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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민 Dec 27. 2018

계약직이 어때서

Career

“다 좋은데 딱 한 가지. 계약직이야.”

얼마 전, 취업을 앞둔 친구가 한 말이다.

요즘 사람들이 취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부분은 그 자리가 정규직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다.

만일 정규직이 아니라면 일정 기간 후 정규직으로 전환은 가능한지.


하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계약직이 뭐 어때서’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레 운을 뗀다.

“계약직이 어때서?”


직장의 안정성 측면에서 정규직이 취업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약직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서러움이 상당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드라마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계약직 타이틀을 벗기까지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지만 계약직에 대한 생각을 한번 전환해보자.

여러 기업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서, 나는 계약직이 오히려 부담 없이 경험해보고  배울 수 있는 매력적인 일자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지는 차차 설명해보겠다.


1. 계약 기간은 '실험과 연습' 기간

영어로 “Life is not a dress rehearsal.”이라는 표현이 있다.

영국 작가 로즈 트레마인(Rose Tremain)이 한 말인데, 인생에는 연극에서 본극 전에 하는 예행연습이 없다는 뜻이다.

인생에는 연습 없이 모든 게 실전이다. 한번뿐이기 때문에 반드시 잘해야 하고 해내야만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뭐든 더 잘하려 할 때,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일 때, 기회가 딱 한번뿐일 때, 심리적 부담감으로 오히려 평소보다 성적이 더 안 좋게 나타난다.


많은 직장인들에게 일이 힘든 것 또한 리허설이 없기 때문일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접하는 상사와의 관계. 여러 팀원들 간의 협업.

실수를 저질렀을 때 누군가에게 보고해야 할지. 보고를 한다면 누구에게 할지.

아니면 우선 스스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그러다가 일이 더 커지는 건 아닌지.

심지어 사무실이 아닌 회식 자리에서의 술자리 매너까지 신경이 쓰인다.

회식자리에서 분위기 파악 잘하고 싹싹하게 대화를 이끌어가는 사원이 윗사람의 이쁨을 받는다고도 하던데.

이제껏 학교나 집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알아서 해야 하는 일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게다가 이 모든 게 직장에서 직원을 평가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니.


우리는 상황이 조금 ‘너그러울’ 때 실력 발휘를 더 잘할 수 있다.

그리고 계약직은 이러한 '너그러움'이 가능한 자리이다.

정규직에게는 업무적인 실수가 용납되지 않지만 계약직의 경우 어느 정도 가능하다.

그래서 계약직은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배운다는 생각으로 일할 수 있다.

계약 기간을 실험과 연습의 기회라고 생각해보자.

심리적 부담을 줄이고 최선을 다했을 때 그만큼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지 실험해 보자.


2. 비교적 적은 책임감

일반적으로 계약직에게 처음부터 기업의 중대한 업무를 맡기는 경우는 드물다.

따라서 계약직은 정규직이 느끼는 과중한 업무, 막중한 책임감과 스트레스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수도 있고, 어쩌다  중간에 실수를 한다 해도 그리 큰 비난을 사지 않는다. 업무 자체가 크게 문제 될 성격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정규직은 끝까지 본인이 하는 일을 책임져야 하고, 막중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

(실제로, 계약직 인턴이 정규직으로 전환된 후 과도한 업무량과 책임감을 못 이겨 일을 그만두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또한, 대개 계약직에게는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조금만 일을 잘해도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로 상사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약직의 업무를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

계약직이니까 일을 대충 해도 된다는 말이 절대 아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작은 일들이 쌓여서 큰 일이 되는 법이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꼼꼼하고 성실하게 잘 수행해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 중요한 일도 잘할 수 있다.


3. ‘기업을 평가’

흔히 사람들은 기업만이 직원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니다. 거꾸로 직원도 기업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일을 그만둘 수도 있다.


계약직은 계약 기간 동안 일을 하면서 이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인지, 이 조직이 나에게 어울리는 곳인지 스스로 평가해 볼 수 있다.

무조건 기업만 나를 평가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에게도 충분히 기업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정규직은 참고 버텨야 하는 회사의 모든 단점을 계약직은 좀 더 객관적으로, 신중하게 생각해 볼 수 있다.

팀 직원들이 같이 일하기 좋은 사람들인지, 이 직무가 적성에 잘 맞는지, 기업 문화는 내 라이프스타일과 잘 맞는지.

장기적으로 내가 일할 직장으로 적합한지 객관적으로 기업을 평가해보자.


4. 계약 만료는 '용서가 된다'

계약직 직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열심히 일했는데 계약 연장이 안 이루어지면 어떡하지'일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실력을 인정받았는데도 회사 사정상 채용이 힘든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다. 내 잘못이 아니다.

추후 다른 일자리를 찾을 때 불이익은 없을 것이다.


다른 기업에서 취업 면접을 볼 때, 계약 연장이 안되어서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 이를 이해 못하는 면접관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정규직으로 입사했다가 뚜렷한 이유 없이 일을 그만두었다고 하면 면접관들에게 나쁜 이미지를 남길 수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 계약직으로 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5. 계약직 야근은 불법

내가 처음 통번역사라는 직업을 고민하고 있을 때, 통번역대학원 입시 학원 선생님 한분이 이렇게 말했다.

“계약직은 야근이 불법이라 칼퇴할 수 있어요.”

놀라웠다. 회사를 다닐 때 야근을 밥먹듯이 했던 나인지라, 어떻게 퇴근을 제때 할 수 있나 싶었다.


법을 엄격히 준수하지 않고 계약직에게 야근을 시키는 기업도 있겠지만, 굳이 법을 어기면서까지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에게 야근을 시키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아무래도 계약직은 비교적 야근을 면할 수 있을 것 같다.


6. '어차피 그만둘 거라면...'

과거와는 달리 요즘에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무색해졌다.

일을 하다 보면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잘 몰라서, 본인이 뭘 할 때 즐겁고 뭘 잘하는지 몰라서 첫 직업을 잘못 선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 세대는 100세 시대라는 말도 있지 않나.

한번 하게 된 일을 절대 바꾸지 못하고 평생 그 일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갑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 '족쇄'처럼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과연 첫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해 평생 그곳에서 뼈를 묻고 일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이 정말 있다면, 자신의 청춘을 모조리 한 회사에만 바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언젠가 다른 기업, 다른 환경에서 일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한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어떤가.

아직도 계약직이 그렇게 기피의 대상으로만 보이는가? 여전히 정규직만을 고집할 텐가?


취업을 고려중이라면, 무조건 정규직 타령만 하기보다는 계약직이란 이유로 취업 희망 대상에서 제외했던 일자리들을 다시 한번 고려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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