이었다. 그 사랑을 바라고 갈망하며 행동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자 고름처럼 흘러나와버린 것이었다.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은 더는 없는 것인가? 아니다. 내가 좀 더 사랑하고 아끼고 노력하면 될 것이다.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된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남녀 간의 사랑에 관해서는 누군가가 노력한다고 하여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원한다고 다 소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다짐했다. 다시는 사랑 따위는 바라지 않겠다고. 차라리 사랑을 갈망해서 상처를 받을 바에는 아예 깨끗이 도려내 버리고 말겠다고. 이제는 사랑 때문에 착한 척하지도 않을 것이고 눈물짓지도 않을 것이라고.

제대로 되지도 않을 개똥! 같은 사랑의 갈망에 얽매여 살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까웠다. 그냥 나는 자유를 만끽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느니 그냥 나 자신을 사랑하고 말겠다. 그들로 인해 나를 무너뜨리지 않겠다.

굳어져 버린 귀를 만지면서 또 하나 다짐했다. 굳어져 버린 외로움에 대해 아쉬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겠다고. 그리고 더는 외로움이 터져 나오지 않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나도 마음을 주면 언젠가는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 따위는 버리고 나니 홀가분해졌다. 그렇게 바라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니, 실로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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