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이 모티브가 된 하루 일기.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있었다.
잠에 들려면 억지로 약을 먹거나, 술에 만취하거나
기절할 정도로 고된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두통은 나날이 깊어져 갔고, 후에는 기억이 끊기는 시기가 왔었다.
병원에서 조차 복용량을 줄이자는 이야기를 했지만
약이 줄어갈수록 잠들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여갔고
결국은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반복의 나날이었다.
같이... 있을래요?
며칠간 잠들지 못했다는 말에 토토로가 꺼낸 말이었다.
연애 초기였고 너무 이른가 싶었지만, 어떻게든 잠이 필요했던 난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 지내던 작은 방에 토토로와 함께 공간을 채웠다.
사람 하나 더 들어왔을 뿐인데 새삼 공간이 그득하게 들어찬 것 같았다.
함께 식사를 하고 좁은 매트리스 위에 누워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이렇다 할 대화 없이 각자의 스타일대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친구가 와서 하룻밤을 묵어 갈 때에도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토토로와는 아무런 자극이 없었다.
곁에 누워 있었으나 불편하지 않았고
숨소리가 섞여 들렸으나 시끄럽지 않았고
코 끝에 체취가 맴돌았으나 역하지 않았다.
그저... 익숙한 듯, 당연한 듯 공간 안에서 녹아들고 있었다.
"하아암..."
자연스레 하품이 새어 나왔다.
옆에서 핸드폰을 하던 토토로는 액정을 꺼둔 채,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마에 내려앉는 따스한 터치가 몸을 부드럽게 했고
살며시 들어주는 고개 밑으로는 빠르게 맥이 뛰는 팔 하나가 놓였다.
품에 깊숙이 안으면 풍겨오는 체취에 코가 힘들다는 내 말에
팔만을 내어주고는 몸을 바로 눕히던 토토로.
꼬물꼬물 다가가 고개를 얹어 두고는 살며시 허리를 감싸 안았다.
이 정도로 가까우면 숨 쉬기가 역하고 괴로워야 했것만,
정말 희한하게도 토토로의 체취는 안온하고 따끈했다.
마치, 따듯한 욕조 속에 온몸을 담그는 것처럼
몸이 녹고, 마음이 녹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살며시 감은 눈 위로 토토로의 눈길이 와닿는 것을 느꼈다.
피식- 하고 내쉬어진 옅은 바람 사이로 토토로의 감정이 흘러 들어왔다.
출산 이후 캥거루케어를 받는 신생아 아기처럼
토토로의 품에서 평온해졌다.
팔을 타고 흐르는 고동에 툭, 하고 마음이 놓였다.
향초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는 체취를 맡았다.
그 어린 날, 엄마의 품에서 맡으며 잠들던 젖내음처럼
괴롭지 않은 향에 이끌려 수마로 깊이 빠져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속은 것 같아."
"응? 갑자기?"
응. 아무래도 그건 사기였어. 당신이 어딜 봐서 잠을 못 자는 사람이야?
토토로는 그날 이후로 끝없이 사기결혼을 주장하고 있었다.
수면제를 먹는 것도, 처방받은 약도 전부 확인을 했었지만 도통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라 했다.
의사가 돌팔이가 아니냐는 질문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정도였다.
토토로의 품에서만큼은 누우면 3초 각이었다.
10여 년 가까이 먹어오던 약들은 토토로의 팔베개에 백전백패를 맛보았다.
하지만, 약을 끊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처방을 받은 것은
토토로와 떨어져 있거나, 토토로가 늦게 오는 날을 위해서였다.
운동도 해보고, 명상도 해보고, 뇌를 이완시켜 준다는 뇌파 ASMR도 틀어보고 다 해봤지만
아직까지도 토토로의 팔베개를 능가하는 그 무엇도 찾아내질 못하였다.
깊게 잠들려면 필수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은!
토토로의 따스함과, 귀를 울리는 맥박의 고동, 팔을 가득 채우는 토실함.
그리고, 제일 중요한 토토로만의 체향이다.
연애 포함 결혼 생활 총 12년의 세월 동안 간신히 찾아낸 나만의 숙면 레시피!!
이 놈의 숙면 레시피 덕분에(?) 우리의 결혼 생활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아암... 내일 중요한 스케줄이 있는데, 오늘따라 토토로의 귀가가 늦다.
빨리 와, 토토로. 나 좀 재워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