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역할에 관하여.
내가 연고를 던져두듯이 도망쳤던 이유는 답답함을 느껴서였지만, 답답함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였다. 굳이 내가 없더라도 잘 이어져 가겠지.라고 단정 지으며 스스로 관계 속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다 보니, 주어진 역할이나 책임에 대한 부재가 크게 느껴졌고, 더 나아가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그리움을 갈망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닐까.
물론, 지난날의 경험이 의미가 없었다기엔 그 과정을 잘 디뎌, 현재의 생활을 가능하게 했으나 나는 내 주변과 내 가족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굳이 겪어볼 필요는 없다.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 정도로 생각한다면, 굳이 소중함을 잃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는 그 자체로도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고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먹지 말자는 말이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이유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서일 가능성이 큽니다. 소외감에서 비롯된 여정을 걸었지만, 소외감에 대한 연유를 끊임없이 찾다 보니 저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탓이 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힘듦, 심적 고통과 부정적인 생각은 오롯이 나만의 감정이라 타인이 그 부분을 세심하게 위로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주변으로부터 나의 '이상함'을 감지한다면 그것은 그룹 내에서 정해진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 본 시점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역할을 저 혼자만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어색한 것이 없을 테니까요.
이것은 우리의 인간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내면의 사회 그것을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인간관계. 그것 또한 집단으로 볼 수 있겠죠.
중요한 점은 그러한 내면의 사회가 자신에게 형성이 되어있다는 것을 잘 모르고 산다는 점이죠.
그래서 본인의 역할이 생각보다 핵심이 된다는 것을 망각하고 그것을 내버려 두게 되면서 방황, 즉 자신을 찾는 여정길에 오르는 경우가 꽤 잦습니다.
제가 여정에 오르기까지 자주 생각했던 것은,
내가 왜 필요할까.
였습니다. 굳이 내가 없더라도 주변은 잘만 돌아갈 텐데, 말도 뜻도 통하지 않는 이질적인 나란 사람이 굳이 필요로 한 것인지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또,
뭘 해야 하지, 하고 싶은 게 없어.
와 같은 말들을 곧 잘 뱉곤 했었죠. 이 세 가지 말들은 다른 것 같지만 결국, 같은 내용입니다.
주변과 나 사이의 소외감과 외로움, 그리고 단단하게 세워진 고립감에서 생긴 일종의 푸념에 가깝죠.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진 않았지만, 당장 내 피부로 와닿는 소외감과 고립감이 더욱더 깊은 부정의 늪으로 걸어가게 만들고 그것은 결국,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의문을 갖는 일이 됩니다. 그리고 그 시기는 당사자에게 정말 힘든 시기가 되겠죠.
그렇기에 우선 힘듦에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누가 알려줄 수 없는 영역이기에 알려주기 싫은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소외감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소외감을 느끼는 원인을 찾아봤던 것 같습니다. 힌트라고 할만하게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죠. 그래서 관계적인 부분을 세심하게 더듬어봤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의 인간관계는 스스로를 빼놓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죠.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인간관계는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내가 친구, 가족이라고 칭하는 이들은 모두
내 친구, 내 가족이라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없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친구, 누군가의 가족이 될 것이고
누군가의 인간관계가 되겠죠.
그럼 인간관계에서 내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면서도 소외감을 느끼는 이유를 찾아봐야겠죠. 주변을 잘 둘러보니 모두가 나에게 자신을 역할을 다해주고 있었습니다. 친구는 친구로서의 역할, 가족은 각자 형제, 자매, 엄마, 아빠 등 내가 그 사람들을 부르는 호칭에 이변이 없었기에 그들은 그들의 기준에 맞게 그들의 역할을 나에게 충분히 해주고 있었습니다.
반면, 나는 어땠을까요.
자식으로서의 역할, 형제, 자매로써의 역할, 친구로서의 역할, 선배, 후배로써의 역할 등 그 수많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을까요? 내 인간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각자 맡은 한 가지의 역할만 해주면 되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인간관계에 있어 '주체' 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그런 다수의 역할을 수행하느라 제풀에 지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자신이 꾸린 인간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기 때문이죠. 책임감이 주는 무게감은 아직 성장하고 있는 나에겐 꽤 부담이 되는 무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할을 한 번씩 놓치게 되죠.
본론으로 돌아와, 인간관계에서 스스로가 꽤 다수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고 그것이 내가 주체인 인간관계에 대한 책임감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언급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주체가 나라는 것도 알겠고, 내가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 다수라는 것도 알겠으나 그 다수 안에 스스로에 대한 역할도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내가 나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그 역할을 충분히 다해야 합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서 제일 첫 번째로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며, 가장 중심이 되는 역할이기 때문에 단 한 번이라도 내려놓을 수 없는 역할입니다. 왜냐하면 이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우리는 주변의 분위기에 휘둘리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워진다는 것은 가지고 있는 부정적 사고의 범위가 넓어지는 가능성이 되며, 인간관계에서 소외감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하고 싶은 게 없다고 느낄 땐, 내가 스스로에게 역할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가진 인간관계. 그 안에서 책임을 무난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된다면 분명, 하고 싶은 어떤 것이라도
생기게 될 것입니다.