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ㅈㄷ Oct 24. 2021

10. 가난한 동네, 가난한 학교

제프리 (Jeffrey) 이야기

제프리를 알게 된 건 크리스마스 파티 때 식사자리에 우연히 옆에 앉게 되면서였다. 일하는 시간대는 비슷했지만, 서로 작업하는 장소가 달라서 제프리와 일하면서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휴게실에서 몇 번 본 적은 있었는데, 볼 때마다 항상 책을 읽고 있어서 이야기는커녕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아무리 바쁘다 해도 명절은 명절인지라 해마다 플랜트에서도 조촐하게 파티를 열어 같이 식사를 한다. 우체국 플랜트에서 제공하는 건 음료수 정도이고 음식은 각자가 알아서 싸들고 와서 나누는 팟럭 파티였다. 파티 장소는 회의실이었고 열댓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이 두 개 정도 놓여 있었다. 작은 테이블이 여러 개라면 골라가며 앉을 수 있겠지만, 기다란 테이블이 두 개밖에 없어 그냥 순서대로 들어가 앉는 것이 예의였다. 접시에 음식을 담아와 테이블에 앉았는데, 어쩌다 보니 양 옆으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앉게 되었다. 왼쪽은 루시, 오른쪽은 제프리였다. 안 그래도 낯가림이 심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양 옆으로 두고 앉다니. 밥 먹다가 체하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다. 다행히 내 맞은편에 브라이언과 엠마가 앉았다. 


루시와 제프리는 서로 잘 아는 사이 같았다. 간단하게 안부를 묻더니 루시가 제프리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제프리, 학교에서는 부모한테 갖춰야 할 예절 같은 거 안 가르쳐주나? 중학생 아들놈이 요즘 너무 말을 안 들어서 아주 그냥 미쳐버리겠어. 말대꾸도 꼬박꼬박 하고 말이야." 


중학생이면 한창 사춘기를 겪을 나이다. 온 세상 어른들은 다 꼰대로 보이고, 특히 부모나 선생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나이. 루시의 한탄에 제프리는 피식 웃더니 까칠하게 대답했다. 


“그건 가정에서 교육할 문제지. 제발 가정에서 제대로 좀 교육시켜서 학교에 보내라고. 버르장머리 없는 놈들 때문에 선생들이 얼마나 피곤한지 몰라.” 


루시는 속이 없는 건지 사람이 좋은 건지 그 인정머리 없는 말을 듣고도 까르륵 웃으며 맞아 맞아 맞장구를 쳤다. 그러더니 루시가 나에게 제프리에 대해 설명해줬다. 정확하게는 왜 자신이 제프리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그리고 제프리는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었다. 


“아, 이 친구가 한 10년 넘게 중학교 교사로 일했거든. 무슨 과목을 가르쳤다고 했지? 몇 번 들었는데 까먹었네.” 


제프리는 우체국에 들어오기 전에 15년 동안 디트로이트의 한 공립학교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사로 일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바로 디트로이트의 공립학교에 들어가 역사도 가르치고 문학도 가르치고 심지어 수학도 조금 가르쳤다고 했다. 몇 달 전, 인근 중학교에 음악교사로 지원했다가 낙방한 브라이언은 우체국 일 보다 훨씬 괜찮아 보이는 직장을 그만둔 제프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우체국으로 오게 되었을까. 


“세상에는 훌륭한 선생들이 많아. 같이 일했던 동료들 중에도 좋은 선생들이 많았어. 학생들에 대한 헌신과 사랑, 가르치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지. 그런 선생들은 어떤 개망나니가 들어와도 개의치 않아. 오히려 흥분하지. 저 녀석을 내가 한번 사람 만들어보겠다고. 교육시스템이나 행정이 엉망이어도 흔들리지 않고 그저 묵묵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좋은 선생들이 분명히 있지. 

그런데 적어도 내 경우는 선생으로 일하면서 그런 성취감은 느껴보지 못했어. 우체국 일은 그런 면에서 오히려 만족도가 높다고도 볼 수 있지. 우편물을 받고, 그걸 분류하고, 편지와 소포를 목적지까지 배달하고 나면 일은 100퍼센트 완결되는 거야. 물론 우편물이 반송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작은 실수나 착오에서 벌어진 일이니 금방 고칠 수 있지. 하지만 선생으로 일한다는 건 내 능력으로 바로잡기 힘든 오류들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완성이나 완결을 기대할 수 없는 일을 해내야 하는 거거든. 지치더라고.” 


보통 미국의 공립학교가 비슷한 수준의 유럽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들 이야기하지만 모든 공립학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대도시 인근의 부유층 거주지역에서는 굳이 명문 사립을 보낼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꽤 수준 높은 공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문제는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특이하게도 미국은 저소득층 지역보다 부유층 지역의 학교에 더 많은 교육재정을 지출한다. 지역 학군별 교육재정을 지방세에 의존하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재산세를 내면 그중 일부가 해당 학군의 학교 운영비로 들어가게 된다. 즉, 내 아이의 학교 운영은 내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니 부자 동네는 교육 예산이 든든하지만, 가난한 동네의 학교는 늘 쪼들릴 수밖에 없다. 어떤 선진국도 이런 식으로 교육예산을 편성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는 모두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양질의 교육을 시킨다 해도 부모의 교육 수준과 경제적 위치에 따라 개개인의 교육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에 시스템적으로 교육의 양극화를 부추긴다면 그 결과는 재앙적이다. 현재 미국은 저소득층이 성공해서 부유층으로 진입할 확률이 유럽의 비근한 나라들보다 훨씬 낮다.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교육기회의 불균등이 큰 축을 차지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해버린다면 모두들 기를 쓰고 빚을 내서라도 좋은 동네, 좋은 학군에 있는 집을 사려고 하지 않겠는가. 반면 가난한 동네, 나쁜 교육구는 날이 갈수록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제프리가 근무했던 학교는 디트로이트에 위치해 있었다. 포드와 크라이슬러와 GM이 둥지를 틀고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미국 산업혁명의 선두주자로 한 때 가장 부유했던 이 도시는 50년대 이후 급격하게 쇠퇴하면서 이제는 높은 실업률과 범죄율로 악명 높은 몰락한 도시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도시가 쇠락하면서 중산층과 고소득자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속속들이 탈출했다. 1950년에 185만 명이던 도시는 2013년 기준 70만 명으로 60% 이상 감소했다. 그러면서 떠날 능력조차 없는 빈곤층들이 디트로이트의 주요 거주민이 되었다. 지금도 인구의 삼분의 일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살아간다. 


가난한 동네의 학교 역시 가난할 수밖에 없다. 학교 건물이 낡아 비가 새도 보수 공사할 의지도, 예산도 없었다.  학교 급식실에는 곰팡이와 벌레가 들끓어도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학교 건물 어디에서 쥐가 튀어나와도 놀라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해야 했고 쥐에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보통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학부모들은 아이들 학교에 보낼 학용품과 학급 물품을 준비한다. 그러나 가난한 동네에서는 최소한의 준비조차 해 보내지 않는 집들도 많다. 학교에서의 지원은 적거나 거의 없어 어떤 교사들은 학급 용품을 구입하기 위해 자신의 주머니를 털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들의 월급도 결코 여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교사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이드잡을 뛰기도 한다. 가족의 주 부양자였던 제프리도 선생 월급만으로는 식구들을 제대로 돌보기 힘들어 저녁이나 주말에 부업을 하기도 했다. 가르치는 일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자연히 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돈 때문에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함으로 경제적 곤경에 처하고 그로 인해 가족부양과 가르치는 일 모두에 타격을 받게 되었을 때, 패배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그들의 부모에게서 교육에 대한 열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먹고살기 힘든 부모들은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고, 다 쓰러져가는 학교에서 낡아빠진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교육을 통해 구원을 받을 것이란 믿음을 갖기 어렵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학교를 다니고,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보내고, 선생들은 할 수 없이 가르친다. 지루한 학교를 조금만 벗어나도 아이들을 유혹하는 것은 지천에 널려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쉴 곳을 찾지 못한 아이들은 너무나도 쉽게 유혹에 몸을 맡긴다. 제프리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선생으로서의 소명감과 가장으로서의 패배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마음이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그러나 이미 지쳐버린 마음에 무례하고 배울 의지도 없는 ‘불량학생’들을 참아낼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학교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브라이언이 인근 학교에 음악교사로 지원했다가 떨어졌다고 하자, 제프리는 만약 선생이 될 마음이 진지하게 있다면 좀 더 준비해서 부유한 동네, 괜찮은 학군에서 일하라고 조언해줬다. 그게 선생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직업을 유지해 나가는 쉬운 길이라는 말도 보탰다. 

이전 09화 9. 쏘 쿨한 이 구역의 미친 x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