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했던 일
고등학교 졸업 전의 겨울은 나에게 유난히 더 춥고 시린 계절이었다. 이미 수능은 지났고, 주변 친구들은 모두 두 가지 선택지의 기로에 서 있었다. 지금 받은 성적으로 대학을 가느냐, 아니면 재수를 하느냐. 지금의 세태와는 달라 대학을 포기하겠다는 친구는 주변에 단 한 명도 없었다. 대학을 가지 않으면 인생이 단단히 잘못된다는 세뇌를 오랫동안 받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나만이 그 두 선택지가 아닌 다른 선택지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뭔가 새로운, 하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것들. 나의 편협한 시각과 경험으로는 무슨 수를 써도 그 두 가지 선택지 이외의 참신한 무언가는 좀처럼 머릿속에 꽂히지 않았다.
다른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그 두 갈래 길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더 이상 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갈 것을 다짐한 이상, 평범한 길은 나에게 별다른 재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철저히 이방인이 된 듯 살아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기존의 선택지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도, 수능 시험에 응시한 것도 어찌 보면 그런 나 자신의 위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들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나에게는 없는 평범한 길에 대한 열의를 옆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나름의 자극이라도 받고 싶었던 걸까. 나는 내가 앉아있는 시험장 교실에서 철저히 제3자가 되어 그들을 지켜봄과 동시에 이방인이 된 나 자신을 지켜보았다. 대학에 절대 가지 않을 사람이 수능 시험장 교실에 앉아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인생의 모순을 제대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뭔가 그런 엉뚱한 생각들로 수능시험일을 즐길 수 있었다. 열심히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엎드린 아이들을 기억에 새겨놓고 곱씹으면서, 나 역시도 색다르지만 즐길 수 있는 길을 계속해서 고심해 나갔다.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하는 선택은 좋다. 하지만,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런 것을 유지해 나갈 수는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음악을 한다? 당장에 그 정도의 용기는 샘솟지 않았다. 언제 음악으로 빛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만한 재능이 나에게 있는지 나는 지난 시간 동안 확신을 얻지도 못했다. 두 번째로 고려해 본 글쓰기 같은 경우는 언제나 다른 일을 곁들이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글을 명확하게 써야 할지는 다양한 경험들을 쌓은 다음에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생각을 마치니 나에게 남아있는 숙제가 하나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대한민국 남성으로 태어난 이상 반드시 짊어져야만 하는 '국방의 의무'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에게는 두 가지 길이 보였다. 좋아하는 일인 음악과 글쓰기를 아르바이트와 병행해 나가며 기회를 엿보면서 나이가 찰 때까지 입대를 미루다 결국 군대에 가거나, 군대를 먼저 다녀온 다음에 좋아하는 일들에 매진해 나가거나. 확실히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꽤 어린 나이 때부터 소위 말하는 '스타'가 되어 서른 가까이 되어서야 군대에 갔다. 당시에는 음악으로써 빛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젊고 풋풋한 시절에 한정되어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지금은 마냥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에 그런 어린 시기에 제대로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한다면, 군대라는 시기가 중간에 겹쳐 해나가고자 하는 일의 지속성이 끊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올 지 안 올 지는 모르지만 제대로 빛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좇을 것인가, 좋아하는 일의 지속성을 고려해 일찍이 숙제를 마무리한 뒤에 좋아하는 일들에 매진할 것인가.
나는 고심 끝에 군대를 먼저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내 재능이 금방 빛을 발할 정도로 뛰어난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과 당장 꾸준히 해나가며 기회를 엿볼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인 여건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어느 쪽이든 가족의 지원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이미 고등학교 졸업한 날에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그런 쪽으로는 작별을 고하기도 했었다.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는 두 분 노후 준비하면서 편안히 즐기세요."
어차피 대학에 갈 생각도 없었고, 나중에라도 뒤늦게 갈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도 자비(自費)로 해결하면 될 일이다. 지금까지 길러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고, 넉넉한 형편이 아니니 지금부터라도 두 분은 노후를 준비해야만 했다. 앞가림 정도는 충분히 해나갈 수 있는 '성인'이 되지 않았는가. 경제적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내 나름의 인생길도 알아서 닦아 나가야 했다. 당장에 돈도, 능력도 없으니 아무런 생각 없이 해치울 수 있는 군대라는 숙제를 먼저 해결해야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자연스럽게 기운 셈이었다.
가까스로 선택은 했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하나의 문제가 남아있었다. 바로 내가 남들보다 학교 입학을 빨리한 이른바 '빠른 년생'이라는 문제였다. 한 해를 기준으로 나이를 셈하는 생활 나이와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나이를 셈하는 법정 나이 사이의 괴리로 인해, 생일이 1,2월생인 사람들은 그전 해에 태어난 사람들과 같이 학교에 입학을 할 수가 있었다(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94년 2월생으로, 93년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고?
군입대 영장은 만 19세가 되는 성인에게 날아온다. 보통 고등학교 졸업 이후 생일이 다가오는 시점에 통보받게 되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시점에 만 18세였기 때문에 93년생인 친구들보다 1년 늦춰지게 된 셈이었다. 그러니까 당장 영장을 받아서 군에 입대하는 정상적인 루트로는 군입대를 할 수가 없다는 사실. 만 18세가 되는 시점에는 직접 지원하는 방법으로만 군에 입대할 수 있었다. 통상적인 육군 보병으로는 지원할 수가 없었고 육군 수송병, 그리고 공군, 해병대라는 특수한 직열로 지원해야만 했다. 나에게는 운전면허가 없었으니 수송병은 지원할 수 없었다. 공군은 일반 직군들에 비해 군복무 기간이 약간 더 길어서 꺼려졌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해병대.
"남자라면 해병대 가야지요."
아직 중고등학생 시절에 군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장난처럼 아버지에게 건넸던 말이었다. 그래, 넌 해병대 가서 몸 좀 키우고 와라. 아버지도 장난스레 받아줬었다. 그때는 순도 100%의 장난이었는데, 이게 정말 현실이 될 줄이야. 나는 부모님과 별도의 상의 없이 인터넷 창을 켠 뒤 클릭 몇 번으로 순식간에 해병대 지원 신청을 완료했다. 정해진 면접 일자에 간단한 체력 테스트와 면접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나는 면접 일자를 휴대폰 달력 어플에 기록해 두었다.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에 그렇게 나는 해병대 면접을 보러 갔다. 합격한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한 달이 되는 3월 어느 날에 해병 1159기로 입대를 할 수 있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기에, 반드시 합격하겠다는 마음으로 면접장에 들어섰다. 생각해 보니 그것이 내 인생의 첫 번째 면접이었다. 최대한 큰 목소리로, 자신감 있게 대답해야 한다는 네이버 지식인 어느 답변자의 조언을 토대로 면접관의 질문에 긍정적인 목소리를 최대한 높였다. 그러던 중 면접관은 심각하게 내 지원 서류를 검토해 보더니 질문을 툭툭 던지기 시작했다. 자네, 대학 안 가나?... 대학 안 가고 뭐 하려고?... 그래?... 그럼 자네...
"해병대 부사관 지원해 볼 생각 없나?"
부사관? 나는 당시 부사관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면접관은 이런저런 설명들을 이어갔다. 4년 의무 복무고... 원하면 더 할 수 있고... 월급 나오고... 출퇴근도 할 수 있고... 아무튼 요약하자면, 병과 같은 시기에 해당 부사관 기수를 모집 중인데 인원이 미달이 나서 병 면접 때마다 물어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잠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얼떨결에 대답을 내어놓았다.
"네, 해보겠습니다."
해병대 병으로 입대하는 것 역시 당시에 꽤나 경쟁률이 있었다. 2010년에 있었던 연평도 포격전 이후로 젊은이들이 해병대로 많이 몰리는 추세라는 뉴스가 한창 흘러나왔었다. 두세 번의 탈락 이후에 극적으로 합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속해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육군으로 입대한 사람도 있었다. 물론 면접을 보러 가기 전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접했던 사례들에 불과하긴 했지만, 서둘러 군에 입대해 하루라도 빨리 전역하기를 바라는 내 입장에서는 신경 쓰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는 사례들이었다. 면접장에서는 최대한 긍정의 대답만을 뱉어내야지. 그런 생각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지도 모르는 결단을 아주 쉽게 내려버린 셈이었다.
생각보다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면접관은 내 대답을 듣자마자, 부사관 모집 팸플릿을 쥐여주며 나더러 다른 면접을 준비하는 사람들보다 뒤쪽에 가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잠시 뒤, 해당 시간에 온 사람들의 면접이 모두 끝났고 여전히 나는 맨 뒤에 홀로 서 있었다. 아마도 부사관에 지원하겠다고 대답한 사람이 나말고는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병 지원자들과는 별도로 체력 테스트를 치렀고, 입대 전까지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해와야겠다는 격려인지 아쉬움인지 모를 말을 들었다. 입대는 3월 20일이야, 별 문제없으면 합격이니까 그날 포항으로 오면 돼.
면접장을 나서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악마와 거래를 마친 뒤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손에 쥐어진 팸플릿을 펼쳐 보았다. 부사관 335기... 의무 복무 기간 4년... 공무원에 준하는 월급... 뛰어난 능력도, 경험도 없는 지금의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연약한 몸뚱어리뿐이다. 4년이라는 기간은 분명 긴 시간이긴 하지만 대학을 가는 친구들 역시 졸업장을 따내는 데에 4년이라는 시간을 들인다고 생각하면, 대학 대신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남들은 대학을 졸업할 때, 나는 해병대 부사관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오는 것이다. 착실히만 해낸다면, 꽤 큰돈도 만들어서 나올 수 있고 군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재미있는 일을 더 해나갈 수도 있다. 이거, 나쁘지 않을지도?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대학 붙었어."
"그래, 생각 잘했다. 어느 대학??"
"해병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