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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E Jul 13. 2019

딸,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최고야

계획을 잃어버린 어느 날, 아빠가 나에게.

아빠랑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공용 자전거인 따릉이 대여소는 집 가까이 있었고, 정년퇴직 이후에 아빠가 많이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빠는 30년 넘게 한 회사를 위해서 빽빽하게 일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 일을 어느 한순간 남에게 미뤄두는 일, 또 더 늦기 전에 자기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뛰어든 후 난생처음 마주한 상황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매 순간, 습관처럼 고군분투하는 아빠는 좀처럼 혼자 노는 법을 익히지 못했다. 주말에도 자주 일거리를 안고 카페로 향했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밤새 뒤척이곤 했다.


아빠와 자전거를 빌려 초록이 가득한 공원으로 향했다. 온전히 그를 위해 시작한 행동이었다.


불안이 마음을 침범할 때가 있다. 사람들과의 짧은 대화, 사소한 무표정들, 이따금 마주치는 미소 같은 것들이 모두 불편하게 느껴질 때. 어떤 걸로도 짓눌린 마음이 털어지지 않는 순간엔 강력한 침묵이 찾아온다.




약간 후덥지근한 초여름이었다. 텅 비어버린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항상 강렬한 끌림을 따라 차근차근 실행하며 살던 나와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했고 크게 기쁘고, 크게 실망하다 완전히 지쳐버렸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덥고, 벤치에 앉으면 서늘해졌다. 아빠랑 한강 부근을 달리다 공원 벤치에 앉아 탄산수를 나눠 마셨다.


요즘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 왜 일이 힘들어?

힘든 건 아닌데 뭔가 하고 싶은 게 없어요. 다 지루해요.

- 딸, 살아보니 그래. 마음이 편한 게 최고야. 약간 불안해도, 심심해도 괜찮아.


반 평생 한 직장에만 오롯하게 다니던 나의 아빠는 '삶의 안정성'을 강조하던 사람이었다. 아빠는 확실히 변했다. 나의 요즘은 심심하고, 평화롭다. 자주 멍 때리고, 무언가 해야겠다는 계획을 쉽게 미뤄버린다. 그렇게 올해의 절반이 지났다. 물론 또렷하게 정해진 게 없다. 정말 아무 계획 없이 마음이 편안한 채로 있어도 괜찮은 걸까. 계절의 청량함을 목격하는 일이 낯설다. 시작은 아빠를 위해서 탔던 자전거였다. 아주 가까운 사람이 해준 한 마디 덕에 마음의 긴장탁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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