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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01. 2018

겉멋만 들어서. 커피숍에서 공부가 되니?

스벅에 앉아 홀로 떠드는 소리

커피숍에 홀로 앉아 머리 속으로 잡소리를 늘어놓는다. 사람들은 이걸 잡생각이라 하는데 개개인은 나름의 방법으로 이 잡생각을 프로세스 하는 것 같다. 예전엔 잡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 적게 하는 사람이 따로 있나 보다 생각했는데, 사람들과 만나 얘기하다 보면 잡생각이 없는 사람은 없고 개인 간의 양적 비교가 불가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잡생각을 한다’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걸 어떻게 처리하고 다루느냐가 다를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스벅과 같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전문가가 카페 분위기를 위한 음악을 선곡한다고 한다. 아르바이트생은 일터의 음악을 선곡할 자유가 없는 것이 불평일 게다. 하지만 간혹 작은 커피숍에 가면 직원이나 사장이 마음대로 선곡한 듯한 음악이 흘러나오곤 하는데 카페 분위기에 안 맞을 때도 있는 걸 보면 비즈니스를 위해 때로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것이 확실하다. 물론 그 분위기라는 것이 왜 어떻게 정형화되었는가는 의문이다. 재즈 풍의 음악이 커피숍에 어울리는 것이라고 처음 프로그램화한 건 누구이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커피숍에서 사람을 구경하거나 관찰하는 일은 나에겐 관심 밖이다. 그저 지나가는 시선에 머무는 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뿐인데, 안면인식 장애가 없어 사람들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탓에 전혀 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들도 익숙하게 다가오는 것이 때로는 어색하다. 인간 군상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느껴진 적은 없는 것 같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타인을 관찰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서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즐기고, 때론 그것이 존재의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그런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이다.


간혹 학생들이 공부하러 커피숍에 간다고 할 때 겉멋 들었다고 잔소리를 듣거나 빈축을 사는 경우를 본다. 분명히 개인 차가 있다. 단지 만남의 장소로 또는 음료 테이크 아웃의 목적으로만 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커피숍 가서 죽치고 앉아 있는 걸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이미 고어가 된 된장녀 된장남이란 단어의 탄생은 전자가 후자를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한 발생이었겠지만, 단지 3자에 대한 비난이 아니어도 부모와 자식 간, 부부 간에도 언쟁의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꽤나 겉멋이 든 편인데, 현대인은 모두 알다시피 커피숍은 분위기도 팔기 때문이고 그 분위기에 대한 지불에 나는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커피숍에 앉아있는 게 나에게 겉멋을 가져다 주진 않는다. 그러면 좋으련만...


대신에 커피숍은 나에게 커피를 준다.

주기적으로 커피콩이 갈려지고 볶아지는 소리와 향이 제공된다.

나에게 의자와 테이블도 준다.

전문가의 선곡된 음악도 준다.

조명과 인테리어라는 공간도 허락한다.

날마다 매 시간, 랜덤 하게 조합되어 펼쳐지는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환경을 부여한다.

그로 인해 발생되는 다채로운 백색소음을 제공한다.


부득이 커피숍을 가지 못했을 때 집중을 위해 유튜브로 여러 가지 백색소음을 들어본 적이 있다. 나름 효과가 있지만 금세 싫증이 났는데 유튜브로는 시각 청각 후각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인 듯하다.

$2-$5 사이의 금액으로 이 모든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단지 겉멋이 아니더라도 소소한 행복을 위해 맺을 수 있는 계약 관계이다.


스벅의 커피는 맛이 없는 걸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커피 맛만을 기준으로 커피숍에 오는 건 아님은 확실하다. 그리고 '나 커피 좀 마실 줄 안다' 고 얘기하기 위한 확실한 대조군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단지 고품질 에스프레소나 드립 커피만이 아닌 다양한 음료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를 무난하게 충족시키기 때문에 평범한 일상의 휴식과 심심한 입을 위로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다.


요즘은 커피숍에서 노트북 하나만 펴놓고 일하는 1인 기업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수많은 지적 활동이 이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새로운 인간관계의 형성과 비즈니스도 발생한다. 이제는 커피숍이 겉멋을 위한 공간이 아닌 창의적 결과물이 나오는 공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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