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끼~오~~~! 꼬꼬꼬..."
닭 울음소리에 슬며시 눈을 떴다.
'아직 캄캄하다. 좀 더 자야지...
"꼭~~끼~요~~~! 꼭꼬..."
또다시 저 멀리 닭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울음소리가 다른 걸 보니 닭이 한 마리만은 아닌 것 같다. 몸을 좌우로 뒤척이다 다시 실눈을 떴다. 여전히 캄캄하다. 하지만 계속되는 닭울음소리에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다.
'저 놈의 닭 모가지를 비틀어버리던지 해야지 원...'
어젯밤 천장에 빔을 쏴서 아이들에게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대학교 때 처음 보았으니 벌써 10년은 족히 넘은 영화다.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기에는 더없이 좋은 영화라 나름 의도를 가지고 골라 보았다. 아이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멍한 눈동자로 스크린만 주시하고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묘한 최잭감이 든다. 그 묘한 최잭감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해 주고 있지만, 오히려 부모로서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듯한 기분. 그럼 묘한 최잭감은 영화 상영 시간 내내 내 마음 주위를 유유히 흐르며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한다.
'지금이라도 꺼? 말어?'
'그래도 교육적인 내용의 애니메이션인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아니야, 저 멍한 눈을 봐. 우리 아이들은 원래 총명한 눈을 가지고 있다고. 내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어.'
'하지만, 지금 영화를 꺼버리면 저들은 쿠데타라도 일으킬 태세로 들고일어날 텐데, 난 감당할 수 없어.'
'에잇. 그냥 같이 보자. 담부터 안 보여주면 되지.'
숱한 반론과 자기 합리화를 반복하고 나서야 결국 나는 아이들과 함께 누워 영화를 본다.
영화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아이들이 하나씩 눈을 감고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명씩 클리어 되는 아이들에게 잘 자라며 뽀뽀를 해 주고 살며시 미소를 띠며 속으로 생각한다.
'평소에도 예쁘긴 하지만, 역시 잘 때가 제일 사랑스럽구나.'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나는 재빨리 우리들만의 영화를 틀었다. '바닐라 스카이.' 지인이 추천해 준 조금은 오래된 영화인데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는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라고 해서 봤는데, 영화 보는 내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이 영화 대체 무슨 내용이야? 그냥 편한 멜로 영화를 고를 걸 그랬나?'
내가 영화 보는 안목이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너무 늦은 밤에 피곤한 몸으로 봐서 그랬는지 영화를 보는 동안 내용이 혼란스럽기만 했다. 아내는 반쯤 넘게 보다 서서히 눈을 감았다. 결국 나만 남아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을 연신 치켜올리며 엔딩 크레딧까지 보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자정 넘어서까지 영화를 보고 잠을 자서인지 몸이 이불속으로 꺼지는 것처럼 피곤하다. 아침부터 운전해서 집에 가려면 아침잠을 제대로 자야 하는데 저 닭들 때문에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애꿎은 몸만 자꾸 뒤척인다. 그러나 닭들의 울음소리는 귀찮은 알람시계처럼 계속되고,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저 닭들의 모가지를 비틀던지 해야지... 정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네.'
하지만 닭 모가지를 비튼다고, 새벽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닭들의 울음 합창으로 어느 새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서서히 텐트 안에도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아직 꽃도 피지 않은 3월의 야외 캠핑이라 달랑 전기장판 하나로 새벽의 추위를 버티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혹시 아이들은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지 걱정되었다. 그런데 좌우를 살펴보니 아이들과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나만 남아 있다. 텐트 밖에서 아이들이 엄마와 뛰어노는 소리가 들린다. 다행히 아이들 목소리는 퀭하지 않고 봄철 시냇물 소리처럼 맑았다. 역시나 엄마와 아이들은 강골처럼 벌써 일어나 밖에서 뛰어놀고 있고, 나만 텐트 안에서 골골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저주받은 체력은 언제쯤 회복이 다 되려나...'
나는 서서히 일어나 텐트 입구의 지퍼를 열었다. 텐트 안은 그럭저럭 온기라는 것이 남아 있었으나, 텐트 외피에 맺힌 이슬은 모두 얼어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는 조용히 책 한 권을 들고 해먹을 친 곳으로 갔다. 따스한 햇살에 몸을 녹이며 책 읽는 여유를 부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신발을 벗고 해먹에 올라가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젊은 시절 이야기, 가족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나 역시 육아휴직을 통해 나름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고 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가장으로서 주어진 경제적 의무와 내가 꿈꾸는 삶의 가치들을 어떻게 하면 조화롭게 이루어 나갈 수 있을까?'
나는 매일 이러한 고민을 안고 나만의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주위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 그 날도 그러한 고민의 연장에서 유시민 작가의 책을 골랐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해먹에 누워 조용히 책을 읽고 있는데, 어디선가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와 아이들이 축구를 하는 소리, 배드민턴을 치는 소리, 서로 달리기를 하며 잡기 놀이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순간 이번에는 묘한 죄책감이 아닌 무거운 죄책감이 먹구름처럼 몰려온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야외로 나왔는데, 나도 아이들하고 함께 놀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다른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놀고 있는데, 우리 애들만 아빠 없는 아이처럼 있으면 어떡하지?'
하지만 책을 조금 더 읽고 싶은 마음에 죄책감을 꾹꾹 누르며 페이지를 넘긴다. 그런 나를 위로해 주려는 듯 책에서 유시민 작가 역시 아이들은 잠시 뒤로 하고 지인들과 낚시를 하러 가거나 당구를 치러 갔었던 일상을 소개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 역시 한 가정의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가정에 일종의 책무를 다한 후에는 죄책감은 잠시 내려두고 본인의 삶을 즐긴다는 내용이다.
'나 역시 평소에 많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니, 지금은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겠지?' 하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아빠들과 아이들이 뛰어노는 목소리가 들리자 더는 혼자 해먹에 누워 책을 읽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머리 위에서 손이 하나 쑥 내려왔다. 그 작은 손에는 칸쵸 과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빠 드세요."
"뭐야?"
"아빠 먹으라고 가져온 거야~"
딸아이는 웃으며 자신의 칸쵸 과자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나는 과자 하나를 덥석 입에 물고 말했다.
"하나만 더 줄래?"
아이는 나름 자신에게는 소중할 수 있는 과자 하나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건네주었다.
"아빠. 맛있게 먹어."
아이는 말을 마치고 동생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다른 아이들은 다들 아빠와 놀고 있는데, 그래서 아빠에게로 와서 같이 놀자고 떼를 쓸 만도 한데, 아이는 자신이 아끼는 과자를 나에게 건네주고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딸아이가 건넨 그 과자를 통해 내 가슴에 머물러 있었던 죄책감이 사하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과자를 통해 아이가 '아빠 괜찮아. 책 봐~' 하는 것 같았다.
아이가 건네 준 과자를 삼키고, 조용히 책을 덮었다. 그리고 부모로서 내가 가졌던 죄책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이에게 텔레비전을 틀어주고 나는 거실 한쪽에 누워 스마트폰 할 때 드는 죄책감, 퇴근하고 지쳐 샤워만 하고 침대에 쓰러져 잘 때 오는 죄책감, 주말에 집에서 체력 보충을 위해 낮잠만 자고 어느덧 저녁을 맞이할 때 드는 죄책감, 아이가 자기 전에 책 읽어달라고 조르는데 피곤해서 그냥 자라고 불 끄면서 드는 죄책감, 아이를 키우며 드는 죄책감의 종류와 무게는 끝이 없다. 그 죄책감을 덜어보고자 육아휴직을 했으나 여전히 그 죄책감은 완전히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다만 언제든 그 죄책감을 만회할 시간과 여유가 있다는 것이 그나마 나에게 위안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