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ologue

연휴 마지막 날. 젊은 여자가 찾아왔다. 아, 잘못 말했다. 찾아왔다는 말은 환자가 능동적으로 행동했다는 뜻이 되므로 정정하겠다. 찾아온 것이 아니라 환자 상태를 본 의료진이 op(operation, 수술) 후 중환자실까지 이송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환자는 응급실에 왔을 때부터 매우 처참한 상태였다고 한다. 내가 그녀를 처음 보는 이 모습은 내원 이틀 후의 모습이다. 당시의 모습보다는 정리된 것이겠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해결된다는 말은 최소 중환자실에서 해당되는 명제는 아니다.


내가 일하는 이 곳은, 병동에서 cardiac arrest(심장마비)가 나면 바로 이송되어 환자가 expire(사망) 할 때까지 끝을 본다. 결론은, 환자 상태가 안 좋아지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라는 것이다. 기존 환자 중 호전되어 병동에 가서 지내다가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다시 여기로 오는 환자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의료진이 최선의 처치를 하며 사투를 벌였지만 환자가 따라주지 못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여하튼 아무런 외상이나 기왕력이 없는 alert 한 사람이 감기가 걸리면 처방에 따라 감기약을 복용하고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시면 낫는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처치만으로 나을 수 있는 상태가 전혀 아니었다.


머리는 수술 때문에 빡빡 밀려 있었다. 보통 수술부위만 살짝 깎는데, 머리가 남김없이 밀려있는 것을 보면 상황이 굉장히 심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거기에는 덕지덕지 드레싱이 되어 있었고, 머리 깊숙한 부위에 카테터가 꽂혀 있었다. 얼굴은 퉁퉁 부어 있어서 원래 얼굴을 예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사람들이 퉁퉁 부은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본래 얼굴인 양 착각하듯 말이다.


이런, 갑자기 코피가 흘러나온다. 나는 덤덤하게 물티슈로 그것을 닦았다. 하지만 e-tube를 고정한 반창고에 묻어난 약간의 피는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가 않았다. 같이 일하는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귓구멍에 환자의 tissue(조직)이 나왔다고 한다. 구멍이라는 구멍에는 피가 다 났다고 한다.


환자가 그나마 이 모습으로 유지될 수 있는 것도 수많은 선생님들과 동기들이 환자를 관찰하고, 몸을 닦고, 드레싱 하고, 테이프를 갈고, mouth care을 한 결과겠지. 이게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겠지.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객관적인 데이터를 서술하겠다. 내가 그 환자를 처음 봤을 때, 이미 혈압과 산소 수치는 측정불가일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의사가 처방하는 대로 승압제(혈압을 올리는 약)를(을) '때려 부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때려 붓는다는 말이 상당히 과격하긴 한데, 환자를 살리기 위해 의료진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주면 감사하겠다.


환자는 응급실에 왔을 때부터 여러 사람의 뇌리에 박혔다. ER(응급실)에서는 저렇게 머리가 훼손된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다. OR(수술실)에서도 이목을 끌기는 마찬가지. 그분들 역시 역시 환자가 살았으면 하는 마음가짐으로 수술에 임했을 것이다. 실제로 수술실 간호사가 젊고 미래가 창창한 여자인데 안타깝다며, 우리 부서에 가서는 그분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잘 부탁한다는 말은 으레 '환자에게 샘이 있는' 보호자가 의료진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왜 말 한마디에 집착을 하냐면, 그만큼 드문 경우기 때문이다. 보호자야 뭐, 환자와 함께 오랜 세월 희로애락을 겪었을 거니까 그런 말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환자와 연관관계가 전혀 없는 의료인이 한 말이다. 이성적 사고의 절정인 의료진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진심이 묻어 나와 보였다.


환자는 남자 친구와 같이 차에 탔다. 연휴를 맞아 남자 측 부모를 뵙고자 연고 없는 남자의 고향으로 향했겠지. 도착할 때쯤 마주 보는 화물차와 충돌했다. 화물차의 과실인지 승용차의 과실인지 알 길은 없었다. 남자는 놀라서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을 것이다. 화물차는 오른쪽에 있는 여자와 충돌했겠지. 그래서 남자는 병동에 입원만 할 정도의 상태고, 여자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상태로 중환자실에 들어왔겠지.


목에 고정장치를 착용한 남자는 면회시간도 아닌데 수시로 벨을 눌렀고, 환자를 보길 원했다. 처음에는 면회를 몇 번 해주었으나, 그 횟수가 날로 늘어나 어쩔 수 없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으니.


결국 내가 off(쉬는 날)였을 때 환자는 expire을 맞이했다. 환자의 사망 소식을 들은 보호자(부모)는 실신했다고 한다. 환자의 어머니는 남자 친구였던 사람에게 살인마라며 소리쳤다고 한다. 남자는 그런 말을 듣고도 무릎을 꿇고 싹싹 빌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을 거라는 죄책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남자 측 부모가 사망 이후의 절차를 밟고, 장례식장을 알아봤다고 한다. 경험상, 이성의 끈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이 뒷수습을 한다.


실제로 일어나기에는 너무 잔인한 일이다. 이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둘이 지지고 볶고 싸워서 어느 한쪽이 잠수를 타든, 뭘 하든, 여자는 남자와 같이 차에 타서는 안 됐다. 최소한 그날, 그 시간만큼은. 하지만 일은 이미 벌여졌고 이것은 시계태엽 감듯 되돌릴 수는 없다.


시간은 정말이지 야속하다. 전진만 하지 후퇴할 줄은 모른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시간 속에서는 과거가 된다. 최악의 순간만 삭제하고 영화 편집하듯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처럼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하면서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면을 빌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소서. 생전에 하지 못한 일들, 그곳에서 마음껏 하시고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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