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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잇독 Aug 16. 2018

몸이 아침에 반응하는 방식

모닝커피 의존도

어젯밤 논문 마무리를 위해 분석하던 데이터를 마무리 못한 채 늦은 밤 잠자리에 들었다. '늦게 자면 또 늦게 일어날 테니 일찍 일어나서 하자'는 다짐이었다. 잠이 깰 무렵 어제 보던 자료가 반수면 상태에서 나를 괴롭힌 덕에 예상보다 일찍 일어났다. 밥솥이 비었어서 흰쌀 5컵과 현미찹쌀 1컵을 대충 섞고 자동 밥솥 기계에 집어넣었다. 취사가 준비되었다며 여자 목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켤 때마다 신경을 자극하는 목소리가 거슬리지만 볼륨 조절하는 방법을 찾는 수고를 하느니, 잠깐의 정신력으로 이 거슬림만 극복하면 된다고 귀차니즘이 나를 인도한다.


지인이 친히 선사하고 간, 저렴하지만 쓸만한 캡슐커피 머신에 디카프 캡슐 하나를 꽂아 넣는다. 아침엔 고농도 카페인 커피가 제격이지만, 디카프 캡슐밖에 남아있지 않아 다른 옵션이 없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생리학적으로 카페인이 내 몸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용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묵직한 세라믹 컵을 한 손에 들고 커피잔 가장자리에 입술을 살짝 대어 뜨겁고 검은 액체를 호로록 넘기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만족감은 채워진다.


밥을 안쳐놓았기에 한국식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달짝지근한 게 당긴다. 주방 난간에 올려져 있는 세 개 남은 초콜릿 바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부스러기가 땅에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봉지를 뜯어내고 고농도 설탕 덩어리 한입을 베어 문다. '아몬드 버터 초콜릿 뉴트리션 바'라는 긴 이름 뒤편에 영양성분이 표기되어 있지만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컴퓨터를 열고 어제 작업하던 폴더 안에서 파일을 찾으려 하는데 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양이다. 아침에 잠에서 깬 후 2시간은 지나야 뇌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학창 시절 주워들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지금은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억지로 깨운다. 커피와 설탕의 조합이 효과가 있었나 보다. 집중에 성공하고 원하던 데이터로부터 그림을 그려내었다.


마침 ‘맛있는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밥을 저어주세요’는 여자의 목소리가 또 한 번 울린다. 아내가 일어나 부스스한 모습으로 밥을 젓는다. 갓 지은 뜨거운 밥에 어제 먹다 남은 식은 떡볶이를 비벼 넣는다. 커피와 설탕은 머리를 깨우지만 쌀밥에 떡볶이는 입맛과 배를 채운다. 비로소 아침다운 아침을 먹었다. 뒤늦게 아침이 깨워진다.

이런 것만 먹고 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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