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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필 Nov 18. 2024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관광이 시작된다

매일매일이 여행이었던 교토 유명 관광지에서의 삶


교토에서의 삶은 오사카와는 대비되게 전혀 치열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간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기간이었으나, 오사카에서 피땀 흘려 자본을 꽤나 비축해 뒀었기에 보다 여유로움을 가지고 일을 구할 수가 있었다. 셰어 하우스의 모두가 저마다의 직장으로 떠난 뒤에도, 홀로 집에 남아 여유롭게 식사를 때에 맞춰 챙겨 먹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일본 현지에서 본방으로 챙겨보기도 하고, 일본어로 된 한 권의 책을 읽어나가는 목적도 소박하게 이루어 나갔다. 노장자가 이야기했던 유유자적의 삶은 지금 나의 생활을 두고 붙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떠가던 나날들이었다. 


가끔 아르바이트 책자를 뒤적거리다, 혹은 독서에 지쳤을 때에는 대충 두꺼운 점퍼를 하나 걸치고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이라면 동네를 한 바퀴 빙-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했고, 점심에 가까운 오전 시간이나 늦은 오후에는 마을 주변 관광 명소들을 산책 삼아 다녀오기도 했다. 나는 아라시야마의 관광 명소 가운데서도 집과도 10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대나무 숲인 치쿠린을 특히나 좋아했었다. 바람이 일렁일 때에는 대나무들끼리 사라락하며 부딪히는 소리가 좋았고, 바람 한점 없이 햇빛이 내리쬘 때에는 높디높게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대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느낌을 즐겼다. 대나무가 뿜어내는 시원한 산소를 마시면서 거닐 때 어쩌다 지나치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은근한 도취감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현관문만 열고 나오면 맛볼 수 있는 풍경인데, 다들 먼 길을 고생해서 와서 이런 관광지들을 둘러보고 있구나.


함께 생활하는 유키노 누나가 일을 쉬는 날에는 버스를 타고 함께 나가 관광지들을 둘러보기도 했었다. 일본에는, 특히나 교토에는 유명한 절들이 잔뜩 몰려있었고, 아마 교토에 있는 절들을 모두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정말 열심히 돌아다녔다. 유명한 청수사는 물론이고, 금각사를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절 건물들을 눈에 담아 갔다.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절 건물들이 대부분 다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금은 웬만한 절 건물들을 구경해도 감탄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부작용을 남겨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절 건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은근히 그 순간만큼은 스스로 부처라도 된 듯 자비심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참 좋아한다. 


교토에는 절만큼이나 신사도 참 많았다. 각종 신사와 절들이 어우러져 있는 옛 수도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어느 거리든 넘쳐났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참 다양했지만, 어쩐지 오사카에서의 북적거림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오사카 도톤보리 한복판에 서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8할이 중국인이었지만, 교토 거리의 한복판에서는 5할 정도의 각양각색의 외국인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모두 일본 사람들이었다. 오사카에 너무 찌들었던 탓인지, 그저 지나다닐 뿐인 일본 사람들마저 좋았다. 아마도,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교토는 유명한 관광지인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경주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내 인생에 있어서 '여행'이라는 단어와 가장 맞닿아있었던 시기가 바로 이 교토에서의 생활이었다. 일본 외에도 훗날 인도 여행을 감행하긴 했었으나,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다. 매일매일 어떤 식으로 살아나가야 할지 함께 동행한 친구와 서바이벌을 즐기는 느낌이었달까. 나에게 여행이라는 단어는 교토에서의 나날들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문을 열고, 낯선 사람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각종 관광지들을 별 어려움 없이 쏘다니며 즐겼던 나날들. 꽤나 치열하게 살아온 내 인생의 날들 가운데 순수한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어쩌면 오사카에서 겪었던 고생의 보상, 혹은 선물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나날들. 좀처럼 구해지지 않는 아르바이트에 고생깨나 하긴 했었지만, 그토록 간절한 마음까지는 담지 않았었기에 여유로운 날들을 온전히 만끽해 나갈 수 있었다. 자연이면 자연, 건축물이면 건축물, 역사면 역사, 유흥이면 유흥.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있는 교토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나날들을 보내면서 나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문만 열고 나가면 관광지들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일상을 살면서, 사실 우리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런 일상을 만들어내는 것쯤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광지에서 살았기 때문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나는 매일을 여행같이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런 환경들이라 할지라도 반복할수록 역시나 질리기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같이 현관문을 열 때마다 마음을 새로 고쳐먹었다. 누군가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오는 관광지에 나는 여행을 나온 셈이니 오늘도 새로운 마음으로 즐겨보자고. 그렇게 생각하면, 매일같이 산책을 했던 치쿠린이나, 동네 산책 코스도 나에게는 언제나 즐거운 여행되었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루하고 반복적이기만 한 일상들 역시도 얼마든지 우리 나름대로의 여행으로 가꾸어 나갈 수가 있다. 딱히 유명한 관광지를 주거지로 두지 않아도, 매일매일을 여행이라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열고 헤쳐나가면, 얼마든지 모든 것들을 모험이자 관광으로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유명 관광지는 다른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라는 여행 속에서 어떤 관광지들을 멋진 추억으로 남겨둘지는 순전히 본인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2017년 2월 어느 날, 아라시야마 치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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