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에 해가 뜬다고 해서 6시 반에 부랴부랴 나갔는데,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해변에 삼삼오오 모여 수영을 하고 춤을 추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달렸다. 시원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달리는 기분은 정말 좋았다. 또 걸었다. 야자수가 흔들리고 멀리 파도가 부서지는 길을 걸었다. 그리고 달렸다.
조금이라도 달리니 기분이 좋아지네, 생각하며 공짜 커피를 한잔 받아서 숙소로 돌아와 아이들 밥을 챙겼다.
아침은 항상 누룽지와 김, 그리고 각종 남은 음식들이다(팬케이크와 할라피뇨). 첫날 사온 야채와 과일도 잔뜩 차려놓고 먹는다.
오전 내내 수영이다. 처음으로 미끄럼틀을 탔는데 이런… 너무 재미있다!
처음에 어떨지 몰라 무방비로 탔다가 물을 진탕 먹고 미역 줄거리가 된 후에는, 소리를 지르면서 타고 타잔 소리 내면서 타고 사랑고백을 하면서도 탔다.
그리고 미끄럼틀 100번 탔다는 한국 어린이들을 만나서 잠시 이야기도 나눴다.
오전 수영이 끝나고 월마트에 가서 맥도날드도 먹고 장도 보기로 했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은 후 맥너겟 12개를 추가로 시켜 먹고 장을 본다. 다행히 적당한 크기의 김치가 있어서 김치도 사고 육개장 사발면, 햇반도 사서 온다. 토마토와 과일도 필수다.
그리고 드디어 우쿨렐레 타임! 엄마와 아빠는 비장한 각오로 우쿨렐레를 들고 숙소를 나섰다.
며칠간 러닝을 하며 물색한 장소는 야자수 옆에 바위가 있는 해변이다. 파도 앞에 앉아 우쿨렐레를 들었다.
10년 전, 엄마는 아빠에게 카메라를 맡기고 땡볕 아래에서 over the rainbow를 10번도 넘게 부르느라 얼굴이 빨갛게 익었었다지. 오늘도 카메라를 든 아빠와 엄마는 성공적인 촬영을 위해 결의를 다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파도와 바람소리에 묻혀 노랫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틀려도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불러본다. 큰 바위에 앉아 파도소리를 들으며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10년 전의 나는 10년 후의 내가 어떨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10년 전의 남편과 나는 더 젊었고, 나와 우리가 삶의 전부였다. 그 사이 2명이던 가족이 4명이 되었고 많은 일이 우리를 변화시켰다. 부정적인 변화보다는 긍정적으로 흘러 왔다고 믿는다. 나는 아이를 키우며 더 둥글어졌고, 내가 알지 못하던 세상을 알게 되었고, 단단해졌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린이들과 함께이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으니, 인생은 정말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남편과 숙소로 돌아왔다. 별로 한 것도 없지만, 큰 일을 해낸 것 같은 느낌. 또 언젠가 하와이에 오게 된다면 그때도 우쿨렐레를 가져와서 또 같은 노래를 불러야겠다.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돌아오니 초5는 이미 혼자 수영하고 있어서, 숙소에서 색칠놀이를 하고 있는 둘째를 데리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할머니가 잠시 나오셔서 쉐이브 아이스를 사주시고는 산책하러 가셨다. 할머니가 떠나시고 엄마와 아빠는 맥주와 감튀를 먹었다. 아… 이 맛은 천국의 맛이다…!
한참 놀다가 해가 질 때쯤 온 가족이 수건을 두르고 해변으로 갔다. 살짝 추웠지만 행복했다. 그저 열심히 먹고 물놀이하고 먹고 물놀이하는 그런 하루가 우리 인생에 얼마나 있을까. 온몸을 다 써서 충실하게 하루를 놀아 재낀 날.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저녁은 컵라면, 김치, 그리고 샐러드
매일 아침저녁으로 컵라면만 먹어도 행복한,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빨래도 돌리고 밥도 해 먹으니 여기가 꼭 우리 집 같네 생각했다.
내일 아침도 일찍 수영장에 가기로 했다.
이 숙소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오전을 알차게 보내자고 어린이들과 약속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