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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May 20. 2024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뮤지컬 <레드북>

 처음에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뮤지컬 <레드북>의 넘버인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과 '사랑은 마치'를 알게 되었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들과 사랑한 이들이
너무나 소중한 사람
지금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중요한 사람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내가 나라는 이유로 죄가 되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벌을 받는
문제투성이 세상에 하나의 오답으로 남아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내가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 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누군가에게 이해받지 못해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나는 나로서 충분해 괜찮아 이젠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만 들으면 나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통통 튀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순식간에 기분전환을 시켜주는 '사랑은 마치'까지, 두 개의 넘버만으로도 뮤지컬 <레드북>을 이유는 충분했었다.


 19세기 영국 런던,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가장 보수적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약혼자에게 첫 경험을 고백했다가 파혼당하고 도시로 건너온 안나. 어느 날, 그녀 앞에 신사 중에 신사 브라운이 찾아오고, 안나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브라운의 수상한 응원에 힘입어 여성들만의 문화회 '로렐라이 언덕'에 들어가 자신의 추억을 소설로 쓰게 된다. 하지만 여성이 자신의 신체를 언급하는 것조차 금기되던 시대. 안나의 소설이 담긴 잡지 '레드북'은 거센 사회적 비난과 위험에 부딪히게 되는데...
숙녀보단 그저 나로 살고 싶은 안나
오직 신사로 사는 법밖에 모르는 브라운
자신에 대한 긍지와 존엄을 되돌아보며, 타인의 소수성과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이해와 존중의 가치를 말한다.


 아무런 이해관계를 알지 못하고 듣는 넘버도 좋았지만, 극 중 안나의 이야기를 따라서 듣게 되는 넘버들은 더 벅차고 감정전달이 잘됐다.

 처음에는 브라운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안나를 남들과 같이 이해하지 못하다가 결국 안나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있는 그대로의 안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안나도 극이 진행될수록 더 당당해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 내려가고 브라운의 모습도 이해하며 사랑한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며 고민하는 사람들,

자신이 옳고,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고 싶은 일에 용기가 없는 사람들,

자신감이 필요한 사람들,

현실에 지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모두에게 추천하는 뮤지컬이다.


 안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 한구석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생기고, 나로서도 충분히 괜찮다는 위로를 얻게 된다. 그런 것들을 가지고 극장을 나가면, 나에게 주어진 상황이 바뀌진 않지만, 조금은 나아진 마음가짐으로 하나씩 헤쳐나갈 것이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이야말로 뮤지컬을 보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점이 아닐까.


 우리 모두가 당당히 자기자신을 말하는 사람이 되기를, 서로가 다름을 이해하고 각종 편견과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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