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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나이트 출근 과정

 오후 두시까지는 이불 안에서 안 나오다가 세시부터 자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잠긴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그렇게 뒤척이다 보면 오후 네시. 병원에서 벌어질 일을 상상한다. 항상 그랬듯 동시에 여러가지 일을 해야겠지. 라인 잡다가 할머니가 움직여서 fail하겠지. 나는 애꿎은 할머니에게 화를 내겠지. 할머니는 분한 마음에 내 손등을 찰싹찰싹 때리겠지. 아직 라인 잡을 사람 몇명 더 있는데.. 정신이 아득해져오겠지. 스테이블하다 갑자기 어레스트 환자 오는 건 아니겠지. 하루종일 일만 해야하는 건 아니겠지. 오만가지 극단적인 생각만 하다가오후 다섯시.

 아빠 방에 티비 소리가 들려서 본능적으로 달려간다. 쇼트트랙 경기를한다. 관중석의 사람들은 행복해보이네. 나는 살면서 언제쯤 저렇게 경기를 볼까? 내 주제에 볼 수 있기나 할까. 나는 이렇게 불행한데. 열등감에 잠긴 채로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간다.

 그렇게 오후 여섯시가 되면 아홉시 십분에 알람을 설정한다. 쑤시는 허리에 손을 얹고 기어가서 불을 끈다. 눈을 감는데 잠이 안 온다. 양 한마리, 두마리를 그려도 달라질 게 없다. 나는 이렇게 병원의 노예로 살다 삶을 마감하는것일까? 한순간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눈을 비비고 시계를 보니 오후 여섯시 사십분. 마음이 답답하다. 이러다가 한숨도 못자거 일을 해야 한다. 하지만 눈은 쉽사리 감기지 않는다. 그러다가 체념한다. 이왕 시간을 보내는 김에 건설적으로 소비하자!

 유튜브를 뒤적거린다. 김미경 선생님의 강연을 본다. 남편 잘 만나서 편하게 사는 사람 부러워하지 마라는 말이 나온다. 인간은 기쁨과 슬픔이 추가 움직이듯 왔다갔다 하므로, 남의 기쁜 면만 보고 열등감을 가지지 마라는 내용이었다. 선생님, 저는 하루하루가 슬프고 괴롭고 피곤한데 어찌할까요..

 젠장, 벌써 아홉시다. 잠 자기 글렀다. 밥은 커녕 물도 안 넘어간다. 그래도 뭔가를 먹어야 밤에 배가 덜 고프다. 바쁘면 야식도 못 먹는다. 사실 이 일을 하고 나서 밥을 제대로 먹는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그런 편이 차라리 마음편하다. 주방에 가니 김치찌개가 있다. 밥이랑 말아서 호로록 마셨다. 나는 밥을 마시는 습관이 생겼다. 이것도 직업병이겠지. 맛을 느낀다기보다는 배를 채우는 게 목적이다. 방심하던 틈에 알람이 울린다. 픽- 하고 웃는다. 어차피 잠도 못자는데 뭐가 불안하다고 알람까지 설정했을까. 내 자신이 그저 웃기다.

 밥을 다 먹으니 아홉시 이십분. 양치를 하고 소녀시대의 힘내 라는 음악을 듣는다. 이렇게라도 꿀꿀한 기분을 정화하고 싶은데 이 노래를 들어도 힘이 안나는 건 마찬가지다. 소녀시대는 이렇게 노래를 불러서 부와 명예를 다 누리는데 나는 이게 뭐지. 또 이런 생각만 한다. 내가 잘 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젠장. 벌써 아홉시 반이다. 방구석에 널브러져 있는 후드티와 바지를 꺼내입는다. 흰 양말을 신고 롱패딩을 입으면 출근 준비 끝이다. 아홉시 삼십칠분. 360 버스를 타고 병원으로 간다. 보통 열에 아홉은 이렇게 출근한다. 잠을 전혀 못 자거나, 뒤척이다 두시간 정도 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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