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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Dec 02. 2023

그때 그 아이들은.

가끔 아이들이 부럽다.

 월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가뜩이나 싫은 월요일인데 비까지 내리니 습한 기운에 기분이 안 좋았다.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놀이터에서 우비를 입고 우산을 들고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뛰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 보는 내가 다 행복해지는 표정이었다.


 문뜩 '어떻게 저 아이는 비가 오는데도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걸까? 나도 어렸을 적에는 저렇게 환하게 웃으며 뛰어놀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빗속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아이와 지금의 내가 다른 건 무엇일까? 그저 세월만 흘렀을 뿐 같은 사람인데.


 저런 사소한 행복에도 까르르 웃던 아이들은 하나둘 부모님의 울타리에서 나와 세상을 겪으면서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렇게 인내심을 기르고 참을성을 배우겠지만 동시에 자신을 눌러 일찍 현실과 타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아닐까? 아마 이게 철이 든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철이 일찍 든다는 것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해맑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 정말로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 듯 본인들의 생각대로 인생을 살아갔다.

 아이들에게 해맑고 당찬 꿈이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커가면서 쌓이는 경험과 현실에서 희미해지는 희망 속에 꿈들을 포기한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느새 훌쩍, 비 내리는 월요일을 싫어하는 직장인으로 커버린 것이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부럽다. 현실에서 벗어나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현재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이. 빗속에서 뛰어놀던 아이도 학교를 가야 하는 것 같았는데 옆에서 부모님이 재촉하거나 저지하지 않고 그저 아이가 뛰어놀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저런 여유와 기다림이 아이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걸 지도 모른다. 부모의 역할은 훈육뿐만 아니라, '그래도 괜찮아' 하며 우리에게 돌아갈 곳을 만들어주고 응원하는 역할이지 않을까?


 나도 아이처럼 주저하지 않고 그냥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 부모처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선택의 기로에서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는 것이라면, 앞으로는 하는 쪽을 선택해 보도록 노력해야겠다.


 그 시절 놀이터에서 같이 놀았던 아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얼굴도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처럼 해맑던 미소만큼은 없어지지 않았기를 바라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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