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생각하다

사랑이란 단어의 정의

우리 중환자실에는 결핵 판정을 받아 독방에 계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올해 여든다섯의 할아버지는 귀도 어두우시다. 내가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신다.


할아버지의 보호자는 면회 시간마다 항상 정성으로 할아버지를 돌본다. 내가 개인적으로 정의 내린 보호자의 여러 가지 유형 중 사랑꾼형이라고 생각된다.


증거 1) 할아버지의 곁에 분신처럼 있는 바나나와 요구르트, 요플레! 요즘 같은 날에는 상하기 쉬운데 항상 손에 바리바리 싸오신다.

증거 2) 면회시간이 끝날 때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 방 특유의 분위기. 보호자분 면회 마쳐주세요!라고 여러 번 말해야 겨우 퇴실하는 보호자들.


사실 난 그렇게 환자를 애지중지하는 보호자의 면전에 대고 빨리 나가 달라는 말을 하기가 좀 많이 그렇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퇴실하지 않으면 내가 혼나는걸.. 이건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늘도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나에게 아드님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볼펜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냥 쓰고 돌려주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도 돌려주지 않으셨다. 궁금해서 뭘 하나 싶었는데..


세상에!


종이에 글을 쓰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예쁜 대화.


'잘 있었어요?'

'밥을 못 먹겠어. 영양제를 더 줘.'

'몸은 어때요?'

'좀 나아졌어.'


할아버지의 상황에 맞춰 대화를 이어가려는 배려와 성의가 돋보였다. 글씨체도 무척 따뜻했고 대화 내용도 소소하지만 예뻐서 들에 핀 이름 없는 풀꽃 같아 보였다.


짧은 순간에도 상대방을 배려하며 기분 좋은 대화를 주고받는 것. 사랑을 정의 내리자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분들을 따라 할아버지와 대화를 했다. 손바닥에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라고 적으니 내 손바닥을 한참 왼쪽으로 돌려보고, 오른쪽으로 돌려보고, 눈을 찡그리며 요리조리 살펴보신다. 그러고 나서는 의미를 아셨는지 씩 웃으신다.


실제로 할아버지와 대화를 해보니 한 마디도 시간이 한참이나 걸린다. 보호자들도 그 과정을 거쳤겠지? 내가 내린 정의를 수정해야겠다.


사랑이란 짧은 순간에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기다릴 줄 아는 것.

이게 바로 사랑이지, 사랑이야.


오늘도 무언가 하나 배우는 하루다.

오래오래 사세요 할아버지.^^



작가의 이전글 생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