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랜 세월을 나와 함께해 준 동네, 우리 동네
초등학교 졸업식날 곧바로 이삿길에 올라 지금도 내가 머무르고 있는 이 동네, 시흥으로 왔다. 경상남도 함안부터 시작해서 전라남도 목포, 경기도 남양주시, 그리고 이곳 경기도 시흥까지. 꽤 머나먼 여정이었던 만큼 마지막 정착지인 이곳 시흥은 나에게 특히나 각별할 수밖에 없다. 중학교 1학년부터 쭉 머물렀으니 약 16년 남짓한 세월을 함께한 동네이니 말이다. 물론 그 중반 어디쯤에는 나의 여러 방황들로 인해 내가 머물지는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꿋꿋이 부재했던 내 몫까지 이 동네를 지키고 있었다.
시화 공업 단지와 반월 공업 단지가 조성된 뒤, 자연스럽게 근로자들의 가족이 머물도록 계획된 동네가 내가 머무르고 있는 시흥시 정왕동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지만, 공업단지의 영향으로 안 좋은 공기를 늘 마시고 있다는 생각과 어쩔 수 없는 치안 문제 때문에 구체적이지는 않은 이사 계획을 이따금 가족들과 나누곤 한다. 공장 근로자로 체류 중인 외국인들의 범죄들로 인해 '안산드레아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안산시 단원구가 바로 옆에 맞닿아 있기도 하고, 조금만 걷다 보면 중국과 베트남을 방불케 하는 거리를 마주하게 된다는 점도 그 이유가 된다. 경찰이라는 조직에 있어본 바, 실제로 시흥(특히 정왕동)과 안산은 경기 남부권 내에서 범죄가 많은 편에 속한다. 머리가 크고 어느 정도 주변 지역들의 분위기에 대해서 파악하고 보니 꽤 험난한 곳에서 자랐었구나 싶긴 하다. 어릴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느 순간 한눈에 들어오는 경험은 인생 속에서 몇 번을 겪어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지금도 내가 다녔던 시흥 중학교와 100미터 거리도 안 되는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때때로 가족들과 외식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학교를 마주하면, '아, 나만 늙었구나.' 하는 가슴 먹먹해지는 감회에 사로잡히곤 한다. 지금껏 살아온 세월의 절반인 16년 가까운 세월은 무심히도 빨리 흘러가버렸다. 그렇다고 돌아가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에 잠기지는 않는다.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기에, 다시 그런 어려움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좀처럼 용기가 생기지 않는 일이다.
고등학교는 형을 따라 안산에 있는 학교에 입학했었다. 당시 집에서 버스를 타고 약 45분 정도를 가야 했으니, 매일 아침저녁 등하굣길은 하나의 모험과도 같았다. 다행히 같은 중학교 출신의 친구들이 있어 대부분의 시간이 외롭지는 않았지만, 가끔 홀로 그 여정을 떠날 때에면 왠지 모를 외로움에 사무치기도 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MP3에 청각을 의지한 채 버스 안에서 참 많은 생각들을 곱씹었다. 막연한 미래, 좀처럼 샘솟지 않는 학습 욕구, 내 생각과는 다르게 '대학'이라는 답만을 제시하는 어른들. 미성년자에 고등학생이었던 나에게는 나의 생각들을 소신껏 펼칠 권리는 고사하고 그 어떤 힘이나 역량조차 존재하지 않았었다. 참 답답하기만 한 나날들을 고등학생 시절 많이 겪었다. 안산과 시흥 사이에는 언제나 고심하던 나의 옛 생각들이 떠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곧바로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했기 때문에, 시흥에 대한 추억들은 한동안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로 채워졌다. 나를 제외한 친한 친구들 모두가 대학에 입학했고, 나름의 청춘을 써 내려갔다. 그러다 종강의 시기가 오면 약속이나 한 듯 우리들의 동네 시흥으로 몰려들어 매일같이 모이던 치킨집에서 각자의 청춘들을 펼쳐 보였다. 나름 안정적인 직장을 핑계 삼아 고민들을 잠깐이나마 멈출 수 있었고, 친구들 역시 대학교 1학년이었기에 고등학생 신분을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함께 찾아온 신선한 생활, 막연한 꿈들을 마음껏 나눌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 행복한 시절은 금방 지나가버리기 말련이다. 하나, 둘 군대에 다녀오고, 대학교 졸업 후 취업 준비에 들어가면서 아른거리는 그 시기를 추억으로만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뒤이어 찾아왔다.
군을 전역한 뒤에는 일본을 가거나, 서울에 있는 대학교 앞 자취방에서 지내거나 했기에 역시 시흥에 머물지는 않았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다시 시흥에 머물게 된 것은 경찰이라는 직업을 얻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고부터였다. 그 뒤로 경찰이 된 뒤에도 범죄가 많아 아무도 지망하지 않는 우리 동네 시흥에 발령받아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퇴직 이후에도 마땅히 다른 머물 곳이 없는 나는 지금도 시흥에 머무르는 중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곳에서 계속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쌓아갈 추억을 만들어가기보다는 이전에 쌓은 추억들을 좀 더 느긋이 즐기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의 학창 시절과 군인 시절, 그리고 경찰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흥에서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