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하는 길에 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사람들이 간단한 아침을 먹는 것을 보았다며 우리도 가자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일찍부터 낭만 한스푼 기대하며 누룽지와 삶은 계란(?)을 싸들고 해변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남편이 얘기한 스폿은 나오지 않고, 잠이 덜 깬 초5는 꼭 밥을 밖에서 먹어야 하냐며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아... 우리는 어른 남자의 달리기와 어린이 보폭의 차이를 생각 못했던 것이다. 아이들을 달래며 20분 넘게 걸어서 겨우 도착했는데, 밤새 내린 비에 잔디는 축축하고 돗자리에는 개미들이 마구 출몰하기 시작했다.
개미를 보고 소리 지르는 어린이들을 진정시키며 아침을 먹으려고 누룽지 통을 열었는데 설상가상 누룽지는 퉁퉁 불어 터져서 국물이 하나도 없었다. 해맑은 둘째가 “엄마 이건 돌죽이에요?” 라며 먹기 시작한다. 첫째가 치워도 치워도 계속 들어오는 개미들을 보더니 자기는 여기서 못먹겠다기에 그냥 숙소로 돌아가라고 했고, 급기야 진짜 돌아간다. 길은 알고 가는 건지 뭔지… 뒤늦게 아빠가 따라가고 엄마, 돌죽을먹는 둘째, 그리고 할머니는 밥을 먹고 정리한 뒤 따라갔다. 해변은 점점 밝아지고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데 우리 가족만 가정사가 슬퍼지고 있는 아침… 게다가 나는 아들과 실랑이를 하느라 벌써 진이 다 빠졌다.
아... 이게 아닌데...
이래저래 잘 매듭짓고(?) 짐을 싸서 다이아몬드헤드로 갔다. 다시 밝아진 가족들은 손에 손잡고 행복하게 다이아몬드 헤드 트래킹 길을 올라가는데
이럴 수가… 해가 급작스럽게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줄곧 잘 걷던 둘쨰는 다리가 아프고 덥다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반도 못 갔는데 더는 못 올라가겠다고 버틴다. 초코로 달래도 보고, 아빠가 조금 안아도 주었지만 설득에 실패, 무거운 딸을 더 이상 안을 수 없었던 부모는 여기서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엄마는 뭐… 10년 전에 와본 것 같기도 하고… 해서 엄마와 딸은 그렇게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그곳 벤치에 앉아서 나는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는가 생각을 잠시 해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드러누워버렸다. 매정하게 뜨겁던 햇볕도 나무 그늘 밑에서 바라보니 아름답기만 하다. 멀리 꼭짓점끼리 이어진 다이아몬드 헤드 정상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조금 누워있다가 돌멩이랑 열매를 줍던 둘째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기 시작했다. 그냥 내가 계속 술래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였는데, 멀리서 남은 가족들이 손을 흔든다. 내 든든한 지원군 아들~ 이 와서 셋이 같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다가 잡기놀이를 하다가 신나게 뛰어다녔다. 푸른 초원 위를 뛰는 말 같은 어린이들.
주차장까지 달려오다가 턱에 걸려 넘어져 결국은 울음으로 끝난 마무리였다. 참으로 스펙터클한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12시!
점심은 숙소 근처로 와서 에그 앤 띵스에 갔다. 혈당 스파이크 직행버스로 올라탈 것 같은 메뉴들 사이에서 그나마 점잖은 메뉴들을 고르고 골랐다. 오리지널 팬케이크 많이, 오믈렛, 그리고 브리또를 시켜서 먹는데 엄청난 양에 아이들은 진작에 나가떨어지고, 할머니는 느끼하다며 할라피뇨를 추가하셨다. 남은 음식을 담아서 나오는데 할라피뇨가 2불이라는 걸 계산서를 보고 깨달은 할머니는 도둑들이라며 할라피뇨를 챙겨서 집에 가는 날까지 야무지게 드셨다지.
그리고는 바로 수영하러 가는 길에 더피와 미니미우스도 만났다. 귀여워...
그렇게 한참을 놀다가 밤에 같이 코스트코에 또 다녀왔다. 둘째가 열심히 쓴 쇼핑리스트를 들고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길에 잊지 못할 하와이의 밤을 만들어 준 우쿨렐레 듀오의 연주를 들었다. 밤하늘 가득한 별과 파도소리와 우쿨렐레. 나도 내일은 우쿨렐레를 꺼내봐야지 다짐하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