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와 연애하는 건 불법이었다. 내가 그에게 고백하는 것도 불법이었다. 대충,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그의 클라이언트였으니까. 내 업계든 그의 업계든 클라이언트와 사적인 관계를 맺는 건 금기다. 웬만한 전문직역은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예컨대, 하버드에는 교수와 학생의 “consensual romantic relationship”(자발적 동의하에 연애)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고 이걸 위반한 교수는 여차하면 잘라버릴 수도 있다. 미국변호사 윤리시험에는 이런 문제도 나온다.
질문) 당신은 이혼소송 담당 변호사인데, 의뢰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의뢰인과 자도 되는가?
a. 의뢰인도 당신을 사랑한다면, 된다.
b. 위력 행사가 없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된다.
c. 의뢰인이 상담을 오기 이전에 이미 이혼을 결심한 상태였다면, 된다.
d. 안 돼, 그냥 안 돼, 영원히 안 돼.
정답은 "d"다. 문제를 비틀어 내서 '수임계약이 종료된 지 5년이 지났는데 사적인 자리에서 다시 만나 직업적 맥락과 전혀 상관없이 새롭게 인연을 어쩌고 저쩌고...' 하는 단서가 있다면 또 모르겠다. 아무튼 원칙적으로 그는 나를 절대 받아주면 안 되는데, 그 일차적인 이유는 직업상의 관계에서 우리가 전혀 평등하지가 않고 "권력 비대칭, 정보 비대칭"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가 "권력" - 아니면 적어도 ‘권위’(authority) - 을 가지고 있고, 나는 취약한 입장으로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고 그에게 휘둘리거나 결과적으로 피해를 입기가 쉽기 때문에 제도와 윤리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반화인가. (물론 나는 그에 관한 한 썩 합리적인 판단을 못 하고 있지만 그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사이의 권력 비대칭 때문이지 그의 직업에 따른 비대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니, 일반적으로 봐도 말이 안 된다. 이 관계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한 건 오직 그였다. 업무상으로도, 그 맥락에서 나는 아무 의무가 없고 뭔가를 해내야 하는 쪽은 그였다. 사적으로도, 만일 우리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고 그것으로 인해 무슨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곤란해지는 건 그일 뿐 나는 잃을 게 하나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무서울 정도로 불균형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더 조심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그가 내 감정에 같은 온도로 반응했더라도 내가 멈췄을지도 모른다. 그의 안전을 위해서.
그는 단 한 번, 사람들 속에서 나를 오래 바라본 적이 있었다. 나는 고작 그것만으로도 누가 어떤 기류를 눈치채면 어쩌나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광화문 전광판에 걸어도 상관없어, 하지만 ‘네가’ 쌓아온 것들에 아주 작은 균열이라도 생기는 건 싫어. 그 눈빛 속에는 뭐가 있었을까. 왜 내가 너를 보는 눈으로 네가 나를 보고 있었나. 왜 내가 불편한 기색을 보여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그렇게 한참 동안 멈춰 있었나. 내가 다 설명했기 때문에 이제 너는 자신이 있었나. 내 존엄을 갈아서 네 자존의 재료로 쓰라고, 아니 재료씩이나 되지도 못할 테고, 우유거품 위의 계피가루 정도로 장식하라고 내어줬으니까, 더 이상 내가 어렵지 않았나. 나는 네가 나를 어려워하는 게 내내 좀, 재밌었는데. 그래도 네가 남들처럼 네 몫의 정당한 오만을 가져갔으면 해서 한 번은 꼭 져주고 싶었는데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 말 그대로 ‘눈길 한 번’에 대체 몇 개의 문장을 쓰고 있는 건가, 네가 누군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웃기지도 않네. 아니, 그래도 좋았어.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인데도 어떻게든 말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어. 이제는 내가 너를 볼 때 그 의미를 네가 아는 세계라는 게, 맥락이 공유되는 세계라는 게, 덜 외로웠어. 이상한 비유지만 꼭, 탈골된 우주를 제자리에 끼워넣는 느낌이랄까. 너를 보고 있던 오래된 시간과 흩어진 공간의 어긋난 부분들이 모두 맞춰졌어. 비틀리지 않은 우주에서는 숨 쉬기가 좀 더 편해. 그렇다고 해도, 내가 슬퍼야 할 순간에 왜 네가 슬픈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나. 언젠가 누군가 똑같은 눈빛으로 한참을 움직이지 않고 나를 보았을 때 그건 자기 불행에 내가 들어오면 좀 더 견디기 쉬울 것 같다는 뜻이었는데. 내가 그런 착각을 하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려고 나를 그렇게 봤나. 너는 불행하다고 말했고 그날 너는 정말 그래보였다. 그것 또한 그저 수사적인 말일 뿐인데 왜 마음에 걸렸을까. 절망하지 말라고 네가 예쁘게 접어서 함께 넣어준 종이학 같은 다른 말들이 전부 뒤로 밀려나고 그 말만 몇 배의 크기로 확장되었다. 아니, 네가 왜, 실패한 건 난데. 그러지마, 내 행운을 가져가, 다 너에게 줄게, 별로 많이 남지 않은 것 같기는 해도.
그건 말 없이 약속된 작별의 순간이었고 나는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야 했지만 약속을 못 지켰다. 죽을 것 같아서. - 내가 먼저 발길을 끊는 건 나 도저히 못하겠어. - 그는 다음에도 업무일정을 취소하지 않고 예정대로 나타난 나에게 “… 오셨네요”, 라고 인사했다.
오셨네요(안 올 줄 알았는데). 오셨네요(그러고도). 오셨네요(기어이).
정신나간 신비주의자가 아닌 다음에야, 타인의 눈빛에서 단어를 읽는다는 건 십중팔구 착각이다. 그가 윤리나 평판 같은 것 때문에 마음을 잘라낸 게 아니라 애당초 잘라내고 말고 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걸 잘 안다.
"내가 유혹에 강한 사람 같아? 유혹이 없었던 거야. 그러니까 모르는 거야. 내가 유혹에 강한 인간인지, 아닌지."
- 박해영 作, 드라마 <나의 아저씨>
그러니까, 이 글의 제목에는 어폐가 있다. 그가 내 손을 잡지 않은 것을 두고 윤리적인 사람이라고 미화할 일이 아니다. 그냥 그에게는, 고백이 없었던 거야, 유효한 고백이. 말하자면 이런 상황과 비슷하다 - 어떤 멍청한 선배가 인생조언이랍시고 뭐라뭐라 지껄이고 지나갔다고 해보자, 불과 십 분 뒤에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잖아 - 조언이 없었으니까, 조언이라고 부를 만한 가치가 있는 유효한 조언이. 그에게는 나라는 인간이 유효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누가 누구에게 유효한가는 그냥, 해가 뜨고 별이 흐르는 일처럼 누구의 탓도 아닌 그저 우연한 자연적 조건일 뿐이다.
인습은 선악이라든가 그 밖의 내재적 정언명령법을 고려하지 않으며 ... 잘못 해석된 우연을 바탕으로 성립된 모든 미신적 관례는 인습을 강요하고 여기에 따르는 것이 윤리적인 것이다. - 니체
그를 알게 되고 난 다음 해, 나는 그의 세계에 속하는 어딘가에 어떤 역할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보고 싶어서도 아니고 그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일종의 설욕을 위해(?) 그곳에서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가 사는 세계가 너무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가려고 구성원 명단을 보니 그도 거기 있었을 뿐이다. 있다고 하니 더 가고 싶어졌을 뿐이다.
그는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에 나를 보자마자 그건 왜 하는 거냐고, 네 번쯤 물었다. 나는 정답을 알려주지도 않고 그럴싸하게 지어낸 말로 해명하지도 않았다. 그저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게 있어서’라고,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 솔직함이란 대체 무엇인가? 언어를 전유하고서 진실에 들어맞지만 상대로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조합들을 던져놓고 ‘난 솔직했어’라니, 어불성설이다. - 누가 어딜 온다고? 그가 이 이해할 수 없는 전개를 조금 불안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불안 속에 버려두었다.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언어를 전유했다니? 언어를 다 잃어버린 꼴이었겠지. 그의 앞에서 나는 가장 기초적인 시소러스도 없는 사람처럼, 마음의 바닥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단어를 무해한 단어로 어떻게 대체할지 알지 못했다.
그날의 기억. - 회의실에서 그가 앉아있는 자리만 반짝반짝 빛난다. 비유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다른 색채. 인간의 시각에 그런 쓰잘 데 없는 기능이 있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그를 곤란하게 하지 않으려고 초면인 척한다. 그러나 내가 인사할 때 그가 너무나도 어쩔 줄을 몰라 해서 오히려 더 수상한 관계처럼 보이고 만다. 회의가 끝나고 그가 문 밖에 있다. 일에 대해 묻는다. 복도의 큰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그의 발치에 네모난 빛조각을 만든다. 그의 옷 끝자락이 환하게 물든다. 봄의 첫 햇빛이 환하게 드는 복도에 나란히 서있던 기억. 나는 그 한 장면을 위해서 뭐든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알고 있어? 그 회의록에, 공지 메일에, 너와 나의 이름이 같은 칸, 같은 줄에 적혀 있는 걸 보는 게, 내게는 비밀스러운 즐거움이었어. 여권 없이 국경을 넘다가 목이 잘린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너를 볼 수 있다면. 그렇게 너의 세계에 발끝을 걸치고 휘파람을 불면 멀리서 불어오는 새 계절의 바람이 좋았어. 어디든 춤추듯 갈 수 있을 것 같았어. 너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았어. 나는 거기서 모르던 단어를 배우고 모르던 세계를 엿보고, 그렇게 발견한 것들을 내 분야에 끌어와 어떤 담론들을 조금씩 건드려보기도 했지. 내가 너를 사랑한 일이 너무 허무하지는 않게, 어떤 실체라도 남도록, 나의 감정과잉과 무모함이 세상에 유용한 생각 한 줄로 번역되도록. 그걸 쓸쓸한 일이라고 부를 거야? 아니면 일종의 광기라고 할 건가? 그래도 조금은 아름답고 신기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주면 안 될까. 아마 네가 은퇴한 뒤에도 나는 계속 그런 논문들을 쓰고 있을 테고, 그럼 너의 영향력이, 다른 분야에서까지도, 무언가를 아주 천천히 바꿔나가고 있다는 걸 알아봐줘. 그러다 시간이 남으면, 그게 내가 여전히 너를 기억한다는 뜻이라는 것도 잠깐 생각해줘.
사랑에도 그침이 있다지. 페닐에틸아민 따위가 3년이면 소진된다고. 근데 나는 그 시간이 다 가도록 영 소진이 안 되길래, 어떻게 납득할까 하다가 이런 궤변을 생각해본다. 너와 나는 연속적인 인간관계 없이 분절된 장면들로 이루어진 사이니까 나는 너를 어쩌다 한 번씩 보는 하루들을 모아 그 3년을 다 채워야 하는 게 아닌지. 그럼 너를 1095번을 봐야 이 마음이 끝나겠구나. 너무 끔찍한데. 나는 너를 천 번이나 볼 기회가 없는데. 그러면 영원인가. 정말 끔찍하군. 내세 따위는 믿어본 적도 없고 영생 따위는 저주일 거라고 생각하는, 스물보다 마흔에 가까운 인간이 영원 같은 소리를 하고 있네.
내 이름을 너의 괄호 안에 적어둘게. 너는 얼마든지 나를 건너뛰어도 돼. 하지만 언제든지 돌아와서 다시 읽어도 돼. 글의 흐름이 끊기지 않을 거야. 아무도 모를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는 건, 그가 결코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가 윤리적이어서든, 내가 유효하지 않아서든. 역설적이지만 그가 절대 오지 않을 사람이라서 내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윤리든 인습이든,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가진 것은 배덕 없이 절망만 넘쳐나는 아주 딱 죽고 싶게 깨끗한 사랑일 테니.
- 마르그리트 뒤라스, <물질적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