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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기 Apr 03. 2021

희망에 관하여

절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대학을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 이직을 몇 번하였다. 각 회사마다 이직을 한 이유는 각기 다르다. 그러나 나름 공통점을 찾아보면 이직의 순간까지 그 회사에서 내가 희망을 보지 못했다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내가 그 회사에서 성장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 이 회사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없을 거라는 생각. 그런 생각들이 나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던 것 같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만 있어도 꽤 괜찮은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보다 내일이 더 성장하는 삶. 더 행복한 삶. 더 여유로운 삶. 더 부유한 삶이 된다는 희망이 있다면 오늘의 고통쯤은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치 노쇠하는 육체처럼 내일 더 악화되는 삶이 예상된다면 그 날의 고통이 더 괴롭게 다가올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유도 어쩌면 희망을 보지 못하기 때문을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는 첫 직장에서 야근을 참 많이 했다. 거의 저녁 10시 넘어 퇴근은 기본이었고, 가끔이지만 새벽 2~3시에도 퇴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에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바로 나를 제외하고 동료나 선배들은 저녁 6시나 7시 사이에 모두 퇴근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 친구와 했던 대화가 생각난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퇴근이 늦지만 너와 결혼할 때쯤이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일찍 퇴근할 수 있을 거야." 당시 나는 몸은 힘들었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며 나름 희망을 보았고 그래서 그 시기를 그리 어렵지 않게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최근 회사 업무를 하며 사업하시는 한 분을 알게 되었다. 새 건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그분의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실례가 될 것 같아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는데, 그분께서 먼저 이유를 말해 주셨다. "건물을 사면 회사가 망한다고 해서 구매 대신 임차를 했습니다. 최근 회사도 성장하고 있고, 사람도 더 필요하고,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회사가 더 커질 거란 희망을 주고 싶어서 조금 큰 사무실을 얻었습니다." 그랬다. 그분은 다른 무엇보다도 직원들의 이탈을 막아보고자 계속적으로 직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살다 보면 주위에서 희망 섞인 말보다는 절망적인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경제가 더 안 좋아질 거야. 전쟁이 날 수도 있어. 이 바이러스가 종식될까? 나 역시도 희망 섞인 말보다는 미래를 사전에 준비하자는 의미에서 부정적인 얘기를 할 때가 많다. 그리고 주위에서 하는 부정적인 이야기에도 꽤나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좋은 일에도 끝이 있듯이 안 좋은 일에도 끝이 있다. 그래서 혹시 지금 상황이 절망적이어도 언젠가는 이것도 끝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암살 중간에 이런 대사가 자주 나온다. "독립이 되겠나?"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 알았으면 그랬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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