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끄적이 엄마의 짧은 단상

소소한 일상이 모티브가 된 하루 일기.

by Gin

입원



1호는 병원에서 지내게 될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생들 없이 보내는 여름휴가라니!!!


입원 수속과 챙겨 와야 하는 물품들 그리고, 집에 남아 있을 두 아이의 스케줄을 조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댁은 장사를 하고 계시면서 동서네와 함께 살고 계셨기에 부탁드릴 수 없었다.

친정 외에는 선택지가 없었으나, 친정엄마 또한 허리 부상으로 인해 힘겨워하셨기에 난감했다.

그렇게 상황 정리에 정신이 혼미한 나를 두고,

언제 퇴원할지 모르는 상황임에도 새로운 환경이 마냥 즐거워 보이는 1호였다.


6인실 병실의 가장 안쪽 창가 자리.

건물로 가득한 창 밖의 풍경조차도 하늘이 보인다는 것 하나에 만족한 아이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액 라인을 잡을 때까지만 해도 평소와 다름없이 밝아 보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하였던가,

환자복을 입고서 병원 내를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오자

아이는 얼굴에 만개하였던 미소를 뒤로 한 채, 어느덧 선잠에 빠져 새근대었다.


시간마다 체크해야 하는 검사들이며, 수차례 들어가는 이뇨제로 인해

아이는 깊은 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잠에서 깨어야 했고, 그로 인해 체력적으로 피곤이 내려앉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의 변화만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이뿐만 아니라 곁을 지키던 나조차도, 혹여 아이의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을까 우려되어

쉽게 잠을 들기 어려운 나날이었다.

바이러스로 인한 급성 발병이었기에 병원에서는 외출을 삼가라고 언질을 해주었다.

아이와 함께 바람을 쐴 수 있던 시간은 하루에 단 2-30분. 그 외에는 오롯이 병실에서의 생활이었다.

매일같이 아이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는 양가 할머니들의 연락 또한 정신을 날 서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언제 퇴원한다니? 나을 수는 있대?"


"주변에 물어보니 평생 안고 가야 한다던데 애를 어떻게 키웠길래..."


걱정에서 책망이 되어 버린 전화에 못 들은 척 하기도 수차례.

어미로서 애착을 가지지 못했던 1호와의 관계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르며,

어릴 때 떨어져 살았던 것이 문제가 아니냐는 질문에도 아니요!라고 자신 있게 답하지 못했다.


1호가 태어났을 적, 극심한 산후우울증으로 폭력성까지 띄었던 나에게서
친정엄마는 아이와 나를 살릴 유일한 방법이라며 3년간 1호를 극진히 보살펴 주셨다.

아이와의 애착형성이 이루어져야 할 시기에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이에게 병이 생긴 것을 확진받은 이후부터 나를 향해 쏟아지는 책망에도 속수무책이었다.

아니, 나 조차도 과거를 원망하고 있었다.

애가 애를 낳은 상황이었지만,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는 죄책감이었다.


통화만 하고 오면 표정이 어두워져서였을까, 아이는 혼자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도

내가 병실에 들어서면 얼굴색이 어떤지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엄마! 난 엄마랑 단 둘이 있게 되어서 무지 좋아!


편의점에서 사 온 미니 레고 조각들을 맞추며 아이가 불쑥 말을 건네었다.

아이의 소변량을 체크하고 있던 나는 아이의 말이 귓가에 스치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퇴원이 언제일지 정해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매일 피를 뽑아가며 스트레스를 받았을 아이가

미소를 잃지 않으며 건네어 주는 위로에 미안함이 물 밀듯이 솟구쳐 올랐다.


"그래? 병원에 있는 게 갑갑하지 않아?"


"응. 엄마랑 있으니까 괜찮아.

맨날 막내만 엄마랑 자니까 부러웠는데, 지금은 하나도 부럽지 않은걸? 내가 엄마를 독차지하고 있잖아!"


아이에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목이 메어오고, 가슴이 저려왔다.


혹여나 문제가 생길까 쉽사리 산책도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병실에만 박혀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조차도 함께 있는 시간이라 괜찮다 말해주다니...

어린 나이에 빠르게 철이 들어버린 것 같아, 못난 어미의 민낯이 드러났음에 부끄러웠다.


"우리 그러면... 여기 있는 동안은 우리 둘만의 여행이라고 생각할까?"


아이는 입가를 가리며 소리 없는 환호성을 외쳐주었다.

발을 동동 거리면서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보며, 착한 마음으로 커준 아이에게 감사했다.

내가 키운 것이 아니었다. 저 스스로 강단 있는 마음을 키운 1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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