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동 없는 삶/ 'Don't be evil.'에 관하여

나의 일상 여행기. (57)

by Chris
그림: 압생트 한 잔(L'Absinthe) by Edgar Degas, painted between 1875 and 1876.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새벽까지 영화를 본 탓인지 12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7시 알람이 울려 잠깐 깬 것 외에는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렇게 오전을 날려버린 것도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는 저번에 고향 집에 내려가서 주말을 보낸 이후 처음이며, 인천의 자취방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곳에서는 오전을 통으로 날렸다는 생각에 온종일 땅을 치고 아쉬워할 일이었다. 물론 내 집에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저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때우는 일은 있으나 그건 오늘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뿐이었다. 그러나 휴가지에서 우리의 마음이 전보다 느슨해지듯, 나 역시 휴가지의 기분에 더해 재충전의 시간처럼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 재충전이었다. 나는 어쩌면 지쳐 있어서 동생을 보고 재충전을 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간의 정신적인 부담을 덜어버릴 재충전을 이곳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을 해도,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전적으로 믿어줄 만한 곳에서 불안감 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집에 내려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아서라기보다 매번 이렇게 하루를 보내기 때문이다. 어떤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소파나 침대에 누워 어떤 충동도 느끼지 않고 하루를 보낸다. 무엇인가를 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지 않는 것만큼이나 인생을 단조롭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편안했으나 이런 삶이 계속될까 봐 두려웠다.

나이 듦은 충동이 줄어들고 그저 해왔던 것들, 자신에게 편한 것들만을 받아들이려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말하자면, 삶의 불편함도 느끼지 않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눈살을 찡그려보지도 않은 채 잘못된 것이든 잘된 것이든 상관없이 그저 받아들이려는 것이다.. 어떤 충동도 없이 그저 해오던 삶이 저무는 해처럼 하나의 색으로 단조로워지는 것이다.

박범신의 '은교'나 나보코프의 '롤리타', 혹은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는 한 늙은 남자가 어린 여성을 이성으로 여기면서 점차 삶의 활력을 얻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이를 보며 젊음을 되살리는 것이 어쩌면 그러한 충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들은 자신 속 안에 있던 무언가를 다시 헤집어 발견하는 것이며 그에 따라 아직도 자기 안에 불씨가 살아 있음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자신에게 이미 사라졌다고 느끼던 것들이 발견될 때 그 주변에 존재하던 것들도 함께 발견하기 시작한다. 그 하나의 불씨의 발견은 마치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헤치며 한 명의 생존자를 발견할 때 다른 존재의 생존 가능성에 큰 희망을 걸며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가능성은 비록 하나지만 모든 것의 시작일 수 있다. 무(無)와 하나의 발견은 비록 그 수가 '1'의 차이 밖에 나지 않지만, 후에 더 많은 발견으로 전체가 될 엄청난 가능성의 차이일 수도 있다.




어떤 충동도 없는 무기력함에서 일어나 간신히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동생은 또 무언가를 배달어플로 주문하려고 했으나 나는 괜히 돈 쓰지 말라며 눈앞에 보이는 라면과 즉석밥으로 해결하자고 했다. 동생은 거기에 더해 냉동실에서 만두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비싼 식사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거나 대접을 할 때를 제외하곤 밖에서 사 먹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한번 사 먹지 않아도 책 한 권은 족히 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어차피 과한 양을 먹어봤자 운동에만 지장을 줄 뿐이었다. 차라리 건강이나 근육 형성에 도움이 될만한 식사를 하는 게 좋았다. 물론 맛은 고려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나를 만들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싼 음식이나 남들이 별로라고 여기는 것조차 맛있게 먹는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한번은 낭패를 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가격도 저렴하고 또한 맛도 있다고 여긴 음식점에, 교수님과 다른 분들을 모시고 간 일이었다. 식사 후에 그 분들은 별로 말이 없었으며 그때 내 입맛과 다른 분들의 입맛이 다를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상품이나 음식을 구매할 때 가장 큰 구매 기준이 바로 가격이었던 것 같다. 가성비가 가장 중요했고 비슷한 제품이면 저렴한 게 좋았다.

이에 반해 동생은 음식을 선택할 때, 될 수 있으면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했다. 심지어 맛집이라고 누군가 끌고 가서 먹어보고 맛이 없으면 자기가 계산을 했다. 그 까닭은 맛이 없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할 말을 말하려고 자기가 계산을 하고 두 번 다시 안 간다고 했다. 동생은 그런 녀석이었다. 자기가 늘 먼저 계산을 하려 했으며 '하나를 먹더라도 잘 먹자!'라는 주의였다. 나도 어릴 때는 그런 적이 있는 것 같으나 현재는 맛이 있든 없든 더치페이를 선호하며 될 수 있으면 싼 곳을 좋아한다. 이는 내 성격 탓도 있지만, 아마 내가 일을 하지 않고 돈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라면 밥을 그렇게 먹고 다시 누워 하염없이 휴대폰을 했다.



21세기 바보상자를 보면서 생각하기를 멈추지만, 바보가 된 만큼 즐겁기도 했다. 끊임없이 나오는 영상을 보면서 한동안 계속 낄낄댔다. 교육적인 것보다 자극적인 것이 끌렸다. 구글은 자신의 사명(社名)¹을 "Don't be evil."이라고 했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작은 화면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이 유튜브를 보며 어쩌면 이들은 진짜 악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악마는 세상을 장악하고 우리를 무의식적으로 세뇌하고 조종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거나 보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의 고통마저 준다. 그리고 당신의 자유의지로 보는 것과 보지 않는 것 중 보는 쾌락을 선택했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을 향해 자신이 이겼다며 낄낄댈 것이었다. 우리가 구글을 이용하는 만큼 구글 역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구글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가 된 우리는 필시 그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 것이다.

문득 새벽에 본 영화 '악인전'이 생각났다. 극 중에 악인이라 여기는 마동석이 비를 맞는 한 소녀에게 우산을 건네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때마침 그를 찾아온 형사는 소녀에게 이 아저씨 조폭이라며, 함부로 받는 것 아니라고 나무라니 소녀는 아저씨가 더 조폭 같다고 핀잔을 줬다. 적어도 저 장면에서 소녀에게 있어서 마동석은 악인은 아니었으며 얼굴은 무섭지만 선한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다. 악마가 악마인 까닭은 그 모습에서 악마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기보다 현실에서 그가 행하는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을 때 그렇게 여겨진다.

구글은 악마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 '악마가 되지 말자.'가 '선하게 살자.'는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마치 이미 악인이 된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서도 더 악한이 되지 않도록 그 마음을 경계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마치 이미 폭력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스스로 두려워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처럼.

그래서 우리에게 선택을 주는 것인가? 우리가 바보상자 속의 노예가 될지, 그것을 우리의 지성을 밝힐 도구로 이용하도록 할지…. 그들은 늘 그러했듯이 우리를 시험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 안에서 눈이 먼 후에야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잠시 눈을 감고 다시 일어나니 시계는 4시 45분을 가리켰다. 지금 일어서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동생은 게임을 하다 말고 침대 밑에서 자고 있었다. 그가 깰세라 조용히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굳이 동생을 깨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오후 내내 내리던 비는 그쳤으나 바람은 계속 세차게 불었다. 하늘은 아직도 먹구름이 가득했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세상을 맑게 해줬다. 인천으로 오는 시외버스를 탈까 하다가 빨리 가는 것보다 진득하게 앉아서 글을 쓰는 게 나을 것 같아 지하철을 택했다. 산본에서 내려 아르바이트하는 곳까지 한 번에 가는 광역 버스를 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3시간 정도 걸려 도착하고 늘 하던 아르바이트를 했다. 돌아올 때는 내일 영어 모임의 복습을 할 겸 걸어갔다.

방에 들어오니 그리운 집의 냄새가 코끝을 속삭였고 나는 이제 주말의 꿈속에서 돌아올 때라고 느꼈다. 내 방 안에 감도는 현실의 향기는 참담하면서도 평온했다. 이 향기를 맡으며 나는 내일도 7시까지 학교에 가게 될 것이었다.



¹ 2015년 이후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이 공식 출범하면서 사명을 "Don't be evil." 에서 "Do the right thing." 으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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