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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Nov 22. 2018

겨울이 온다

이미 왔지만 아직은 아니다

겨울이 주는 느낌을 시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지만, 계절의 변화가 가져오는 느낌이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감성을 만족하기에 충분하다.


섭씨 영하 5도의 온도.

흩날리는 눈발.

침엽수를 제외하고 벌거벗은 나무들.

그들이 자아내는 회색 및 옅은 갈색의 풍경.


내가 현재 발붙여 사는 이 곳은 북위 45도에 위치한,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내륙의 가장 북쪽 끝을 차지하고 있는 주 안에 있다. 그래서 미국의 냉동고라는 별명 또한 가지고 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학창 시절 역사와 지리 수업 시간에 접하며 막연하게 엄청 추운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한, 북위 43도에 위치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보다 북쪽에 위치하는 도시이다. 겨울의 악명만큼이나 아름다운 여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짧은 여름을 즐기러 이곳을 방문하지만, 겨울의 운치를 제대로 느끼기에도 제격인 곳이다. 


이곳의 많은 한인들은 눈과 추위만 아니면 이곳이 살만 하다고 하지만, 나는 눈과 추위를 포함해도 삶의 만족을 느낀다. 거주 지역 선정에 있어 날씨가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은 인류의 오랜 진리이기 때문에 날씨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자들의 고충에 대해 불평할 생각은 없다.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지를 자각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 이곳에 오면서부터 이리라. 오랜 겨울을 뚫고 햇살이 비치는 따스한 느낌을 경험하며 ‘아 이래서 사람들이 햇빛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밤 9시가 넘어서까지 하루 종일 해가 비치는 한여름의 날보단, 4시면 어두워지는 겨울의 날씨가 좋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보곤 한다. 아니면 그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단점을 애써 외면하기 위한 허세 또는 억지웃음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해가 오래 떠 있으면 무엇이든 활동을 오래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그렇기에 외부활동보단 가만히 앉아서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인 날씨이다. 이것을 단순화시켜 우울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는 반대하는 바이다.


회색빛의 도시의 겨울은 삭막함을 자아내긴 하지만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주택의 겨울은 하얗게 쌓인 눈과 함께 오히려 따스함을 풍겨온다.  


섭씨 -5도의 온도가 -30도로 바뀌는 날이 오기도 하고, 흩날리는 눈발은 50cm 이상의 폭설이 되기도 하여 모든 풍경이 하얗게 바뀌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들이 어우러져 나름 아름다운 운치를 이루어낸다.

폭설이 내리는 와중에 자전거를 타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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