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길의 돌멩이를 치워주지 않은 부모님이 고마운 이유

초등학생 때 만난 ‘빌런 엄마’가 내게 남긴 의외의 선물

by 작가 희와이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스스로를 ‘아이’라고 정의하기보다 부모님의 빈자리를 채우는 ‘동료’라고 믿었던 것 같다. 맞벌이로 늘 바쁘셨던 부모님 아래서 독립심은 내 몸에 꼭 맞는 옷처럼 익숙해졌고, 나는 그 옷을 입고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꽤 일찍 뛰어들었다. 그래서일까. 부당한 어른과 맞서야 했던 순간에도 나는 울며 부모님 뒤로 숨는 대신, 무거운 갑옷을 입고 홀로 그 앞에 서는 쪽을 택했다.


그 지독한 악연은 초등학교 시절, 아주 사소한 계기로 시작되었다. 어쩌다 보니 학원 입구에 내 교재가 ‘우수 사례’로 전시되었고, 그것이 발단이었다. 그 학원에는 소위 말하는 ‘마마걸’ 친구와 그 아이를 지극정성으로 뒷바라지하던 ‘극성 엄마’가 있었다. 본인보다 성적이 좋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 그 친구는 나를 적으로 규정했다. 그때부터 교묘한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적인 예가 있다. 당시 나와 아주 친했던 친구의 필체를 똑같이 흉내 내어 나를 비방하는 쪽지를 학원 곳곳에 퍼뜨린 사건이다. 나와 내 친구는 그 유치하고도 치밀한 덫에 그대로 걸려들어 크게 다투고 말았다. 열 살 남짓의 어린 나에게 그 상황은 너무나도 벅찬 파도였다. 하지만 나를 진정으로 힘들게 했던 건 그 친구가 아니었다. 모든 갈등의 뒤편에는 항상 아이가 아닌 그 ‘극성 엄마’가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아이들 사이의 사소한 다툼조차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자기 아이가 조금이라도 기분 나빠 보이는 날이면 즉시 학원에 전화를 걸어 나를 다그치라며 선생님을 달달 볶았다. 그러면 선생님은 앞뒤 상황을 묻지도 않고 나를 불러 세워 꾸짖었다. 어른의 목소리가 곧 권력이 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때의 나는 결코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는 바득바득 내 의견을 말하고 따져 물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 아주머니를, 그리고 그 말만 듣고 나를 몰아세우던 선생님을 무서운 권위자가 아니라, 내가 정당하게 이겨야 할 ‘동등한 상대’로 여겼던 것 같다.


참 이상한 고집이었다. 만약 내가 엄마, 아빠에게 이 상황의 심각성을 구체적으로 말했더라면, 우리 부모님은 분명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를 위해 나서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야지’라는 조숙한 배려였을까, 아니면 나 스스로를 이미 다 커버린 어른이라 착각하며 그 무례한 어른과 같은 층위에서 싸우려 했던 오기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논리로 무장해도 아이는 결국 아이였다. 내가 내뱉는 정당한 항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저 ‘버릇없는 말대꾸’로 치부되어 허공을 맴돌았다. 그 아주머니가 내 친구들을 불러 모아 떡볶이를 사주며 나를 고립시킬 때마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때 느꼈던 지독한 무력감은 때로 부모님에 대한 야속함으로 번지기도 했다. ‘왜 우리 부모님은 저 아줌마처럼 유난스럽게 나를 지켜주지 않을까. 왜 나는 혼자 싸워야 할까.’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재수학원에서 그 아주머니와 딸을 다시 마주쳤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월이 흘러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성인이 되어서도 그 친구는 자기보다 나은 아이가 있으면 적으로 간주하고 어떻게든 트집을 잡으려 애썼고, 그 엄마는 여전히 딸의 룸메이트 관계까지 간섭하며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오히려 안도했다. ‘아, 차라리 내가 어릴 때 그 매운맛을 미리 본 게 다행이구나. 저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기 발로 걷는 법을 모르는구나.’


사회인이 된 지금, 나는 이제야 부모님의 진심을 읽어낸다. 내가 속상한 일이나 기분 상한 일에 대해 말했을 때, 부모님은 나보다 먼저 분노하며 앞서 싸워주기보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먼저 물으셨다. 특히 엄마는 "엄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지", "내가 어떻게 했을 때 더 나은 결과가 있을지"를 차분히 짚어주셨다.


당시 부모님이 그 아주머니처럼 똑같이 쉽게 소리를 높여 싸우지 않았던 건, 당신의 자식이 그 보잘것없는 시기 질투에 휘말려 똑같은 수준으로 추락하지 않기를 바라는 깊은 절제였다. 당신들이 일터에서 묵묵히 하루하루를 버티며 삶을 증명해냈듯, 딸인 나 또한 외부의 거친 풍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조용히 응원하고 계셨던 것이다.


부모님의 침묵은 결코 방관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그 비겁한 권위를 이겨내고 당당히 걸어 나오길 기다려준 가장 큰 ‘신뢰’였다. 내 앞길에 놓인 돌멩이를 일일이 치워주는 부모가 아니라, 돌멩이를 밟아도 발이 아프지 않게 신발을 만들어 신을 수 있는 힘을 길러준 부모님. 적어도 나를 지지해주고 믿어주는 엄마, 아빠가 있다는 그 무언의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울지 않고 그 긴 터널을 버텨낼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시절, 작은 어깨에 너무 큰 짐을 짊어졌던 내가 안쓰러워 마음이 아릿하다. 도움을 청하는 법을 몰라 무례한 어른과 동등해지려 애썼던 그 작은 아이. 하지만 그 외로웠던 싸움 덕분에 나는 이제 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진정한 어른이란 권위로 타인을 누르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묵묵히 책임지고 타인의 성장을 기다려줄 줄 아는 자라는 것을.



<그때의 나에게 뒤늦게 전하는 편지>

그때 네가 입었던 독립심이라는 옷이 사실은 얼마나 무거웠을지, 부모님을 대신해 홀로 성벽 앞에 서 있던 네 뒷모습이 얼마나 단단했는지 이제야 보여.

너는 그 아줌마를 이기고 싶어 했지만, 사실은 너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거겠지. 도움을 청하지 않았던 건 네가 고집스러워서가 아니라, 이미 네 마음 안에 부모님을 닮은 커다란 어른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야.

쪽지 한 장에 가슴 철렁하고 떡볶이 하나에 소외당하던 그 외로운 길 위에서, 너는 울지 않고 너만의 신발을 단단히 고쳐 맸어. 덕분에 나는 이제 어떤 돌멩이가 나타나도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걷는 어른이 되었어.

혼자 싸우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이제 그 무거운 갑옷은 내려놓고, 그저 활짝 웃는 아이로 남길 바라.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