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 아래는 평범한 하루를 특별한 여행처럼 의미를 담아 쓴 연작 형식의 글입니다. 제목은 내용 중 일부에 관한 이야기니 참고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인물의 이름이나 세세한 사항은 실제 인물과 다릅니다.
해가 길어져 이제는 블라인드를 치지 않으면 밝은 햇빛이 내가 잠에서 깨기도 전에 방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햇빛이 허락 없이 그 자리를 차지하건 말건, 평온함을 누리기도 전에 방에서 나와 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상윤을 보고 정해진 방으로 들어가서 책을 폈다. 한 10여 분간은 아직 채 돌아오지 않은 정신을 다그쳐가며 혹은 커피를 마셔가며 다시 돌아오도록 기도하고 나머지 10분간은 커피와 함께 가벼운 담소를 그와 나눴다. 그러고선 책을 다시 보았다. 오늘의 책은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였다. 이 책은 한 신경 심리학자가 오랫동안 신경계의 이상 때문에 환각을 보거나, 기억을 잃거나, 지나치게 흥분하거나, 혹은 그런 이상이 있어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등 다양한 증상을 가진 환자의 사례를 다루는 책이다. 이런 책이라고 해서 학문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고 그런 환자들에 대한 치료 경험을 이야기로 적은 책이었다.
어떤 책에서인지 모르겠다. 그 책의 서두에서는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 이야기해준 말이 나온다. 아마 "이야기는 힘이 세다."라는 말이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은 진보적인 지식을 받아들이고 그로 말미암아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단순히 분석과 과학적 입증이 사회를 변화시킨다기보다 그것을 이야기로 구성할 때 대중은 이를 받아들이고 변화한다는 논조였던 것 같다.
이 말은 이 책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자신이 의사이자 자연과학자로서 현직에 있으면서 보고 치료했던 수많은 환자를 통해 병의 실체를 보여준다. 단순히 진단명이 어떻고 어떻게 치료했느냐를 떠나 그 과정을 이야기식으로 풀어내어 한 개인의 질병 경험과 과정에 대해 다룬다. 그래서 이 책의 임상 보고서임과 동시에 인간 존재의 주체성을 다룬 환상 문학의 단편 모음집을 보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영어 모임은 사람이 없어서 결국 혼자 했다. 과연 이 시간에 모임을 계속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충분히 가치 있고 이를 통해 전보다는 나은 영어 실력을 얻은 것 같지만, 조금 더 나은 나를 계발하고 이익을 얻을 방법을 고민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에 대하여 좀 더 나를 밀어붙일 필요가 있었으며 지금은 이 모임이 그것을 가능케 하는지를 살펴 봐야 할 시점이었다. 그러려면 지금의 내 실력에서 좀 더 노력할 것이 무엇인가? 좀 더 고급과정으로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생각해봐야 했다. 우선은 무엇을 해야 한다를 생각하기보다 고급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대상을 적어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통·번역을 하는 이들이나 미드를 자막 없이 보는 이들, 또는 이코노미스트나 뉴스를 쉽게 읽을 수 있는 이들이 떠올랐다. 그러면 그들이 학습하는 방법을 찾아서 따라 하면 될 것 같았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것으로부터 당장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비록 많은 돈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지금 수입에서 용돈 벌이 정도는 되는지라, 이것마저 없으면 삶이 꽤 빠듯할 터였다. 그래서 지금의 모임을 없애려면 사실 그것을 대체할 수입원을 얼른 찾는 것이 필요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모임을 그만두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일 수 있었다.
홀로 모임을 끝내고 운동을 하러 갔더니 상윤이가 운동하고 있었다. 집안일을 좀 하고 운동을 간다고 하더니 평소보다 조금 늦게 운동을 시작한듯 싶었다. 간단하게 몸을 풀고 바로 타바타 운동을 시작했다. 고작 해야 16분 정도만 하는 이 운동은 바쁘거나 다른 일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꽤 적합한 운동이었다. 스트레칭과 샤워까지 포함해도 1시간가량밖에 들지 않는 이 운동의 효과는 어떤 방송에서는 일반적인 운동의 4시간과 비슷하다고도 했다. 그만큼 힘든 운동이며 시간 대비 효율이 좋은 운동이었다. 모든 일이 이런 운동과 같은 효율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독서를 비롯한 다른 일들도 그런 방식을 찾고자 노력했으며 그렇게 찾은 것이 뽀모도로 방식이었다.
도구나 지식이 필요한 까닭은 배움을 좀 더 쉽게 만들어주고 자신을 더욱 탁월하게 만들어주는 데 있다. 물론 습관화하기까지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이런 도구들은 이를 더욱더 쉽고 편하게 해주었다. 좋지 않은 방식, 혹은 옛날의 방식을 무조건 따르는 것은 좋은 배움의 자세는 아니다. 물론 옛 방식에서의 좋은 점은 따라야 하겠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에 더해수 더 나은 방식을 찾아 개선하고 발전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옛날의 방식의 많은 문제점은 주먹구구식이거나 효율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는 점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것은 경제적 효율 등이 아니라 하나의 일이 탁월해지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관련된 효율이다.
더 나은 것을 찾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인간은 발전한다. 스승을 넘어서려면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만의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효율성을 추구하면 아집에 빠지기보다 가장 좋은 것들을 선별하고 받아들인다. 또한 그러한 삶 가운데 그저 무의미하게 흘러버릴 수 있는 시간을 붙잡아 의미 있는 것으로 쓰게 된다. 이들은 독서라는 두뇌 운동의 효율을 높일 수 있으며 흥미를 높이는 도구이다.
특정한 목적으로 어떤 시간을 활용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그다음 단계로 단번에 뛰어넘을 체력을 준다. 하루를 허술하게 보내면 언젠가 닥칠 그다음 단계의 벽을 넘는 데 애를 먹게 된다. 모든 것들은 경계가 있으며 숙명처럼 맞이할 그 경계를 뛰어넘는 것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달렸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는가? 영어에서만큼은 온 힘을 다하자는 년 초의 다짐은 지금도 유효한가? 그나마 계속 노력한 탓에 상당히 좋아졌다고 믿지만, 더 발전하려면 복습을 더욱 철저히 해야 했다. 탁월해지기 위한 노력은 철저한 연습과 복습에 있으며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만큼 과거의 것들을 온몸으로 익혀야만 했다. 적어도 년 초부터 학습했던 것들만큼은 모두 기억할 필요가 있었다. 매일 적어도 2강 정도는 복습하자! 매번 악마의 유혹에 빠지는, 취침 전의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면 충분할 것 같았다.
아직도 내 인생에 이 영어가 어떻게 활용될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노래나 기타 치기처럼 가끔 즐기는 취미활동이 되거나 운동처럼 건강, 특히 정신 건강을 위한 기반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저 다만 현재로서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탁월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내게 어떤 날개를 달아주게 되기를 바라면서. 결코,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