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을 바꾸니 아내가 보인다.

아빠 육아휴직 일기 - 퇴근이 늦어진 아내를 기다리며...

by 노용기

“언제와...?”

“미안해... 조금 늦을 것 같아.”


대화의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화의 주체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아내가 나에게 전화를 했었다. 언제 오는지. 늦게 오면 몇 시쯤 집에 도착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었다. 그때마다 일이 많아서 조금 늦을 것 같다는 얘기를 입버릇처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끔씩, 매일 같은 내용으로 물어보는 그 전화가 조금은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아내가 오기 전까지 오리고기를 구워놓고, 샐러드도 만들어 놓고, 밥도 새로 지어 놓았다. 이제 아내만 오면 된다. 그런데, 조금 1시간 정도 늦는다던 아내가 아직 소식이 없다. ‘지금쯤 도착할 때가 되었는데...’ 궁금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본다.


“어디야...?”

“미안해... 지금 출발해...”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내가 집까지 오려면 한 시간이 더 걸린다. 고기는 모두 익었고, 밥은 이미 밥공기에 다 떠놓았다. 아내가 한 시간 뒤에 오면 고기는 다 식어 있을 것이고, 밥은 굳어 있을 것이다.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을 미리 주지. 다 준비해 놨는데, 이제야 알려주면 어떡해...!’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작년까지 몇 년을 그렇게 아내를 곤란하게 했기 때문이다.


오늘 겪은 일이 사실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그러나 육아휴직을 하면서 가사를 도맡아 하지 않았다면 느껴보지 못할 나름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이라는 들었다. 어쩌면 이런 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저녁시간마다 아내를 서운하게 하며 앞으로도 몇십 년을 더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 이렇게 역할을 바꿔보니 아내의 마음 그리고 주부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지난날을 반성하며 아내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집에 도착한 아내가 한 마디 한다. 그리고 나도 예전에 아내에게 많이 했던 그 말은 비수처럼 내 가슴에 박힌다.

“지금까지 기다렸어? 먼저 먹지 그랬어...”

이래저래 오늘 하루 데쟈뷰 많이 경험한다.



글을 다 쓰고 다음 국어사전에서 ‘주부’를 검색해 보았다.

주부: 한집안의 살림살이를 도맡아서 주관하는 여자 주인.

전업주부: 다른 직업이 없이 오로지 가정에서 집안일만 도맡아 하는 여자 주인.


나는 직업도 있으며, 또한 여자도 아닌데... 또다시 정체성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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