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이 여행이었던 교토 유명 관광지에서의 삶
교토에서의 삶은 오사카와는 극명하게 대비될 정도로 치열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기간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기간이었으나, 오사카에서 피땀 흘려가며 자본을 꽤나 비축해 뒀었기에 보다 여유로움을 가지고 구직활동을 해나갈 수가 있었다. 셰어 하우스의 모두가 저마다의 직장으로 떠난 뒤에도, 홀로 집에 남아 여유롭게 식사를 때에 맞춰 챙겨 먹고,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일본 현지에서 본방으로 챙겨보기도 하고, 일본어로 된 한 권의 책을 읽어나가는 소박한 목적도 이루어 나갔다. 노자, 장자가 이야기했던 유유자적의 삶은 교토에서의 내 생활을 두고 붙일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떠가던 나날들이었다.
가끔 아르바이트 책자를 뒤적거리는 일에 싫증을 느끼거나 독서에 지쳤을 때면 두꺼운 점퍼 하나를 대충 걸치고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런 생각 없이 동네를 한 바퀴 빙-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공기와 한적한 분위기에 어느 정도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했다. 나는 아라시야마의 관광 명소 가운데서도 집에서부터 걸었을 때 10분 정도의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대나무 숲인 치쿠린을 특히나 좋아했었다. 바람이 일렁일 때에는 대나무들끼리 사라락하며 부딪히는 소리가 좋았고, 바람 한점 없이 햇빛이 내리쬘 때에는 높디높게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대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대나무가 뿜어내는 시원한 산소를 한가득 마시면서 거닐 때, 지나치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은근한 도취감에 빠지기도 했다.
나는 현관문만 열고 나오면 맛볼 수 있는 풍경인데, 다들 먼 길을 고생하여 날아와 이곳을 둘러보고 있구나.
함께 생활하는 유키노 누나가 일을 쉬는 날에는 버스를 타고 함께 나가 평소에는 둘러보지 못하는 교토의 관광지들을 둘러보기도 했었다. 일본에는, 특히나 교토에는 유명한 절들이 잔뜩 몰려있었고, 아마 교토에 있는 절들을 모두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틈만 나면 열심히 돌아다녔더랬다. 유명한 청수사는 물론이고, 금각사를 비롯해 셀 수 없이 많은 절 건물들을 눈에 담아 갔다고. 하도 많이 돌아다녔다 보니 절 건물들이 대부분 다 비슷하게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려 지금은 웬만한 절 건물들을 구경해도 감탄이 잘 나오지 않는 부작용을 남겨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절 건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면, 그 순간만큼 스스로 부처라도 된 듯 은근히 자비심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을 받곤 한다. 삶 속에서 열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절들을 섭렵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야 하는지도 모른다.
교토에는 절만큼이나 신사도 참 많았다. 각종 신사와 절들이 어우러져 있는 옛 수도는 볼거리 즐길 거리가 어느 곳이든 넘쳐났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각양각색이었지만, 어쩐지 오사카에서의 시끌벅적함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오사카 도톤보리 한복판에 서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8할이 중국인이었지만(나머지 2할 중에 1할은 한국인), 교토 거리의 한복판에는 5할 정도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외국인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모두 일본 사람들이었다고. 북적거리는 분위기 속에서도 교토는 일본적인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오사카에 너무 찌들었던 탓이었는지, 그저 지나다닐 뿐인 일본 사람들마저 좋았더랬다. 아마도,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도 교토는 일본의 옛 수도로서 유명한 관광지인 모양이었다. 우리나라로 비교하자면, 경주와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내 인생에 있어서 '여행'이라는 단어와 가장 맞닿아있었던 때가 바로 교토에서 머무를 때였다. 일본 외에도 훗날 인도 여행을 감행하긴 했었으나,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모험에 가까운 것이었기에 여행의 범주에는 넣지 않을 생각이다. 인도에서의 나날들은, 매일매일 눈을 뜨고부터 어떤 식으로 살아나가야 할지 함께 동행한 친구와 의논해 가며 서바이벌을 즐기는 느낌이었달까. 나에게 여행이라는 단어는 교토에서의 나날들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문을 열고, 낯선 사람들 사이를 자유로이 거닐며 관광지들을 별 어려움 없이 즐겼던 나날들. 꽤나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내 인생의 날들 가운데 순수하게 평안한 마음의 여유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날들이었다. 오사카에서 겪었던 고생의 보상, 혹은 전리품을 한꺼번에 몰아 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고.
좋은 사람들과 좋은 나날들, 인생에 그보다 더 달콤한 것이 있을까. 좀처럼 구해지지 않는 아르바이트로 인해 고생깨나 하긴 했었지만, 그토록 간절한 마음까지는 담지 않았었기에 여유로운 날들을 만끽해 나가는 데에 전혀 장해가 되지는 않았다. 자연이면 자연, 건축물이면 건축물, 역사면 역사, 유흥이면 유흥(건전한 의미의). 모든 것들이 한데 모여있는 교토를,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종합선물세트와 같은 나날들을 보내면서 나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관광지에서 지냈기 때문에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나는 매일을 여행같이 살아갈 수 있었지만, 그런 나날이라 할지라도 반복할수록 역시나 일상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그 당시 교토에서의 설렜던 날들은 어느샌가 나에게 당연하고도 지루한 일상으로 자리 잡아갔다. 하지만, 내가 일상으로 정의 내렸던 그 나날들에 많은 사람들은 발품을 팔고 시간을 들여가며 '여행'이라는 단어를 애써 붙이면서까지 힘들게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일상과 여행은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뒤집어버릴 수도 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자명해졌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현관문을 열 때마다 마음을 새로 고쳐먹었다. 누군가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오는 관광지에 나는 여행을 나온 셈이니 오늘도 새로운 마음으로 그 여행을 즐겨보자고. 그렇게 생각하니 매일같이 산책을 했던, 단순한 일상일 수 있었던 치쿠린이나, 동네 산책 코스도 나에게는 언제나 즐거운 여행의 순간이 되어주었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루하고 반복적이기만 한 일상들 역시도 얼마든지 우리 나름대로의 여행으로 가꾸어 나갈 수가 있다는 생각이다. 딱히 유명한 관광지를 주거지로 두지 않아도, 매일매일을 여행이라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열고 헤쳐나가면, 얼마든지 모든 것들을 모험이자 관광으로도 느낄 수가 있는 셈이다. 유명 관광지는 다른 사람들이 다녀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든다. 인생이라는 여행 속에서 어떤 관광지들을 멋진 추억으로 남겨둘지는 순전히 본인의 몫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