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라지픽처스 감독 및 대표 서준범
김원세: 준범 님 안녕하세요. 광고 배우는 대학생 김원세입니다. 바쁘실 텐데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책을 기획하면서, 광고 산업 안에서 다양한 직무와 사람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집을 만들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광고 감독의 이야기, 그중에서도 업계에서 아주 핫한 엑스라지픽처스의 대표님 이야기를 제가 직접 들을 수 있어서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준범: (웃음) 별말씀을.
김원세: 평소에 어떤 일을 하시는지가 궁금해요. 오늘 일과를 예시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서준범: 오늘은 11시에 서울 스퀘어에서 대행사 미팅을 하고 회사로 돌아왔어요. 지금 우리 회사에 감독이 4~5명 돼요. 그런데 내일 촬영 2개가 있어서 준비하라고 오늘은 조기 퇴근시켰고요. 그사이에 일이 하나 더 들어왔어요. 우리랑은 결이 많이 다른 작업이긴 한데, 알고 있는 예능 PD분의 소개로 모 기획사의 뮤직비디오 의뢰를 받았어요. 사실 이런 작업 같은 경우는 광고 CF에 비해서 견적이 1/6이나 1/10 수준이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재미있는 걸 추구해서요. 사실 저 같으면 안 하는 일인데, 우리 직원 중 몇 명이 평소에 뮤직비디오를 찍어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저희가 기존에 진행하던 견적이랑은 안 맞지만, 직원들한테 의사를 물어보겠다고 전달한 상태예요.
김원세: 잠깐 들었는데도 흥미진진하네요. 그럼 평소 일과는 어떠신가요?
서준범: 어제는 그간의 촬영 준비가 힘들어서 통으로 놀았고요. 회사 잠시 왔을 때도 컴퓨터로 게임 하고 있더라고요. 평소에도 직원들이랑 카드게임을 하고 놀곤 합니다.
김원세: 인터뷰 때문에 준범 님을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존경심이 생기더라고요. 회사의 비전이나 방향은 흔들림 없이 제시하면서도 놀 땐 열심히 노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참 멋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창업의 꿈을 꾸고 있는 사람으로서 훗날 준범 님 같은 CEO가 되고 싶네요.
서준범: (웃음) 농담이지만 어려울 거예요. 그런데 저는 정말 만족하고 있어요. 직원들이 만족하는 거랑 별개로 오로지 대표로서. 사장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직원들도 편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도 편하게 놀면서 하고, 하는 일에 따라 인센티브 많이 받아 가는 회사. 이게 제가 다니고 싶던 회사였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김원세: 저도 찾아보면서 이 회사가 가진 분위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더라고요. 하다못해 입사지원서에서도 웃기면서 즐거운 분위기가 느껴졌어요.
서준범: 그게 작은 회사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몸집이 가볍다 보니까 재밌는 일이 떠오르면 바로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죠. 그리고 저도 회사 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으니까 그때 회사에 다니면서 들었던 생각의 집약이 엑스라지픽처스로 탄생한 것 같네요.
김원세: 방송국에서도 일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서준범: 언론고시에 붙어서 예능 PD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한 6개월 후에 퇴사했어요.
김원세: 그러셨군요. 예능 PD를 거쳐 광고 감독이 되고, 이제는 광고 프로덕션의 대표가 되셨어요. 준범 님께서 어떤 과정을 거쳐 광고 감독이 되신 건지 자세하게 들어볼 수 있을까요?
서준범: 우선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만화가라는 꿈을 품었어요. 그래서인지 어머님께서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만화책 대여점을 운영하셨고요. 그 이후 한국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진학을 꿈꾸며 입시를 준비하던 중에 손가락이 절단 되는 사고를 겪게 돼요. 핑계지만 그렇게 입시에 실패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어요.
그것 때문인지 언제부터 갑자기 그림을 안 그리게 됐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지금은 만화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웹툰 작가를 겸하고 있기도 하지만요. 아무튼, 그러고 나서 수시로 경희대 국제경영학과에 들어갔어요. 대학교에 가서는 PD의 꿈이 생겨서 대학교 방송국에 들어갔고요. 대학교 방송국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카메라를 만져보고, 편집 기술을 익혔어요. 그 이후에 군대를 다녀와서 언론고시를 준비했고, 운 좋게 준비한 지 3개월 만에 방송국에 들어가게 됐죠.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내 길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원세: 왜 그랬을까요?
서준범: 왜냐하면 저는 시나리오도 쓰고, 연출도 하고, 콘티도 그리고 다 하고 싶은데 방송국은 작가가 따로 있고, 연출이 따로 있는 거예요. 오히려 제가 원하던 역할은 영화나 광고 현장에 있었던 거죠.
특히나 조연출 시절에, 언제 쉴지 모르고 또 언제 야근할지 모른다는 압박이 저한테는 너무 지치는 일이었어요. 저는 사람들을 만나고 유대관계를 쌓으며 노는 걸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제가 노는 약속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살려니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퇴사하고 영상 프로덕션에 들어가게 됐죠. 결국은 거기에서도 7년 정도 일하다 퇴사하고 지금 회사를 창업했지만요.
김원세: 그런데 창업을 마음먹기도 어렵지만, 창업하고 나서가 더 어려운 일이잖아요?
서준범: 저는 우리 회사가 일반적인 회사 같지 않아서 더 쉬운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제가 하는 일은 프리랜서 감독이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제가 일을 다 소화 못 하니까 조감독을 모으고, 일을 더 만들기 위해 감독을 채용한 거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제가 다니고 싶던 회사를 만들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서 직원이 영화를 찍고 싶으면 휴가를 비롯하여 무엇이든 지원해요. 1년에 한 번씩 단편 영화 광고 공모전을 자체적으로 열어서 500만 원씩 지원해주고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나 자기계발을 위해서라면 시간적, 금전적으로 지원해줘요. 또 얼마 전에는 CG 공부하고 싶다는 직원이 있어서 학원비 800만 원 중 400만 원을 지원해줬어요.
저는 제가 다니고 싶던 회사를 계속 만드는 거예요. 어쩔 수 없는 대표와 직원의 갭은 존재하겠지만, 다니고 싶은 회사를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어요. 저희는 무조건 칼출근-칼퇴근하고, 야근하면 욕먹어요. 신입 사원 중 한 명이 “시나리오를 쓰고 싶은데 코로나 때문에 갈 곳이 없다. 회사에 남아서 시나리오 좀 쓰다 가면 안 되겠냐”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안 된다고 했어요. “네가 지금 안 좋은 문화를 만드는 거다. 행여나 네가 정말 갈 곳이 없어서 그러는 거면 다 같이 퇴근하고 1시간 뒤에 몰래 돌아와서 해라.” 야근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회사에서는 절대로 자랑이 아니에요. 저녁에 일하는 게 예정되어 있었으면 낮부터 서로 분담해서 처리하는 게 현명한 거죠. 분담해도 야근을 해야 하는 일이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 게 맞고요. 일을 못하니까 늦게까지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게 회사 초창기에는 서로 눈치도 보고 어색했는데 회사가 4년 차가 되면서 이제는 너무 당당해요. 오히려 직원들이 출근은 30분 늦으면서 퇴근은 칼같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애들보고 노골적으로 얘기하기도 하는데 그냥 웃어넘겨요 이것들이. (웃음)
김원세: (말을 잇지 못하며) 놀랍네요. 직원의 성장을 충분히 지원한다는 게 말은 쉬운데...
서준범: 이전 회사에서도 제가 늘 주창하던 게 이거였어요. “나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다. 나를 성장시켜 달라.” 저는 지금 우리 직원한테 말해요. “할 거 없으면 영화라도 보고 와라. 각자에게 맞는 아이데이션 방법이 있을 텐데, 여기 앉아있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기계발을 위해서 회사 시간을 써라. 너희의 성장이 우리 회사의 성장이다. 얼른 감독으로 입봉해서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면 된다.”
김원세: 이런 질문을 드려보고 싶어요. 준범 님이 생각하는 리더십이란 무엇인가요?
서준범: 경험인 것 같아요. 저는 제가 겪은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서 개선한 거예요. 온실 속에만 있으면 밖에서 어느 정도의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지 모르잖아요? 한파를 겪어보고 나서야 나만의 온실을 만들 수가 있는 거겠죠. 더 나아가서 리더십은 팔로십이 저절로 생기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멱살 잡고 끌고 가봐야 팔로십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어요. 저 같은 경우는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편이라 가까운 비전 제시와 충분한 보상이 있을 때 납득이 가더라고요. 근시일 내로 내가 얻을 수 있는 비전과 보상이요. 이렇게 경험 속에서 나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거죠.
김원세: 조금 더 업무적으로 들어가 볼게요. 결국은 준범 님도 아이디어를 생산하는 일을 하시는 거고, 리더로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위해 중재하고 결정하는 일을 하시는 거잖아요? 그때 아이디어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나요?
서준범: 있죠. 회사의 명확한 기준이 있죠. ‘그렇게 만들어진 광고가 재밌어서 친구 50명이 있는 단톡방에 공유할 정도인가’예요. 이게 여러 가지 의미가 있어요. 우리가 책이나 영화를 추천할 때도 아무거나 안 하잖아요? 그걸로 인해서 마치 내 이미지가 투영되는 것 같고, 그래서 더 신중하게 추천하는 거죠. 그렇다면 진짜 재밌는 광고가 아니고서야 50명한테 함부로 공유를 못 해요. 저한테는 두 가지 눈이 있어요. 감독의 눈이랑 네티즌의 눈이에요. 저 스스로 계속 검열을 하는 거죠. “네티즌이 욕할 만한 것이 없나? 가지고 놀 만한가? 재밌나?” 직원들한테도 항상 디렉터의 눈과 네티즌의 눈을 조화롭게 하라고 해요.
김원세: 엑스라지픽처스의 광고가 예측할 수 없이 재밌는 데는 다 이유가 있네요. 그럼 준범 님은 어떤 팀원과 함께 일하고 싶으세요?
서준범: 프로니까 일을 잘하는 건 기본이에요. 일을 못하면 안 돼요. 하다못해 당장은 못하더라도 포텐은 있어야 해요.
김원세: 포텐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서준범: 일단은 전적으로 제 감이죠. 내가 어떤 미션을 줬을 때 의도한 바를 캐치 하고, 자기가 떠올린 아이디어를 정제된 형태로 설명하진 못해도 발상 자체가 독특하게 느껴지면 포텐이 있다고 보는 거죠.
김원세: 엑스라지픽처스 입사지원서를 보니 롤 모델을 묻는 문항이 있더라고요. 저 역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롤 모델을 묻곤 하는데요. 지원자의 롤 모델을 통해서 어떤 걸 보고 싶으신 건가요?
서준범: 그들의 롤 모델을 통해서 뭘 하고 싶은지, 어떤 성향인지를 파악할 수 있죠. 그리고 저는 그 사람들의 꿈이 궁금해요. 초반에 말씀드렸던 뮤직비디오 얘기도 어떤 친구가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어 한다는 걸 제가 인지하고 있으니까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는 거고요.
김원세: 그렇다면 준범 님은 롤 모델이 있으신가요?
서준범: 저는 사실 그런 게 없어요. 누군가를 동경하고 존경하는 마음보다 열등감과 라이벌 의식이 저를 불 지피는데 장작 역할을 해요. 그래서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해요. (웃음) 내가 누군가의 롤 모델이 되고 싶지. 내가 누군가를 따라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요.
김원세: 준범 님과 비슷한 이유로 입사지원서에 당당히 롤 모델이 없다고 적는 지원자는 어떨까요?
서준범: 그것도 사실 충분한 답이 되는 거 아닐까요? 아, 이 친구는 자존감이 세고, 승부욕이 있구나. 그런데 그런 지원자는 실력이 바탕이 되는 자신감인지, 우물 안에서 왕 노릇 하다가 지원한 건지 제대로 확인을 해야죠.
김원세: 문득 준범 님께 치기 어린 질문을 드리고 싶네요. 일과 가족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어요?
서준범: 저는 가정이 제일 중요해요. 우리는 회식을 오전 11시에 해요. 7시에 퇴근해서 제 와이프 보러 가야 하니까. 그리고 우리 직원들한테도 얘기했던 게, 직원이 가정을 꾸렸고 육아휴직을 한다? 그럼 남녀 상관없이 눈치 안 보고 최소 1년은 쉬게 할 거예요. 저희 같은 소기업에서는 어려운 일이기는 하죠. 저는 그 정도로 가정에 무게감을 많이 쏟는 편이에요. 제가 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는 이유도 제 와이프랑 놀기 때문이에요. 물론 일도 잘해야죠. 낮에 해야 할 일을 밤에 가정으로 가져가지 않게 낮에 집중해서 끝내야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요.
지금 우리 직원들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라 미혼이에요. 그래서 연애, 연인과의 시간을 장려해요. 저 역시 많은 연애를 통해서 성장했어요. 사람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면서 계단식으로 성장해요. 반면 회사가 줄 수 있는 경험은 한정되어 있잖아요? 일의 반복일 수도 있고. 그러니 밖으로 나가야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아쉽긴 하지만 휴가를 몰아서 1년 동안 여행 간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원래도 코로나만 아니면 우리 애들 다 데리고 일본이나 미국이나 해외로 가려고 했어요. 그게 경험인 거고, 애사심을 높일 수도 있고, 일의 원동력을 줄 수도 있는 거죠.
김원세: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존경스럽고, 준범 님 같은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참 멋지신 것 같아요. 이어서 질문드릴게요. 이 인터뷰기가 책이 되면 예상 독자는 광고업 종사를 희망하는 대학생 혹은 취준생이 될 텐데 이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을까요?
서준범: 대학교에서 강연 할 때면 즐겨 하는 말이 있는데요. “대학교가 제공하는 커리큘럼을 믿지 마라.” 창의적인 것들은 수업을 통해서, 대외활동을 통해서, 선배들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만약 감독이나 PD를 꿈꾼다면 당장 찍으세요. 제가 취업을 준비하던 때, 제 친구들은 PD 시험에 합격해야지만 PD가 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저는 아니었어요. 저는 휴대폰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고, 인터넷에 올리고 있었어요. 그때도 저는 이미 PD였어요. 광고도 마찬가지죠. 광고하는 영상을 지금도 충분히 찍고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광고 감독이 된 순간 광고를 만들려고 한다? 그러면 이미 늦은 거죠.
김원세: 어느덧 마지막 질문입니다. 준범 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서준범: 저는 광고 감독‘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 웹툰도 연재하고 있고, 웹드라마도 만들고, 영화 시나리오도 쓰고 있어요. 저는 창작에 있는 모든 콘텐츠를 만지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누군가 그런 걸 하고 싶어 했을 때 충분히 지원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회사 이름도 엑스라지 프로덕션이 아니라 ‘엑스라지픽처스’라 지었어요. 확장성을 가지고 싶고, 한편으로는 그것보다 더 큰 확장성을 가진 이름이 아니라서 아쉽기도 하고요. 아무튼, 우리 회사는 큰 그림을 그린다는 방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창작활동에 있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뭐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그런 회사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